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주제 - 기차
이십 대의 나는 부산을 좋아했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부산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저지르지는 못했다. 대신 부산 친구들을 만나러 종종 부산으로 가곤 했다. 지금은 부산 가는 기차를 타면 정말 금방 가지만 예전엔 달랐다. 특히 밤기차를 탈 때는 밤에 타면 새벽에 도착했다. 여행비를 줄이려면 밤기차를 타고 갔다가 밤기차를 타고 오는 게 좋았다. 여자 혼자 밤기차를 탄다는 게 참 두렵기도 했지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홀로 밤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설레어 가슴이 뛰었다. 그 시절엔 기차라는 말만 들어도 밤기차의 설렘과 두려움이 떠올랐는데 아이 엄마가 된 후론 달라졌다. 뭐든 다 아이를 위주로 먼저 생각하고 떠올린다. 아이의 엄마로 사는 설렘이 여행의 설렘보다 컸다.
아이가 네 살 때 엄마표 독서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방식은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관련된 책을 다 골라서 함께 읽고 독후 활동으로 무언가 그리거나, 쓰거나, 만들거나, 놀이를 하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주제가 기차였다.
차오쥔옌의 그림책 <칙칙폭폭>
도널드 크루즈의 그림책 <화물열차>
박은영의 그림책 <기차 ㄱㄴㄷ>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읽고 색종이로 기차를 만들어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도록 했다. 아이도 나도 신났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만드는 그 시간이 달콤했다. 그렇게 독후활동을 하며 자란 아이는 6살이 되자 직접 그림책도 만들었다. 첫 번째 그림책도 기차에 관련된 그림책이었다.
<신발 신은 기차 빵꾸>
바퀴가 아닌 신발을 신은 기차가 친구들과 벌이는 모험 이야기다. 빛의 속도로 빨리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신발을 신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기차라니! 나는 따라갈 수 없는 기발한 아이의 상상에 감탄을 하며 보았던 내 아이의 첫 번째 그림책을 소개한다.
어느덧 아이가 자라 책보다는 여행에 끌리는 청소년이 되었다. 왜 우리는 여행을 안 가냐고 성화다. 올해는 꼭 가족끼리 기차여행이라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