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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Nov 17. 2023

나의 완주를 널리 알려라


구간 : 백두대간 38구간 (이기령-백봉령)

위치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날씨 : 최저 3도-최고 10도

산행거리 : 15.6km (마루금 10.1km+구간 외 5.5km)

소요시간 : 선두(7시간 15분) 후미(8시간 50분)

참여인원 : 158명 (19기 97명, 18기 61명)


  우리 집 주말 풍경은 거의 비슷했다. 남편은 자고, 아들은 게임하고, 딸은 유튜브로 영상을 보며 지냈다. 그랬던 사람들이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산 길을 걸으며 보내고 있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중학생 아들이 별말 없이 따라오고 있는 게 제일 신기했다. 

  나는 이사정리와 산행이 계속된 게 무리였는지 허리가 아팠다. 다음 산행까지 나아야 하니 빨리 병원에 갔다. 허리 때문에 다음 산행부터 짐을 적게 들려고 등에 납작하게 붙는 조끼형 트레일 배낭으로 바꾸고 장거리 산행 때 도움이 되는 무릎 테이핑 방법도 배웠다. 산행이 있으니 미리미리 건강관리를 하게 되었다. 

  산행공지가 올라왔다. 이번에 가는 곳은 백두대간 38구간으로 오대산과 태백산 사이의 이기령부터 백복령까지 15.6km를 걷는 길이다. 이번엔 산행 후에 바다도 갈 예정이다.  

  새벽 두 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유난히 아이들 컨디션이 안 좋다. 어찌나 짜증들을 내는지 “이럴 거면 가지 마!”라는 말을 여러 번 삼키며 현관을 나섰다.  

  버스 탑승지에 도착했다. 두 차례 산행으로 인사할 사람들이 생겼다. 서로 안부를 나누고 짐을 싣었다. 버스 계단을 오르는데 긴장감이 몰려와 숨을 크게 쉬었다. 우리 딸이 오늘도 잘 갈 수 있을까. 

   저번 첫 산행을 다녀와 딸은 "어떻게 엄마가 없어질 수 있냐"라고 했다. 어른들이 당겨주고 밀어주어 완주하기는 했지만 뭔가 분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 갈 땐 딸아이 가는 곳에서 조금만 앞서 가겠다고 약속했다.  

  8살 아이를 달래 가며 백두길을 가는 일은 어려웠다. 백두대간 종주를 소개하는 학부모 가이드에 왜 '자기 아이는 자기가 돌보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은 옆집 부모 앞에서는 체면을 차리고 힘든 걸 참고 가는데 부모에게는 있는 대로 떼를 쓰니 부모도, 아이도 둘 다 앞으로 갈 수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버스에서 잠이 오지 않았다. 휴게소에 내려 하늘을 보니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차다. 오늘 산행을 걱정하는 내 마음 같다. 


    오늘의 백두대간 시작점인 이기령까지 가기 위해서는 부수베리 길을 지나야 했다. 무려 5.5km나 되는 구간 외 길이 참 아름다웠다. 하늘이 뻥 뚫린 계곡 길 가에 햇볕에 나뭇잎들이 반짝였다. 나무들이 계곡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길을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바위의 높게 솟은 쪽을 밟고 갔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다시 오고 싶어 했다.    

  우리 딸은 초반부터 후미가 되었다. 같이 가던 현진이 언니가 앞에 간 엄마를 찾겠다고 가고 설아도 자기 속도 가니 저만치 앞서 버렸다. 그러자 자기도 앞에서 가고 싶다며 울기 시작했다. 앞서 가고 싶으면 빨리 가야지, 서서 울면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나는 어쩌자고 아직 딸과 헤어지지 못했단 말이냐. 

  어찌할지 몰라 있는데 누군가 우리 딸의 손을 덥석 잡고 가기 시작했다. 이번 산행에 처음 온 중1 정현이와 초2 정민이 엄마였다. 딸은 옆집 엄마의 손을 잡고 힘을 내서 가기 시작했다. 

