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주제 - 여행
우리는 세 식구다. 셋 다 집돌이 집순이다. 어디 나가는 게 너무너무너무 귀찮다. 그냥 집에서 맛있는 거 시켜 먹고, 뒹굴뒹굴 거리면서 영화 보고, 게임하고, 졸리면 자고 그러는 게 좋다. 밖은 너무 덥거나, 춥거나, 힘들거나, 귀찮다. 그러다 보니 셋이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을 못 다녀왔다. 물론 돈도 없지만 정말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한 번쯤은 다녀왔을 수도 있는데 남편도 나도 계획조차 짜본 적이 없다. 심하게 게으르다. 심지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경기도 밖을 벗어난 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자기 친구 누구는 유럽을 다녀왔고, 누구는 호주를 다녀왔고, 누구는 미국에 갔다는데 본인은 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냐고 물었다. 왜 자기만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냐고, 진짜 이 세상에 비행기가 있고, 다른 나라가 있냐고 물었다. 온 세상이 자기를 속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 여행을 계획했다. 집보다 행복했다. 비행기를 타는 아이의 상기된 표정은 집에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바람 부는 갈대밭 언덕에서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다니는 아이의 활기찬 모습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꽤 오래 걸어야 하는 숲체험에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제 발로 걸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며 우리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다니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5, 6년 전이다. 그 이후에 가족 여행은 못 갔다. 몸이 바쁘거나, 마음이 바빴다.
이십 대 청춘에는 이렇지 않았다. 툭하면 집을 나가 헤매고 돌아다녔다. 엄마가 넌 사주에 역마살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다. 친구랑 배낭을 둘러메고 계획도 없던 여행을 훌쩍 떠나거나, 친구가 차를 산 이후에는 친구가 핸들을 돌리고 싶은 곳으로 다녔다. 특히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떠나고 싶어졌다.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연애사업이 삐그덕 거리면 그냥 떠났다. 여행을 떠나면 머릿속에서 그 골치 아픈 일을 잊을 수 있었고 그게 좋았다. 하지만 다녀오면 내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걸 깨닫고 난 후로는 문제가 생겨도 대책 없이 떠날 수는 없었다. 나는 여행을 통해 원하던 해결책을 찾은 적이 없어 이제 떠나지도 않지만 내가 소개하는 책 속의 주인공은 떠난다. 오늘 소개할 책은
<곰돌이 워셔블의 여행>
한 때 사랑받던 인형이었지만 낡고 보잘것없는 인형이 된 후로 할 일이 없어 앉아만 있다가 지나가는 파리의 말을 듣고 여행을 시작한다. 파리는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면 바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워셔블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만나는 이에게 묻는다.
“나는 왜 살까?”
십 대, 이십 대인 청춘에는 저 물음을 자주 던졌다. 하지만 답을 알 수 없어 괴로워했다. 사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은 저 물음조차 던지지 않는다. 가끔은 생쥐처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고, 가끔은 벌처럼 그냥 생각 없이 바삐 움직이고, 가끔은 되새처럼 그런 이유 따위 알고 싶지도 않을 때도 있고, 가끔은 나비처럼 발전하고 싶다. 워셔블이 이 여행을 통해 자기가 사는 이유를 찾았을까? 나는 여행을 통해 찾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머무르던 곳에서 찾았다. 나와 함께 머무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그 이유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