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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6

삼국통일의 시대 1 ㅡ(삼국의 역학관계)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6

ㅡ 삼국통일의 시대 1 ㅡ

(삼국의 역학관계)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 정치·군사·경제적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서로 세력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외교·동맹·배신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복잡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다층적인 긴장 속에서 삼국은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고,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했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한강유역이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강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시대 주도권을 잡고 다른 나라 압도 하며 가장 번성한 전성기를 누렸다.


그만큼 한강유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핵심적인 전략지였다.


1. 고구려 – 북방 강국, 남진을 꿈꾸다


고구려는 군사력과 기마전술을 기반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장악한 강대국이었다.


특히 장수왕 남진정책은 삼국 정세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백제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유역을 장악하며 한반도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이후 고구려는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수·당 제국과 직접 맞서며 국제적 전쟁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 막대한 국력이 소모되었고, 이는 훗날 국가 존속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고구려 압도적 세력은 삼국 전체 균형을 뒤흔드는 중심축이었다.


2. 백제 – 문화와 외교강국


백제는 고구려와 같은 부여계에서 출발했으나, 한강유역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도시문화·도자기·불교·건축 기술 등에서 뛰어났으며, 특히 '왜국' (일본)과 활발한 외교를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왕·무왕 등 역량 있는 국왕들은 영토 확장을 시도했으나, 고구려 남진과 신라 성장 사이에서 양면 압박을 받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3. 신라 – 약소국에서 삼국통일 주역으로


신라는 한반도 동남부라는 안정적 지리 조건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국력을 성장시켰다.


신라초기에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고구려·백제와 대립 속에서 군사력·정치력을 점차 강화했다.


진흥왕 때에는 백제 한강하류와 고구려 한강상류를 차례로 확보하여 한강 전역을 장악했고, 국가 발전 기반을 크게 확장했다.

이후 신라는 적극적 외교전략을 통해 당나라와 '나·당 동맹'을 체결, 삼국통일 결정적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4. 삼국관계 변화와 전략


1) 고구려 – 백제 : 부여계 형제국의 끝없는 대립


두 나라는 계통이 같았으나, 한반도 패권을 두고 가장 격렬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한강유역을 둘러싼 갈등은 사실상 상시전쟁에 가까웠다. 외세 견제를 위해 일시적으로 협력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시기에는 철저히 적대 관계였다.


2) 신라 – 백제 : 협력에서 적대 관계로


초기에는 공통 적인 고구려에 맞서 협력했으나, 백제 남하와 한강 확보 시도로 인해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신라는 백제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고구려와 손을 잡기도 했으며, 훗날에는 당과 동맹을 통해 백제를 멸망시키는 선택을 한다.


3) 신라 – 고구려 : 견제와 협력의 반복


초기에는 비교적 평온했으나 신라가 성장하면서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고구려 압박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신라는 결국 강대국 당나라 힘을 빌려 삼국통일 기반을 구축한다.


4) 고구려 – 중국 왕조 : 동아시아 최전선


고구려는 북방 유목민족과 중국 통일왕조(수·당)의 공격을 전면에서 감당하며 삼국 방패처럼 병풍으로도 존재했다.

백제와 신라는 이러한 이유로 직접 중국군의 공격을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직접적 공격은 백제 멸망당시 당나라의 백제침략뿐이었다.


그러나 끝내 고구려는 수·당과 반복된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었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에 이르게 된다.


5) 신라 – 당나라 : 동맹에서 최종 전쟁으로


신라는 당과 협력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하지만 당은 이후 한반도 직접 지배를 시도하며 갈등이 폭발한다.


당은 백제 지역 → 웅진도독부

고구려 지역 →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이에 불만을 품은 신라는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당과 결전을 벌였고, (나당전쟁) 매소성·기벌포 전투 승리로 한반도 남부의 주도권을 확고히 했다.


'나당전쟁'은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라 신라가 외세의존을 넘어 독립국가로서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5. 삼국경쟁의 종결 ― 삼국통일 의미


신라는 치밀한 외교술과 전쟁 능력을 결합해 백제, 고구려 순으로 정복하고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완전한 통일은 아니었다. 고구려가 지녔던 광대한 만주 영토는 상실되었고, 한반도 중심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삼국통일은 오랜 내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문화· 제도 통합과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편 예고


삼국통일시대 2 – 연개소문과 고구려의 최후 1편


연개소문 개혁의 성격과 권력 투쟁, 수·당과의 전쟁, 그리고 고구려 최후의 생존투쟁까지—

고구려 몰락의 근본 원인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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