  힘내서 가던 딸이 오르막이 반복되니 발에 열이 나는지 발을 땅에 비비기 시작했다. 거친 발놀림에 아이의 짜증이 부릉부릉 올라오는 게 보였다. 저번 산행을 함께 했던 후미대장님이 다가오자 오늘은 “여자들과 가겠다”며 곁을 내주지 않는다. 

  후미 대장님이 선두가 놓고 간 방향표시 종이에 선두통과 시각과 현재시간을 무전했다. 선두와 시간차가 2시간 이상이 벌어져있었다. 전체 산행시간이 우리 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여겨지니 속이 타들어갔다.  

  단체 산행이 아니라면 아이와 진작에 내려갔을 터였다. 그러나 버스를 타려면 날머리까지 가야 했다. "아저씨가 업고 갈까?”, “몸무게 몇 이니? 여기 배낭에 타고 갈래?” 주변에서 돕고 싶은 마음들이 오는데 딸은 다 싫다고 하며 나에게만 한없이 치대 온다. 

  주변 엄마들이 눈짓을 보내온다. “그럼 엄마가 오르막 길 언제 끝나나 보고 올게!”하니 알겠다는 아이를 두고 앞서갔다. 딸을 두고 앞서 가는 길이 계속 오르막이다. 여기를 딸이 어찌 올까 싶다.  

  헬기장에 도착해 잠시 쉬고 있으니 후미에서 함께 오던 웅태 아버님과 웅태 동생 지우가 금방 따라왔다. 엄마가 먼저 가고 훨씬 잘 가기 시작했다고 알려준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딸이 오는 소리 같아 다시 출발했다. 둘 다 살려면 떨어져서 가야 했다.  

  뒤에서 내 딸과 오고 어른들의 아이들이 잘 가고 있었다. 중학생들은 어른들과 사이를 벌리고 자기들끼리 가고 있고, 초등학생들은 우리 아이처럼 다른 어른과 짝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 처음 온 초등학생 정민이가 힘들어했는지 다른 어른이 정민이 배낭을 메고 있다. 조금 더 앞에 가니 슬혜가 발목을 다쳐 앉아 있고 어른 한 분이 슬혜 곁에서 서 있다. 바로 뒤에 의료키트를 가진 분이 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더 앞에는 딸이 잘 오고 있다고 알려 준 웅태아빠의 큰 아들 웅태가 서 있다. 슬혜가 오면 만나서 같이 갈 거라고 했다. 엄마를 만나겠다고 앞서 갔던 초등학생 현진이와 현진이 엄마도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 날다람쥐처럼 가고 있는 설아와 수경이가 어른들과 떨어져 있어 보여 이 아이들과 따라잡았다 멀어졌다 반복하며 끝까지 갔다. 

  드디어 산 아래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 도착해 있는 버스가 보이자 오늘도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차오른다. 선두로 와 있던 남편이 반겨준다. 아들은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없다. 

  딸이 언제 오나 남편과 서서 목을 빼고 기다렸다. 딸과 헤어져 지나쳤던 분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침 7시 반에 출발해 오후 3시 반을 넘고 있었다. 산행 시간이 8시간을 넘었다. 드디어 딸의 모습이 보였다. 빨간 잠바의 깃을 펄럭이며 내리막길에 우다다다 달려와 안겼다. 딸의 표정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후미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바다에 들르지 않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는 동안 딸이 자기가 완주한 걸 알려달라고 했다. 그럼, 등산은 다녀와 자랑하는 맛이지. 새로 사귄 친구들, 어린이집 친구들, 학교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 등하교 때 만나 친해진 동네 엄마들까지 끝없이 알릴 곳을 말했다. 자랑할 곳을 꼽아가며 아이의 힘든 기억이 점점 밀려가고 있었다. 다리 아픈 것도 사라질 즈음 아마도 다음 차수 산행접수 공지가 뜰 것이다. 


  이렇게 8살의 딸의 두 번째 백두대간 종주가 끝났다. 총 16.5km 거리 후미 8시간 45분이 걸렸다.    

산행 후 짜장면 먹을 기운도 없네 /                      날머리 백봉령에서 /             하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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