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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an 06. 2025

이 세상에 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1월 6일 주제 - 눈

눈에 눈:이 들어가서 나오는 물은 눈물일까 눈:물일까?


 중학교 때인가? 단음과 장음으로 동음이의어를 구분하여 읽는 법을 배우며 선생님은 칠판에 저렇게 쓰셨다. 우리는 어쩐지 재미있어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 저 문장을 말하며 장난을 치곤 했다.


 나는 눈이 싫다. 아빠는 트럭운전사였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엄마의 한숨소리가 길었다. 길이 미끄러우면 아빠가 또 사고가 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셨던 거다. 하얀 눈이 아름답게 펑펑 내리는 창밖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아이고 저 놈의 눈, 그만 좀 오지.’라고 중얼거리셨다. 아빠는 사고가 자주 났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아빠가 무사하지 못할까 봐 어린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아빠는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기 무섭게 돈걱정을 해야 했다. 사고처리비. 자동차 수리비. 엄마의 한숨이 길어졌다. 엄마 눈에 눈:이 들어가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눈이 싫었다. 눈만 내리면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발 저 눈이 멈추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사고 안 나게 해 주세요. 이 세상에 눈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빌고 또 빌었다. 눈이 오면 사람들은 신나나 보다.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기분이 드나 보다. 나는 아니다. 눈이 오면 우리 아빠 사고 날까 봐 너무 무섭고, 질척 질척 길이 더러워지고, 빙판에 넘어져 다칠까 봐 걱정부터 든다. 눈이 싫다. 5년 전부터 눈이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코딱지만한 우리 집 천장에 비가 새기 시작했다. 반상회를 열고, 20세대 사람들을 설득하여 옥상 방수를 다시 했다. 그 후로 비는 새지 않는다. 그런데 눈이 오면 물이 주르륵주르륵 떨어진다. 참 요상한 일이다. 눈만 오면 벽을 타고 줄줄 흐르는 저 물은 눈:물인가, 나의 눈물인가?  나는 눈이 싫다. 집을 팔고 이사를 가고 싶은데 집이 저러니 팔 수도 없다. 한숨이 길어진다. 눈이 오면 한숨이 더 길어진다.

 눈이 오면 나는 이 세상에 눈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 엄마는 제발 남편만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나 보다. 길고 긴 한숨 끝에도 항상 ’그래도 니네 아빠는 무사할 거다. 니네 아빠는 꼭 지켜주시더라.‘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엄마의 믿음이었고 신앙이었다. 또 돈걱정을 할지언정 내 남편은 무사한 것. 그러면 다 괜찮다는 것. 우리 집안의 가장이 무사하면 그게 가장 소중한 기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의 이야기다. 글 없이 그림만을 보여주며 스토리를 전하는 피터 콜링턴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책 표지에 소개하고 있다.

<작은 기적>

 춥고 쓸쓸하고 서글프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한 할머니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홀로 쓰러진 할머니의 모습은 딱 내가 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다. 나는 눈이 싫다. 눈은 외롭고, 위험하고, 지저분하다. 그래도 나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제 눈:이 와도 우리 집 벽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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