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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틈을 채우는 것은

1월 12일 주제 - 틈만 나면

by 생각샘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들이 틈만 나면 게임이다. 유튜브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손에 놓지 않는다. 친구들과 오고 가는 말들이 걸쭉하다.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차라리 아들이 방문을 닫는 게 마음이 편하다. 서로 맘만 상할까 봐 침을 꿀꺽, 잔소리를 삼킨다. 지금은 저런 아들도 아가 때는 달랐다. 틈만 나면 책을 읽어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통에 나는 늘 목이 아팠다. 어떤 책이든 읽어주는 걸 좋아했지만, 특히 두 권의 책은 정말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보고 또 보았다. 내가 보기엔 별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아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본걸 또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한참을 봤다.


루스 크라우스의 <코를 킁킁>과

제즈 앨버로우의 <안아 줘>


동물들이

코를 킁킁.

동물들이

달린다.

눈 틈에 핀.

꽃 보러.


아기 고릴라는

자신을 안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엄마가 없는 틈.

아기 고릴라는 외롭다.


틈만 나면

책을 보던

내 아이는

엄마가 바쁜 틈에도

자랐다.


이제

책으로 채우던 틈을

핸드폰으로 채운다.

엄마만 아쉽다.


아이가 어릴 때 보던 책들은 다 처분했다.

하지만 저 두 권의 책은 차마 없애지 못했다.

옥상 창고 깊숙이 넣어두었다.

아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틈을 또 채워주길 바라는

나만의 욕심이다.


덧.

<안아줘>를 읽고 나면 엄마 동물들이 아기를 안아준 것처럼 나도 우리 아기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천 번은 안아주었나 보다. 저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내 아이는 틈만 나면 안아달라고 한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안아달라는 말을 해서 주변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힘들어도 안아 줘. 배고파도 안아 줘.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안아 줘.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뒤에서 폭죽을 터뜨려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어놓고 괜히 미안하니까 안아달란다.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중학생 아들이 틈만 나면 엄마를 안아주다니! 나는 참 행복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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