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71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71
―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다짐 ―
2025년 8월 2일, 브런치 작가로 첫 글을 올린 날이다.
그로부터 석 달이 흘렀고, 어느덧 120편이 넘는 글을 썼다.
작품집으로 분류된 글만 네 편, 구독자는 97명, 평균 ‘라이킷’은 30개 남짓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썼다.
전업 작가도 아닌 내가 이 정도를 많은 글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틈틈이 써온 원고들이 상당한 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들을 꺼내 다듬고, 다시 입혀, 브런치와 SNS에 띄우고 있다.
다행히도 내 글은 유행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조금만 손보면, 마치 오늘 쓴 글처럼 살아난다.
같은 글을 다시 올려도, 눈치채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새로운 글인 줄 알고, 읽고, 반응하고, 댓글을 남긴다.
나는 글을 직업으로 삼은 적이 없다.
먹고사는 일은 따로 있었고, 글쓰기는 오래된 습관이자 취미였다.
이런 마음으로 적지 않은 글을 써왔고, 가끔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흡족해진다.
그런데, 문득. 어느 날 아침이나 늦은 밤, 정처 없이 밀려오는 생각이 있다.
“이 모든 글들이 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질문이다. 회고처럼 혹은 불청객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재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재능은 손에 꼽힌다.
우리는 가끔 ‘천재’라 불리는 이들을 본다.
그 앞에서 보통 사람은 자주 멈칫한다. 질투 대신, 체념으로.
나 역시 상상해 본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재능이 유별나게 빼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믿는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노력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 는, '모차르트' 재능 앞에 서서 절망한다.
살리에르 모든 노력이 모짜르트 장난같은 한 곡 앞에서 무너진다.
이 세상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 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살리에르'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천재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과 시대, 기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때, 우리같은 범재도 자기만의 자리를 얻는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도 백 년 전에 태어 났다면, 그 재능으로는 평범한 광대나 장돌뱅이로 생을 마감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안정된 직업이자 부와 명예를 가지는 판사, 의사, 검사는
150년 전만 해도 '중인'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혔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기록의 방식도 달라졌다.
책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옮겨간 것처럼 작가 자격 역시 출판사 보다는 대중적인 ‘읽는 이들' 조회수가 정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회의에 빠진다.
“읽히지 않는 글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읽힘’은
SNS의 조회수나 반응이 아니라,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누군가의 삶에 닿는 조용한 접촉이다.
비록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누군가의 책장에 조용히 기대어 있다가 어느 하루 문득 손에 들려
잠시 마음을 데우는 책, 그런 따뜻한 우연적 만남을 조용히 꿈꾼다.
하지만 나는 그 경지에 이를 만큼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닿을 만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어느새 나이를 먹으며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쓴다.
그리고 다시 회의에 빠진다.
이 악순환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악순환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그래!
내가 살아 있었던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돌아보면 의미 없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정치적 출판기념회용인 서점에 팔기 위한 책은 아니었지만, 다섯 권의 책을 냈다.
다섯 권 중 마지막 책 <초롱초롱 박철홍의 역사는 흐른다: 구한말 편>은 거의 내 자비 출판으로 꽤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지금도 매달 몇 만 원씩 인세가 들어온다.
광고도 전혀 없었지만 꾸준히 팔리고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지에서 수필가로
두 번이나 등단을 했고,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SNS에서는 나를 꾸준히 읽어주는 꽤 많은 독자들도 있다.
어쩌면 그들 한 명 한 명이, 내 책장 속의 ‘내 글’을 펼쳐보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나에겐 노년을 지탱해줄 귀한 취미가 하나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글쓰기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무너지지 않고 쓰는 사람의 글은, 읽히지 않아도 남는다. 그건 흔적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읽히지 않더라도,
불안과 회의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한 줄을 써내려 간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