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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영 Jul 31. 2024

한국 성인 신앙의 삶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의 시작과 동시에 박해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발적 신앙의 확산과 평신도 중심의 활발한 성장이라는 밝음에는 박해라는 어둠이 있었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초기에는 가톨릭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과 유교 질서 확립을 공고히 하며 가톨릭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가톨릭은 유교의 대척점 그리고 서양 세력 선봉의 상징이 되어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조선에는 한국 천주교의 신앙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신분과 남녀 등 차별을 넘어 많은 백성들이 가톨릭 신앙의 길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박해를 피해 곳곳으로 숨어들어 교우촌을 형성했다. 누군가는 누리고 있던 부와 권세를, 누군가는 핍박에 쫓기는 신분을 내려놓고, 천주 안에서 모두가 평등한 신앙 공동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박해의 물결은 거셌다. 물 밀 듯 몰아치는 박해의 서슬퍼런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이름난 성지는 대부분 순교 성지이다. 그만큼 박해의 역사가 깊고 아프다. 전국 곳곳에 신앙 선조들의 피가 서린 성지가 있으며, 그곳마다 죽음으로도 꺾이지 않던 신앙의 꽃이 지금까지도 향기를 내고 있다. 성지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던 선조들의 웃음과 눈물이 보이는 듯 하다.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서로 친교를 이루며 살다가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천국의 삶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전국 곳곳에 자리한 성지들에 담긴 사연도 다양하다. 순교 성지뿐 아니라 박해를 피해 척박한 곳으로 숨어들어 신앙을 지키려 노력했던 교우촌(신앙촌) 성지도 있다. 또 가문과 가족이 함께 신앙을 꽃 피운 성지도 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로 살아가던, 기도하고 일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이 서려있는 그곳으로 함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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