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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8

삼국통일의 시대 3 ㅡ (당태종 이세민, 고구려 침략 배경과 의미)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58

ㅡ 삼국통일의 시대 3 ㅡ

(당태종 이세민, 고구려 침략 배경과 의미)


오늘은 당태종 고구려침략 사건을 조금 더 세밀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1500년 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반도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 강한 국가가 형성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언제나 명분을 만들어 압박하거나 견제해 왔다.


오늘날 주시되고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만 보아도 그 여파는 언제든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상황 역시 중국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사안이다. 중국은 이미 이런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와 작전 계획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아래 지도 참고)


따라서 우리는 과거와 유사한 상황을 통해, 중국의 전략적 움직임을 역사적 경험으로 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잘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1. 수·당의 총력전과 고구려 멸망


수나라는 국력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여러 차례 고구려를 공격했고, 그 결과 스스로 멸망했다. 당나라는 한때 실패했지만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그토록 무리해서 고구려를 공격해야 했을까?


그 중심에는 당태종 이세민의 야심, 즉 오늘날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과 유사한 '중화패권' 이상 이 자리하고 있었다.


2. 당태종과 연개소문 정변


고구려는 수와의 전쟁 이후에도 요동패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당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했던 당태종은 주변국가들을 제압하며 팽창하고 있었지만 고구려만큼은 굴복하지 않았다.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을 위해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 그리고 고구려를 <모욕적인 요구, 대외정책 간섭, 각종 첩보활동>

등으로 압박을 계속했다.


반면 고구려는 이에 큰 대응을 하지 못했고, 그 틈을 타 고구려 주변 종속국들이 점차 고구려 영향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영류왕 '대당굴욕외교' 빌미가 되어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연개소문은 철저한 <독재체제구축, 대당강경전략, 요동방어강화> 등 정책 펼쳤고, 이는 당태종에게 고구려침공 명분을 완성시켜 주는 행위 가 되어 버렸다.


유혈정변으로 집권한 연개소문은 대외강경책을 통해 정권을 안정시키려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비정상적 정권이 흔히 보이는 모습과 유사했다.


4. 당태종의 명분 축적


당태종은 연개소문 쿠데타를

<고구려 내부혼란, 정통성 상실>

로 규정하고, 고구려를 ‘안정’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특히 당과 우호적이었던 '영류왕'을 살해한 점을 크게 부각하며 연개소문을 “반역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었다.


실제 침략 이유는 훨씬 더 복합적이었다.


5. 당태종이 고구려를 반드시 공격해야 했던 이유


동북아 중화질서확립 야망을 가진

고구려는 동북아 독자적 강국으로 당의 패권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당태종은 고구려를 굴복시켜야만 동북아에서 중국중심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시진핑의 ‘중국몽’과 같은 성격을 띤다.


좀 더 내용을 상세히 살펴보자.


1) 정치적 위신 강화


즉위 후 태종은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수나라 실패를 극복하는 전승이 필요했다.

고구려 정벌은 당의 위대함을 입증할 무대였다.


2) 신라–당 동맹과 고구려–백제 연합의 출현


동아시아 세력 구도가 재편되자 당은 고구려 적대적 행동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3) 국경충돌과 외교갈등


신라가 고구려의 침공을 호소하자 당은 고구려에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나라 국경인 ‘영주(유성)’ 를 선제 공격했다.


이후 양국은 <사신감금, 정탐활동>

등을 주고받으며 이미 사실상 전쟁상태로 돌입했다.


결국 당태종 고구려 침략은

<내부권력 변화 + 동북아 질서 재편 + 당의 패권야망>이 복합된 결과였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악화시키고 전쟁불길을 키운 연개소문 책임도 결코 적지 않았다.


6. 당태종 ‘대고구려 전쟁연설’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앞두고 당나라 노인들을 불러 정벌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수나라 때 참패를 기억하는 노인들 두려움을 없애고, 이번 전쟁은 명분 있는 전쟁임을 천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하였다.


“요동은 옛 중국 땅이며, 개소문이 임금을 죽였으니 내가 직접 정벌하겠다. 나를 따라오는 자들 자식과 손자는 내가 잘 돌보겠다.”


그럼에도 노인들과 신하들은 모두 출정을 만류했지만, 당태종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고구려 정벌 정당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근본을 버리고 지엽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으니 그들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살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다.”


7. 본격적인 침략


그리고 마침내 645년, 당태종은 약 20만 대군(혹은 30만~50만으로 보는 설도 있음) 을 직접 이끌고 고구려로 침공하였다.

중국의 병력 수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 이다.


8.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하는 역사적 메시지


오늘 내가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위협은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왔다. 중국은 한반도를 늘 기회이자 동시에 잠재적 위기로 바라보아 왔으며, 이러한 인식은 한반도 국가들에게도 중국이 항상 기회이자 위협으로 작용해 왔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 역사, 특히 고구려·수·당 전쟁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안시성전투 전개>와 <양만춘이름 의미>에 대해 자세히 다루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


첫 번째 사진 당태종 이세민

두 번째 사진 연개소문 상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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