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주제 - 추억
‘추억’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이십 대 초반, 소록도에서 한 달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함께 봉사했던 언니, 오빠들과 제주도로 2주간 여행을 떠났다. 방짝언니가 제주도 사람이라 유명관광지가 아닌 제주도 현지인들이 다니는 곳으로만 골라 다녔다. 관광객도 없고 한적했다. 한라산 기슭 어딘가를 지나다가 차를 세우고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으로 싸 온 음식들을 나눠먹다가 다 같이 누워 한참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정확하게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돗자리를 편 곳은 평평하고 너른 마당 같은 곳이었고, 우리가 누워있던 곳 옆으로 골짜기같이 급경사의 절벽이 있었다. 그 절벽 옆으로 빽빽하게 우거진 숲이었는데 그 숲에서 까마귀가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 옆에 앉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까마귀를 봤다. 너무 커서 놀랐다. 그전엔 까마귀도 까치랑 비슷한 크기일 줄 알았다. 너무 놀랍고 신기한데 혹시 소리를 내면 도망갈까 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한참을 관찰했다. 서울에서만 살던 나는 숲도, 새도 신기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간 것도 신기한 일이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도 미치도록 좋았다. 나는 젊었고, 살아있었다.
“우리는 나중에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겠지.”
“10년쯤 뒤에 우린 어떻게 되어 있을까?”
“다들 시집 장가가서 아이 엄마, 아빠가 되어 있겠지. 그럼 애 키우느라 바빠서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안 돼! 절대 안 돼!”
“그럴 수도 있지.”
“싫어! 난 추억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거야!”
“그래라.”
언니와 오빠들은 지금 이 순간을 꼭 추억하라는 나의 투정을 귀여워했다. 소록도에서도 제주도에서도 참 행복했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행복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왔는데 드리긴커녕 받기만 하다가 왔다. 그야말로 나눔의 신비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나눈다는 일이 그렇다. 별거 아닌 일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일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도 그런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는 나눔에 대한 이야기다. 정진호 작가의 <위를 봐요>
한 소년이 소녀를 위해 나눈 마음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게 하는지, 얼마나 좋은 추억이 되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정진호 작가와의 추억도 있다. 동네 도서관에서 정진호 작가의 강좌를 들었는데 강의 시간에 책을 만드는 활동도 너무 재밌고, 같이 전시회를 다니는 것도 행복했다. 그분은 싸인도 유쾌하다. 소중한 추억을 준 정진호 작가에게 감사하며 그분의 책들을 소개한다. 모두 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