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주제 - 고향
나는 영등포에 있는 성애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날 때는 성애병원이 아니라 성애의원이었다. 작은 동네 의원이었다. 나는 영등포구의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던 시기에 유독 더 가난한 동네였다. 우리 부모님은 영등포구 골목의 작은 셋방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시면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초등학교 2학년 때 기와집으로 이사를 갔다. 마당을 중심으로 부뚜막이 딸린 방 3개, 쪽방 1개, 마루 1개, 옥상, 욕실, 창고가 둥글게 둘러싸고 있고 대문 쪽에는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이 있었다. 각 방마다 부엌이 딸려있어서 세를 줄 수 있는 집이었다. 엄마는 각 방마다 세를 주었다. 갓난아기가 있는 세 식구 신혼부부 2쌍이었다. 그 아기들의 이름을 내가 왜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종구와 현민이. 어제 만난 사람도 기억을 못 하면서 그 아기들의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상한 일이다. 이 집에서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행복했던 기억보다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래도 어린 시절 가장 유복했던 시절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에는 형편이 더 어려워지면서 지하 셋방으로 다시 전전해야 했다.
그림책 <만희네 집>을 보면 그 집이 생각난다. 나무와 풀이 그때 우리가 살던 집보다 많아서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집의 구조나 생김은 상당히 비슷하다. 마당을 둘러싼 방들, 마루도 비슷하지만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특히 비슷하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옥상에 심었던 고추, 빨래, 장독대가 기억난다. 그리워할 만한 딱히 좋은 일도 없었던 거 같은데 그리워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현재 그 집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갈색 벽돌 4층집이 들어서있다. 우리 부모님은 그 동네 집들을 돌고 돌아 결국은 그 집의 옆으로 이사해서 살고 계신다. 훨씬 넓고 좋은 집이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