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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빠가 우리를 버리겠다고 선포한 날

3월 10일 주제 - 형제

by 생각샘

나의 형제는 남동생 한 명이다. 어릴 적에 우린 정말 징그럽게 많이 싸웠다. 아니 싸웠다는 표현도 맞지 않다. 내 동생은 나한테 불쌍할 정도로 많이 당했다. 내 동생은 순하고 나는 진짜 못 돼먹은 누나였다. 이기적이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누나. 그런 누나도 누나랍시고 착한 내 동생은 참 잘 따랐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동생의 착한 모습마저 싫었다. 그냥 항상 귀찮고 내가 혼자 다 가져야 하는 걸 빼앗는 몹쓸 존재라고 생각했나 보다. 동생과 나는 25개월 차이가 났는데 엄마는 내가 동생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정말 얄미웠다고 한다. 동생이 엄마 젖을 먹는 것만 봐도 얼마나 심하게 꼬집고 물면서 달려드는지 엄마는 본인이 낳은 딸인 내가 밉고 무서워 매몰차게 때렸다고 한다. 오은영이 봤다면 ‘잠시만요. 어머니, 첫째도 아직 30개월이 안된 아가예요. 이건 학대입니다.‘라며 기겁을 했을지도. 아무튼 동생을 질투하다가 엄마한테 더 혼이 나서 그랬는지 나는 정말 동생을 많이 괴롭혔다. 요즘 같으면 금쪽이에 나와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심각하게 괴롭혔다. 나이를 한 두 살씩 먹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동생도 살기 위해 누나인 나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우린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동생도 나도 국민학생이었던 어느 날 밤, 일이 터졌다. 그날도 둘이 피 터지게 싸우며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들과 딸의 한치도 양보 없는 전투로 마음이 지쳤던 엄마는 아빠를 불러 이 둘을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셨고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둘 다 외투 입고 따라 나와!‘라고 하셨다. 어두운 밤이었다. 우린 잔뜩 풀이 죽어 아빠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익숙했던 동네 골목길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접어들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끝나지 않는 침묵 속의 산책을 한참동안 했다. 조용하고 어둡고 무거운 공기가 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아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숨도 못 쉬고 바들바들 떨며 아빠 뒤를 따라갔다.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무 많이 싸운다. 엄마와 아빠는 지쳤다. 이제 너희를 키우기 힘들다.



어둡고 무거운 두려움이 끝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 뻘건 핏물 같은 막막함이 엄습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아빠가 우리는 버리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짐을 싸서 고아원에 들어가야 하나보다.



그 와중에 동생이랑 같은 고아원에 가게 될까, 다른 고아원에 가게 될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만약 같은 고아원에 간다면 나는 얘를 아는 척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 뒤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며 걱정하던 엄마가 호들갑스럽게 반겨주며 뭘 하다가 이제 왔냐고 너희 아빠가 그렇게 오랫동안 데리고 나가서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차마 이제 고아원에 간다는 말을 내 입으로 하기 싫어 그냥 들어가 잤던 것 같다.


형제랑 많이 싸운 사람들은 이런 비슷한 감정을 잘 알까?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에는 우리 남매만큼이나 많이 싸울 것 같은 남매가 나온다. 그 남매의 엄마도 이 둘을 내쫓는다. 남매는 한 터널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 뒤 우리 남매에게 일어난 일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리 남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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