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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Dec 20. 2024

워킹맘의 기쁨과 슬픔

주양육자는 누구였나요?

“엄마, 스트레스받아서 어디 벽에 붙어 있는 긴 줄을 막 잡아당기고 싶어.”


“엄마 나는 숙제 없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엄마 나는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서 놀 시간이 없어서 싫어.”


워킹맘의 아이, 그녀는 고작 8세.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런 아이가,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가,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나는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봐주기 위해 옆에 앉아 있을 뿐이다. 단지 학교숙제일 뿐이다. 학교 숙제만 하는 데에 3시간이 소요된다.


그 이유인즉슨, 소근육이 좀 느려서 글쓰기가 힘든 아이에게 한쪽짜리 글씨 쓰기 숙제가 있고, 연산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1학년 2학기 수준의 연산숙제를 60문제 내준 학교가 범인이다.




“선생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숙제를 해 오나요?”

“네 모두 해옵니다.”

“이걸 하는 게 맞나요?”

“아이가 힘들어하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주변의 친구들과 본인을 항상 비교하는 아이다.


“엄마 지은이는 엄청 빨리 풀었어. 영호는 백점 맞았는데 나만 틀렸어. 지수는 다 해왔는데 난 못해서 선생님께 혼났어.”


등등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피드백을 받는다.


이걸 듣고 있는 나도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아이의 정서에 분명 영향을 줄거라 생각한다. 이게 맞는 일인가. 이걸 억지로, 억지로라도 해서 이렇게도 싫은 아이와 이 진도를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 속에서도 강행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나름 모범생 엄마는 이 방법밖에 모른다. 숙제는 해가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


결국 몇 개월을 버티다가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아이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도 궁금했다.


용기 내어 찾아간 그곳에선 아이의 일대기에 대해 적으라고 종이를 주시며 1세, 2세... 8세까지 각 시기별 주 양육자를 적으라고 했다. 주 양육자? 아이의 양육자는 계속 바뀌었다. 태어나서 첫 돌 때까지는 내가 양육했고, 첫 돌~ 세 살 까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공동양육, 네 살은 친할머니의 양육, 다섯 살 때는 이모님, 7살에는 이모님이 또 바뀌었다. 다 작성하고 만난 상담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어머니, 아이가 환경 변화에 예민한 아이인데 주 양육자가 너무 자주 바뀌었네요.”


이 상담 선생님도 워킹맘이라 들었는데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모르시나? 같은 워킹맘 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야속하다. 워킹맘이 복직과 휴직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한 선택인데 그걸 모르시는 걸까. 하며 이야기를 들어본다.


근데 그것과 아이가 짜증이 많아진 것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이어진 아이 그림검사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각자의 구획 안에서 자기만의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고, 아빠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동생도 따로 놀고, 본인도 따로 놀고 있었다. 일단 구획화 자체가 가족 간 감정적 교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나름대로 1학년에 적응하게 해 준다고, 학습습관을 잡는답시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기보다 학습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늦은 퇴근으로 8시부터 시작된 숙제를 빨리 끝내고 ‘재우는 시간’에만 초첨을 맞추어 아이를 닦달했다. 워킹맘이라 이 방법 밖에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 아이와의 대화나 교류보다는 숙제에만 집중했다. 그마저도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길 때는 쌓여있는 설거지와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 장난감 정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조금 예민했지만 밝고 명랑했던 아이는 툭하면 심하게 짜증을 부리고 징징거리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며 부정적인 말을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상담 후 지금은 아이의 공부습관보다는 '정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임을 깨달았다.


대치동에서만 11년간 정신과 전문의 원장으로 지내고 있는 정우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얼마나 학습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공부할 떄 아이의 정서를 엄마가 얼마나 잘 알아주느냐 입니다.

- ’상위 1%의 비밀은 공부정서에 있습니다‘ 중에서


상담센터에서는 숙제를 밤에 시작하지 말고 시간을 땡겨서 낮 시간에 하고 저녁엔 집에서 쉬는 루틴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추천을 해 주셨다. 이건 워킹맘에게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진 않았다.


일단, 나에겐 엄청 큰 고민이었는데 7세 영유 이후 연계로 다니던 영어학원을 끊기로 했다. 셔틀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 대신 돌봄 교실에 있는 시간을 늘려 숙제에 더 집중하게 했다. 안전하고 편안한 학교 환경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숙제를 해서 그런지 다는 못해도 절반 정도는 해왔다. 집에 와서 나머지를 하는 건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학원 숙제가 없으니 압박이 덜 했다. 돌봄 교실에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나니 아이는 여유를 찾았다.


그 결정 이후 아이는 남는 시간에 자신만의 꿈을 펼쳤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아이는 스퀴시 만들기가 취미가 되어 만들고 색칠하고 역할놀이를 하며 그녀만의 취미를 구축해 갔다. 그러면서 아이가 점점 나아지는 게 보였다.


나 또한 ‘숙제를 완수하는 것’ 에서 ‘공부정서를 좋게 하는 쪽‘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아이를 관찰하며 그 소중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싫어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학교에 가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다만, 숙제 없는 학교면 더 좋겠다고 한다^^) 학교에 가는 게 즐거워야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재미있고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 양육자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요즘 아이의 주 양육자는? 물론 엄마인 나이지만, 그 외에도 양육자가 3분이나 더 계신다. 아침 등원 이모님, 저녁 하원 이모님, 가끔 오시는 외할머니까지. 아이는 어릴 적부터 이모님이나 타인에 의해 길러지는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미묘한 내적 불안감 같은 게 있었던 거 같다. 그 시기마다 짜증과 불안이 늘어났던 모습을 보였으니까.


한동안 스퀴시를 통해 힐링하며 마음을 챙겼고 집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가 요즘에는 다시 짜증이 늘고 있다. 문제는 역시 학원인 걸까.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매거진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이는 내가 퇴사하지 않는 한, 주 양육자와 관련하여서는 항상 변화하는 환경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며 사회성을 키워가며 단단한 아이로 자라날 거다. 지켜보는 내가 안타깝고 짠할 때가 많지만 아이 양육의 목적은 '독립'이라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새기며 독립 훈련을 미리미리 조금씩 시킨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엄마들을 존경합니다.

내년에는 나도! 휴직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 아이가 너무도 소중하지만 생계를 위한 밥벌이도 놓을 수 없는 아직도 불안한 엄마가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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