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시온이를 떠올리다.
책을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꼭 한번 읽어봐야 할 명작이라고 들어서, 큰맘 먹고 중고책을 구매해 보았다.
집으로 배송된 중고책은 총 3권(민음사 출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으로 되어있었다. 각각의 책도 두꺼웠는데, 다 합치면 그 분량이 어마어마해 보였다.
요즘 배가 많이 나와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도 명작이라고 하니 용기를 내어 첫 페이지를 펼쳤다.
등장인물들 각각의 외모부터 깊은 내면의 생각까지 자세하게 써 내려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어린 자녀를 잃은 한 여인의 사무치는 하소연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소설 속의 ‘조시마’라는 신부에게 자신의 슬픔을 어찌할 바를 몰라 절절하게 토로하는 부분이다.
조시마 신부가 아이는 천국에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대답한 직후이다.
(아래 내용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여인은 한 손으로 뺨을 괸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니키투쉬카(남편)도 똑같은 말을 하면서 저를 위로했어요. 신부님 말씀과 토씨 하나 안 틀리고요. ‘바보같이 울긴 왜 울어. 우리 아들 녀석은
지금쯤 분명히 주님 곁에서 천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을 텐데.‘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는 그이도 울어요. 보면 나와 똑같이 울더라고요.
‘알아요, 니키투쉬카, 주님 곁이 아니라면 녀석이 어디에 있겠어요, 다만, 니키투쉬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곁에는 없다고요, 그전 같으면
바로 여기에 앉아 있었는데!‘ 한 번이라도 녀석을 볼 수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녀석을 바라볼 수 있다면, 녀석에게 다가가지도,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서 그저 구석에
몸을 숨긴 채 단 일 분만이라도 녀석의 모습을 보고 녀석이 뜰에서 놀다가 뛰어 들어와 예의 그 목소리로 ‘엄마, 어디 있어?’라고 외치는 걸 들을 수 있다면.
녀석이 작은 발로 톡톡 소리를 내면서 방을 지나가는 것을 한 번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톡톡 거리는 발소리 말이죠.
그렇게 자주, 자주 기억이 나요, 나에게로 달려와 소리를 지르면서 웃곤 했지요, 녀석의 발소리만 들어도, 그냥 그것만 들어도 녀석이라는 걸 알 수 있으련만!
하지만 신부님, 녀석이 없으니 녀석의 소리를 이젠 영원히 못 들을 거예요!
자, 여기 녀석의 허리띠는 있지만 녀석은 없어요. 이제는 절대로 볼 수 없을 테죠. 들을 수도 없고요...!“
그녀는 겨드랑이에서 자기 아이의 자그마한 장식용 허리띠를 꺼냈는데, 그것을 보기가 무섭게 곧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흐느껴 울었으니,
손가락 사이로 갑자기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나왔던 것이다.
고요한 새벽에 홀로 앉아 책을 읽다가 나도 시냇물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여인의 비통하고 간절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시온이는 천국에 있지만, 내 곁에는 없다.
시온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도 거창하게 바라는 건 없다.
시온이에게 다가가지도 않고 멀리 서라도 그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아니, 만약 허락된다면 시온이에게 다가가 품에 안고
정말 보고 싶었다고, 너는 나의 보물이라고,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컷 눈물을 쏟아놓고 나니
왠지 모르게 조금은 위로받은 느낌이 들었다.
나와 같은 슬픔을 가진 누군가가
이 지구상 어디엔가,
아니 어느 책 한 페이지에서라도 존재하고 있음에 위로가 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명작은 명작인가 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썼을까?
그도 아이를 잃은 적이 있었을까.
만약 그런 경험이 없는데도 이런 글을 썼다면.. 그는 누군가의 슬픔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일까? 아니면 상상해본 것일까.
러시아의 대문호라고 불리는 그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해주어서 고마웠다.
내 속도 모르는 핸드폰은
2년 전 오늘의 사진이라며, 시온이와 나의 행복했던 한 때를 띄어주었다.
참으로 그리운 시간이다.
새벽에 실컷 울었으니, 이제 눈물을 닦고
첫째 아들 온유와 뱃속에서 열심히 커가는 셋째에게
다시 행복을 나눠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