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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환 Oct 21. 2020

허세와 진심 사이

가끔 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지만, 허세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자주 하는 허세 중 하나는 <호텔 가서 헬스장 가기>가 있다. 평소에는 운동을 자주 하지 않고, 귀찮아 하지만 여행 가서 호텔 가면 시간 내서 하고 오곤 한다. 


숨겨진 심리에는 

1. 난 놀러 왔어도 성실해 

2. 다 같이 여행을 왔어도 독립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야. 

3. 호텔에서 운동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마음들이 있다. 


 호텔 가서 운동가는 건 꽤 많은 제약들이 있다. 이미 짐을 줄여서 왔기에, 운동화도 빌려야 하고, 옷도 내 옷이 아니고, 보통 24시간이 아니라 시간도 잘 맞춰서 가야 한다. 다른 여행 일정이랑 잘 맞지 않으면 같이 여행 온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얻을 수 있다 :) 그런데 그런 제약 가운데에서도 운동을 하면, 그다음 날 혹은 남은 여행 일정에서 힘을 얻는다.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흥분을 동반한 긴장상태, 손에는 한가득 짐으로 인한 피로감, 낯섦과 안도감을 반복하는 감정의 진폭 이 있어서 그런가. 운동은 그런 마음의 소용돌이를 잔잔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난 스스로 이 행동이 좋은 허세라 생각한다. 


 가끔 우리는 객관적으로 어떤 걸 하기 어렵다고 자신 스스로가 알고 있지만, "막상 해보면 나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무의식적으로 숨겨진 허세를 발견한다.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게 이상하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럴 땐 <호텔에서 운동하기> 와는 다르게 내가 실제로 나서서 하기 어렵다. 


 하지만 등 떠밀면 "해볼까?"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것들은 모두들에게 큰 재미를 줬다.  

난 대학교 OT 때 장기자랑 시간에 무대에 올라가서 춤춘 허세의 기억이 있다. 막상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올라갔는데, 지금 그때의 사건을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려서 터질 것만 같다. 약간 재킷과 패딩 사이의 옷을 입고 올라가서 그걸 벗어던지고 시작했는데 분위기 다 망치고, 우리 같은 조 애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걸 가지고 아직도 놀린다. 


 그 10년이 흐른 동기의 결혼식이 이번 주에 있다. 6년을 사귄 그 커플의 와이프 되실 분도 동아리 후배라 익숙하다. 동기의 자취방에서 마지막 축하 자리를 가지던 날.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 와중 동기에게서 축가를 해달라는 농반진반의 제안이 왔다. 다들 술김이었는지 어떤 자신감이었는지 몰라도 호기롭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동기 6명은 그렇게 축가를 하게 되었다. 


 마음속에서는 "나쁘지 않을지 몰라"라는 마음이, 더불어서 "언젠간 한번 축가 같은 걸 해보고 싶은데 잘됐네."라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숨겨져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노래도 못하고 몸치에 그렇다고 재미도 없다. 연습을 거듭하며, 아무래도 우리들 마음속엔 "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라고 자리하고 있다. 분명 축가를 제안한 예비부부의 마음도 알지만 냉정히 봤을 땐 우리 말고 축가 한 팀을 섭외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 


 허세가 섞이긴 했지만 어느 누구보다 축하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다. 허세라는 마음이 앞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두렵지만, <호텔에서 운동하기>처럼 결국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까지 했을 때, 모두 다 만족할 수 있길 바라며, 좋은 허세로 마무리되길 바래본다. 


(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MR을 듣고 있지만, 옆에서는 평생 놀릴 흑역사가 될 거라 기대하는 아내의 미소가 마음에 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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