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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Nov 03. 2023

1차 산행을 신청합니다


산행지 : 4구간 (고기리~권포리)

위치 : 전북 남원시 주천면 ~ 전북 남원시 운봉읍

버스 출발지 집합시간 : 새벽 2시 15분

도시락 준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들 신학기가 시작되어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렀다. 어느덧 백두대간 산행날이 다가왔다.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에서 배낭을 뽑아냈다. 부엌 짐에서 보온병을 찾았다. 구획만 적당히 나눠 쌓아 놓은 옷더미에서 등산복을 찾아 현관 앞으로 옮겨 쌓아 놨다. 발이 또 자란 아들의 새 등산화도 도착했다. 개학 이 주 만에 산행이라니, 학부모 동아리라 학기 초 사정을 뻔히 알 텐데 숨 돌릴 틈을 안 준다. 날짜가 임박해서야 산행 공지를 보다 몇 차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출발지 집결 시간이 몇 시라고? 새벽 2시 15분!


4년 전에 열 살 된 아들을 어르고 달래 산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려면 준비할 것도 많았지만 출발시간도 중요했다. 너무 일찍 갔다가 아침 찬 바람에 한 발을 떼지 못하고 돌아온 후에는 아침이슬 마를 시간을 기다려 출발했었다. 새벽 두 시 저 시간에 모이면 지리산까지 4시간은 이동한다 해도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이다. 열 살 때는 불가능했을 일인데 열네 살이 되어 가능한 걸까? 


아들은 열 살이 되면서 눈빛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눈 속 저 깊은 곳에 뭔가 바뀌었다. "응, 엄마." 대답했을 법한 타이밍에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어느 날부터 듣지 않았다. 왜 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둘만 걸어야 하는 산길에서 아이는 안에 담긴 것들을 자기도 모르는 새 다 꺼내놓았다. 벽이 쌓여가던 아이와 다시 대화의 물꼬가 다시 터졌으니 가기를 잘했다고 여기고 있다.  중학생이 되면 이제 정말 멀어지겠구나 각오했다. 이젠 아들과 거리감이 느껴져도 그럴 때가 된 거라 받아들여야지. 아이가 진학할 중학교에 학부모 OT가 있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백두대간 동아리 소개를 듣는데 함께 하다보면 사춘기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산에서 부모와 다정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요새 산에 안가고 있긴 한데, 한번 해볼까?


아들은 산은 절대 싫고, 남편은 그 힘든걸 왜 하냐고 했다. 올해 초등학교를 입학한 둘째 딸은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이사와 맡길 곳도 없어 그야말로 사방이 막혔다. '안 가도 되지 뭐. 학교 가려고 왔지, 산에 가려고 왔나.' 체념하고 있었는데 틈이 조금씩 생겼다. 학교 끝나고 차에 탄 아들은 방금 헤어진 친구 셋이 모두 백두에 간다고 했다며 오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도 백두에 간다는 얘들이 많았다고 했다.  "쟤네들이 열 시간 걷는 게 뭔지 알고는 있을까?" 아들은 열 시간 걸려 한라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것도 세 번 도전만에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성공했었다. 이번 산행은 15.5km, 예상 소요시간이 10시간이었다. '쟤네만 걱정인 게 아니라 우리도 걱정이란다, 아들아.'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도 기대만큼 걱정도 되었다. 정리가 안 끝난 집을 생각하면 산에 갈 때가 아니라 이삿짐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갈등되었다. 그 와중에 둘째가 어린이집 다니며 가장 친했던 친구네 하루 밤 다녀오게 되었다. 둘째 맡길 곳이 없는 게 가장 컸는데 해결되고 나니 남편도 자연스레 합류하게 됐다. "산은 이번이 아니면 못 가고, 이삿짐은 나중에 정리해도 되니, 가자." 전체 신청자 122명 중 마지막으로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백두대간 종주의 닻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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