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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오는 시골의 밤

3월 19일 주제 - 밤

by 생각샘 Mar 20. 2025

 외갓집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첩첩산중 두메산골이었다. 외갓집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구령동 고개라 불리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말이 고개지. 웬만한 동네 뒷산보다 높은 산이었다. 왜 구령동 고개라 불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구령동 고개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온갖 토종 귀신들이 나오는 고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에 지나가려고 해도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는 으스스함이 느껴지는 묘한 곳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외진 산골이라 더할지도. 아주 어릴 적, 아마도 내가 예닐곱 살쯤 먹었던 겨울밤이었을 거다. 막차를 타고 외갓집에 가느라 산을 넘어야 했다. 겨울인 데다 산골이라 해가 빨리 졌다. 어둠이 내린 산길에 하얀 눈이 발목까지 쌓여 우리 네 가족이 눈을 밟으며 걸어가는 소리만 뽀득뽀득 들려왔다. 점점 깊어지는 산속을 한참을 가고 있는데 응애응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려 사람도 살지 않는 산속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얼마나 소름 끼치고 무서운 일인지도 몰랐다.


“엄마,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어, 그래. 빨리 가자.”

“어느 집에서 아기가 울지?”

“우리 노래 부르면서 갈까?”

“무슨 노래?”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엄마, 아빠, 나와 동생까지 네 명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산을 넘었다. 가도 가도 아기 울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털썩 주저앉으며 할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욕을 했다.


”엄마! 아우, 망할 놈의 여우새끼가! “


 엄마가 할머니에게 마을 입구까지 여우새끼가 쫓아오면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통에 아주 혼쭐이 났다고 푸념을 했다. 여우새끼한테 홀리면 귀신한테 잡혀간다며 아이들을 지키느라 추운 줄도 모르고 등이 다 젖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엄마말을 듣고서야 어린 마음에도 너무 무서워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온갖 귀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도깨비불, 혼이 붙은 머리끈, 발가벗고 쫓아온다는 어린아이 귀신인 업둥이, 여우 귀신, 뱀 귀신 등 외할머니와 엄마와 이모들이 겪은 귀신 이야기만 해도 한 보따리다. 그래서 시골의 밤은 더 어둡고 오싹하고 으스스하고 서늘하다.


 어릴 적에 외갓집에서 듣던 귀신이야기를 이야기 책으로 만나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그림책 시리즈가 있다. 이춘희 작가의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 시리즈다. 그중 <똥떡>, <야광귀신>, <밤똥 참기>, <달구와 손톱>을 소개한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집중을 해서 듣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자꾸만 읽어주고 싶어진다. 나도 어릴 때 그런 표정으로 외할머니와 이모들에게 자꾸자꾸 귀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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