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혹시 잊은 것은 아닐까.
이대남이 던진 시대의 새로운 화두. 극우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들.
너나없이 그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를 비난하기만 하는 것 같아...
욕을 먹을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한심하다고 비난만 해도 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 땅의 50대는 너무나 당당하게도 남녀 할 것 없이 70%가 계엄을 막아내는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 저 철없는 것들은... 그래. 솔직히 인정하면 우리 자녀들이다. 그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고민하는 여러 뉴스와 채널을 보고 있다.
분명 이 시대의 사회상을 고발하는 것임에도 어쩌면 한집안에서 부모자녀의 갈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곤 한다. 자주 듣던 말. '대체 왜 저러는 건가.' '어쩌자고 극우의 편에 서는가'
좀 더 심각한 고민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20, 30대의 여성들과 그들 안에서 25%의 소수가 되어버린 남성들의 고민은 더 현실적이다. 아이가 말했다.
엄만 쟤네들이라고 말해버리면 되지. 나는 같이 군대를 가고 일을 하면서 함께 살아야 하잖아.
그냥 생각이 없는 거야. 논리가 없어. 토론이 안돼. 그래서 답이 없다고.
동시대를 사는 그들의 언어는 더 처참하고 그만큼 리얼하다.
20대가 선거로 보여준 그들의 표현이 과했을 뿐일까.
10대는 다를까. 자신하건대... 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으리라 나는 예상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들려오는 남중 남고의 현실은 생각보다 비정하다. 여자 선생님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은밀한 조롱과 희화화된 에피소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20대가 되었을 때 드러나게 될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은 더 극단적일 수 있겠다는 예상을 15년 이상 학교 현장을 오가는 나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문화가 극우적이고 차별과 경멸적인 표현으로 인한 분열을 일상에서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들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낙관적으로 웃어 넘기기엔 이미 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답답한 마음에 그들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그들은 정치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분명 그게 다는 아닐 테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1차적인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그것은 분명히 해야 하고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사고와 행동과 정서의 책임은 그들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다 하더라도 내 삶의 결정이 타인과 문화와 세상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고 무책임이다. 내 삶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것을 접어두고 다 기성세대가 원인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다만 우리는 부모세대의 입장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4월에 꽃이 피면 눈물이 흐르던. 11년 전의 약속.
잊지 않겠다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사방에 달고 다짐했던 기성세대의 반성문.
젊은 이들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노라던 우리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의 참사에 이어 이태원의 참사가 이어지고 채상병의 죽음뿐만 아니라
현장의 젊은 노동자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도
우리는 젊은 그들의 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세상이 그들의 삶을 소모품처럼 여기거나 부모님의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문화를 경험하게 한 것에 기성세대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효율적인 성과를 내라고
성실하게 일하라고, 뭔가를 보여달라고 이곳저곳으로 밀어 넣고서
그들이 답답함에 자해를 하고, 온라인으로 참혹한 집단 성희롱과 조롱과 비아냥으로 그 한을 풀어내는 문화를 만들어가며 극우에 빨려 들어갈 때 우리가 잠시 우리의 세상을 멈추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건강하게 살고 있어 소중하고 귀하다는 그 귀한 진심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고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는 것.
어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방황하는 20대의 불완전함이 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지켜지는 일.
성적과 등급에 매달려 희비를 오가는 일 이전에
그들의 일기장과 SNS가 검열되어 잘잘못을 비난받기 이전에
자녀라서 당연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무조껀 강요하기 이전에
그가 가진 의견이 존중되고 함께 논의될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 신뢰로움이 경험되는 일
삶에서 경험되어야 할 민주주의.
당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잊지 않겠다'
우리가 그 눈물 어린 약속을 삶이 고달프다는 이유로 놓치고 산건 아니었는지를
우리 스스로에게도 소심하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