우리 부부는 3살 터울인 온유, 시온이를 키우며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천성이 순한 아이들이라 먹이거나 입히는 것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지만,
나이에 따라 필요가 다른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기질 여부에 상관없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쯤, 일요일 밤에 아이 둘을 힘겹게 재우고 남편과 식탁에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었다.
“여보, 우리 셋째는 아닌 거 알지? “
온유, 시온이만으로도 벅찼던 그때. 우리 인생에 셋째 아이는 절대로 없을 예정이었다.
올해 시온이가 갑작스럽게 천국으로 떠난 이후에, 우리 부부는 조금씩 셋째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꾸만 동생을 찾는 첫째 온유를 보며, 올해는 시온이를 충분히 기억하고 내년쯤 셋째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 친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너 혹시 셋째 생겼어? 나 태몽을 꾼 것 같아“
“임신 안 했는데. 무슨 꿈을 꿨길래?”
언니는 담담히 꿈 내용을 말해주었다.
“내가 꿈에서 장난감 가게에 갔는데, 거기 노란색 곰인형이랑 흰색 곰인형이 있었거든. 뭘 살까 하다가 노란색 곰인형을 골라서 품에 쏙 안았어.
그런데 얼마나 작고 보드라운지. 그걸 품에 조심스럽게 안고 집으로 갔는데, 집 앞에 시온이가 서있는 거야. 내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시온이가 안 들어오더라고.
결국엔 나 혼자 들어가서 곰인형을 거실 선반에 올려놓는 꿈이었어. “
들어보니, 정말 태몽 같긴 했다.
혹시나 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았는데 한 줄이었다.
태몽은 아니지만, 시온이가 그래도 이모꿈에 나와줬네. 근데 왜 집에는 안 들어왔을까. 괜히 속상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다시 한번 해본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줄이 떠올랐다.
그때는 집에 혼자 있었는데,
언니가 말해준 태몽과 함께 ‘우리 시온이가 동생 손을 잡고 왔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시온아, 왜 집에 안 들어온거야. 너도 같이 들어오지.
엄마 아빠 슬프게 할까봐 안들어온거야? 괜찮아, 언제든 와도 괜찮아.
근데 우리 시온이가 참 착하다. 동생 손을 잡고 길도 잘 찾았네.
동생 손을 잡고 와준 시온이를 떠올리며,
태어난 지 50일 넘게 병원에 있어서 한 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했던 때를 떠올리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엉엉 울었다.
두줄인 임신테스트기를 붙들고 그 자리에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벌써 세 번째 임신이었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입덧이 몸살 증상으로 찾아온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근 한달동안 온몸이 너무 아파서 종일 누워만 있었다.
‘서걱서걱
내 머릿속과 온몸을 누가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다.
나의 뇌를 누가 썬다. 서걱서걱
이번엔 몸통이다. 불 지른 것처럼 아팠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누구에게인지 모를 간절한 구원의 외침을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를 품고 낳고 키우는 건 죽음의 과정인듯하다.
이렇게 나를 죽음의 고통에 밀어 넣고 태아를 품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느끼며 아이를 낳고
나를 죽이고, 평생 희생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
생명을 키우는 일은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한가 보다.‘
고통을 견디며 핸드폰 메모장에 남긴 기록이다.
육신의 고통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계속 누워만 있다 보니 시온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힘들었던 임신 초기를 보내고, 이제 중기에 접어들었다.
저번 주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니, 셋째는 딸이라고 했다.
아, 우리 시온이가 언니가 되었네.
시온이가 여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와줬구나.
시온아, 고마워. 그리고 언니가 된 걸 축하해.
배에 손을 올리고, 너는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고 말해줬다.
언니는 네가 이 땅에 찾아온 그 해에 천국으로 갔어.
언니는 어땠냐구?
언니는 잘 웃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말도 잘하고, 가방을 좋아했지. 분홍색도 좋아하구.
그런데 언니는 어린이집은 못가봤어. 그러니 너는 언니몫까지 꼭 가야해.
꽃처럼 예뻤던 언니 몫까지 살아야 해.
셋째가 대답이라도 하는지 내 배를 콩콩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