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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Oct 22. 2023

너의 죽음을 되짚어보며

너의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너를 기리는 글을 쓰며.. 너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유 없는 죽음, 너는 대체 왜 죽었을까.

너는 뭐가 급하다고 그리 일찍 가버렸을까.

그 무엇도, 아무것도 너를 대신할 수는 없다.


네가 죽고 난 이후, 사람들은 숱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것도 잠깐이다.

결국엔 내가, 나 스스로 이 슬픔과 죽음의 의미, 그 무게를 견뎌내야만 한다.


너는 왜 죽었을까.

너는 이 땅에 어떻게 찾아왔고, 어떻게 간 걸까.

이 세상에는 개죽음도 있고,

숭고한 죽음도 있다던데.

그럼 너의 죽음은 그 어디쯤인 것이냐


네가 남기고 간 수많은 웃음과 땀과 울음과 애정과 손짓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구나.

핸드폰 사진, 영상 속에나마 남아있다.

그리고 내 마음과 기억 속에.

시간이 지나서 흐려질까 봐 그게 겁이 난다.

내가 다 늙어서, 얼굴에 주름이 깊어질 때

그때에도 또렷이 너를 기억할 수 있을까.

결국엔 너를 만났을 때,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오롯이 너를 그리워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매 순간 너를 생각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을까.


너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니.

너의 육체는 뜨거운 불에 다 녹고 없어져서

한 줌의 가루로 남아 저 깊은 흙속에 묻혀있는데.

너의 영혼의 형체는 2살 배기 그것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천국에서 놀고 있니


네 죽음의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나는 모르겠다.

여러 가지 신앙의 이유로 몸부림치며 답을 찾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번개 같은 대답들에 정신도 차리지만

여전히, 여전히 너의 죽음은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기에는 너무 큰 것이고

이유가 없기에는 너무 막연한 것이야.

33년을 뛴 어미의 심장보다

2년밖에 쓰지 못한 네 심장이 더 팔딱거리며 뛰어야 하지 않겠니.

왜 그렇게 한순간에 멈추어버렸는지.

큰 수술을 3번이나 이겨낸 네가

마지막 순간에 그 숨을 이겨내지 못하고 헐떡대며 가버렸는지.

엄마는 지금도 다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줘야 했을까.


다만 지금에 와서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것은,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이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 있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야.


소중한 자녀를 음주운전이나 학교폭력으로 허망하게 잃어버린 부모님들 중에는

그 악한 것들과 싸우기 위해 투사로 변신한 분들이 있단다.

또 치료책이 없는 희귀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 고생하다가 떠난 아이의 부모 중에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경험을 용기 있게 나누는 사람도 있단다.


그렇다면 나는,

너의 죽음뒤에 남겨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글을 통해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은지도 몰라.


너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너와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마음속에 여전히 빛나고 있어.

그 보석들을 잘 거두어내고,

네가 남기고 간 진한 슬픔들이

점점 옅어지며 꽃잎 같은 색으로 바뀌어가는 순간들을

슬픔 속에 빠진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거야.


그럼 언젠가 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

그때 활짝 웃으며 내 품에 널 꼭 안아줄게.

시온이가 가장 좋아했던 삶은 밤과 고구마도 챙겨 갈 테니

같이 먹자.

미처 해보지 못했던 새 헤어핀도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고.

분명히 너에게 잘 어울릴 거야.


세상에서 가장 용감했고,

가장 따스했으며,

가장 해맑은 삶을 살다 간

영원한 나의 딸 시온이에게

엄마의 모든 글과 위로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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