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주도로 워크숍을 간 적이 있었다.
나와 팀원들은 제주도에서의 멋진 낮과 밤을 기대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바다를 보고 싶었다. 개인 시간도 갖으며 때론 상념에 젖고도 싶었다. 맛난 것도 먹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윗분(임원)의 한마디로 모든 워크숍 일정은 그분에게 맞춰졌다. 보고드릴 때 당연히 너희가 만든 일정에 따르겠다고 해 놓고서... 제주 도착 첫날부터 우리가 계획한 일정은 필요 없게 되었다. 팀원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재미있게 잘 있다 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토닥였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불길한(?) 첫날이 시작되었다.
여러 일정이 그때그때 윗분의 생각대로 움직였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녁에 둘러앉아 한 마디씩 해야 하는 무서운 '폭탄(회사 이슈에 대한 의견) 돌리기'는 최악이었다. 정답을 맞히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자리 말이다. 왜 꼭 그래야만 했을까. '우리가 워크숍에 왔으면 뭔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강박이었다. 성과물에 대한 강박. 목적이 그 자리에 맞는 것이었다면 타당하다. 하지만 당시 워크숍의 목적은 부서원들 간에 더 친해지고 더 많은 추억을 쌓고 돌아와서 또 열심히 일해보자! 이런 의미였다.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허락한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겠기에, 각 잡고 서로 말을 돌려야 하는 폭탄 돌리기는 나를 정말 화나게 했다. 그런 인위적인 자리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윗분께서 야심 차게 하시는 일인데... 더군다나 본인은 큰 의미를 갖고 계셨기에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순 없었다.
어정쩡한 목적은 어정쩡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가장 중요한 목적 한 가지에 집중하면 된다. 여러 의미를 섞으면 결과는 짬뽕이 된다. 마징가와 그레이트 마징가, 태권브이를 결합하면? 최고의 장점만을 섞은 새로운 로봇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괴물이 나올 수도 있다. 워크숍 목적이 서로 친해지기면 빡세게(?) 놀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면 된다. 추억도 쌓고 회사 이슈에 대한 결과물도 만들고 자기 성찰도 하고 성장도 하고 오는 그런 완벽한 워크숍은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목적이 너무 많아 뭘 하고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많은 것을 한다고 많은 것을 얻을 순 없다. 그것은 욕심 아닐까?
저녁 맥주타임은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상황이 되었고 우리는 멋진 한마디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날 이후 우리는 계획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윗분이 원하는 것을 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분은 너무 즐거워하셨다. 평생 기억에 남는(?) 워크숍이었다.
올레길을 걸을 때 그분은 연실 사진만 찍었다. 걸으면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지 않고 풍경도 보지 않고 사진만 찍어댔다. 가끔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멋진 말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윗사람으로서 멋진 모습과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때론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보다 눈과 마음에 담을 때 더 오래 남는 것 아닐까.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서 사람들과 함께 걷고 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더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솔직히 사진을 찍어도 나중에 잘 보지 않는다. 한두달 뒤 다시 사진을 보고 감상에 젖은 적이 있었던가. 한두 번 정도 볼 순 있겠지... 하지만 그때의 감정 그때의 생각이 잘 떠오를까.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그래 뭐 성향일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올레길을 걸었다.
아무튼 즐거워야 할 부서 워크숍이 갑자기 100분 토론장으로 변하고 우리 앞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다가 페북에 올리는 양념과 재료가 되는 순간 애초의 목적은 벌써부터 희미해졌다.
꼰대는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 한 말이 기억이 난다. '꼰대 정신은 내 생각과 말의 '무오류성'을 주장할 때 생긴다'. 그분은 자신이 제주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생각하는 일정이 훨씬 더 나을 거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뭐 이런 생각 아니었을까 한다. 처음부터 솔직히 그렇게 말했으면 큰 기대는 안 했을 것이다.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있으니 갑자기 일정을 바꿔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애당초 그분에겐 팀원들의 힐링 같은 건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리더 놀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워크숍 최초 의미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의도했던 것들을 모두 하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것은 모두 너희들에게 좋은 거니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젊은 사람도 꼰대가 될 수 있다. 내가 가장 멋진 생각을 한다는 것, 내가 항상 맞다는 것, 내가 항상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의 코칭이 부하직원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나이가 많다고 성숙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마지막으로,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는 것.. 이것이 꼰대 정신이다.
팀장으로서 여러 해를 보내고 있지만 나도 혹시 꼰대가 되고 있지는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토록 싫어했던 말과 행동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것이 팀장의 자리고 리더의 자리지만,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도 강박 아닐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리더 아닐까?
나는 'negative learning'이란 의미를 종종 생각해 본다. '반면교사'와 의미가 통하는 말이긴 한데,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오류(잘못)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좋은 리더를 보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찌 내 주위에 좋은 리더들만 있을까. 반대의 모습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은 학습이 될 수 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리더라고 생각할 때 어쩌면 꼰대일 수도 있겠다는 것 말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따른다는 것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또는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리더를 따르진 않는다. 꼰대는 지위로 사람들을 따르게 만든다. 팀원들이 단지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라면, 리더로서 그것만큼 슬픈 것도 없다.
주변에 꼰대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혹시 있다면 그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잘 관찰해 보자. 그리고 그 반대로만 해보자 그럼 최소한 내가 꼰대가 되는 것은 피할 수있을 것이다.
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
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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