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주제 - 핑계
핑계 [핑게/핑계]
명사
1.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2.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사전적인 의미만 보면 핑계를 대는 건 참 찌질한 일 같다. 나는 돌직구를 날리는 스타일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핑계 따위, 국 끓여 먹었다. 선생님이 수학 숙제를 왜 안 해왔냐고 물으면 ‘노느라 못했어요. 완전히 까맣게 잊었어요.’라고 말하고 당당하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너무 작고 마르고 무슨 말만 해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저러니 청년 선생님은 당황하셨다. 더 세게 때려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셨다. 나는 구차한 변명을 대는 게 싫었다. 솔직한 모습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남이야 상처를 받든 말든 내 알바 아니었다. 나는 늘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내가 너무 답답하고 싫어하는 스타일은 곰씨 같은 사람들이다. 오늘 추천하고 싶은 노인경의 그림책인 <곰씨의 의자>에 나오는 곰씨다.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씨는 몹시 지쳐 보이는 토끼에게 의자를 내어준 후 차마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생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곰씨는 의자에서 토끼를 내보낼 핑계가 필요하다. 곰씨의 스펙타클한 핑계가 눈물겹다. 예전의 나라면 ‘진짜 구질구질하다. 찌질한 곰씨.’라고 욕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변했다. 돌직구를 즐겨 던지는 내가, 친구가 던진 강스트라이크 돌직구에 마빡을 정통으로 맞아 대자로 뻗은 후 달라졌다. 내가 던질 땐 시원했던 돌직구가 맞아보니 아팠다. 곰씨가 토끼에게 차마 말하지 못해 핑계를 찾는 건 찌질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토끼가 받을 상처를 짐작하고 배려해서 이기도 하다. 물론 곰씨의 모든 핑계가 그러하진 않다. 진짜 구질구질해서 ’차라리 말을 해!‘라고 외치고 싶은 장면도 있다. 하지만 서로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핑계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누군가 적당히 예의 바른 핑계를 말할 때 내가 재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돌직구를 던질 용기를 필요로 하기 전에.
“토끼야, 우리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