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km 등산 괜찮겠지?
구간 : 백두대간 5구간 (권포리-복성이재)
위치 : 전북 남원 운봉읍 - 전북 장수군 번암면
날씨 : 최저 7도-최고 16도
산행거리 : 15.7km (마루금 14.0km+구간 외 1.5km)
소요시간 : 선두(7시간 26분) 후미(9시간 4분)
참여인원 : 137명
5구간 권포리~복성이재 15.5km
첫 산행 때 어찌나 힘들던지 다시는 못 오겠다 싶었다. 그러나 긴 산행이 끝나는 순간의 내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주고, 밥차에서 배부르게 밥까지 먹고 나자 생각이 슬슬 바뀌어갔다. 넋이 나가 내려왔던 사람들도 막걸리 한 잔 하고 나자 죽을 맛이었던 산행이 '이 맛에 산에 오지'가 되었다.
2차 산행을 신청하려고 보니 딸을 걸렸다. 1차 산행 때 친구네서 자고 와서 다시 이사 가서 친구들과 학교 다니고 싶다며 펑펑 우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15km 산을 타고 와서도 쌩쌩했던 우리 딸과 동갑인 설아를 떠올리니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사 온 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자.
코로나 때 못한 야외활동 욕구들이 터졌던 걸일까. 대부분 다시 안 올 것 같다는 나의 예상과 달리 큰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늘었다. 딸도 같이 신청해 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초반에 쉬운 코스를 배치해 많은 사람이 가게 한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지금이 함께 가기 좋은 때인 것을 알았다. 설아도 있으니 일단 데리고 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새벽 두 시 삼십 분, 아이들을 깨우니 못 일어난다. 미리 등산복을 입혀 재운 딸은 그대로 안아 차로 옮겨 태웠다. 아들도 잠이 덜 깨 인상을 쓰면서도 자기 배낭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 버스에 이미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우리 딸을 보더니 설아만큼이나 작은 아이가 한 명 더 왔다며 반겼다. 키가 아빠보다 커버린 아들과 지내던 같은 반 친구들은 이렇게 작은 동생이 있었냐며 신기해했다. 여학생들은 딸의 볼을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였다. 신청자들이 다 도착한 것을 확인한 버스가 새벽 세 시가 되자 출발했다.
1차 때 걸었던 4구간의 날머리가 5구간의 들머리가 된다. 저번 산행 때 하산 후 식사장소였던 마을회관 앞에 다시 버스가 섰다. 동그랗게 둘러 서서 체조를 하는 동안 날이 더 밝아졌다.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선두가 앞장서 출발하며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행 시작과 동시에 이번에도 아들은 친구들을 찾아 사라졌다. 남편이 아들이 있는 앞쪽에서 가기로 하고, 나는 딸과 함께 가기로 했다. 이 날은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저번 산행이 더워서 물을 얼려서 준비해 왔는데 그래서인지 등이 서늘했다. 얼마 안 가서 한냉 알레르기가 있는 딸이 간지럽다고 했다.
한냉 알레르기는 온도차가 갑자기 나면 두드러기가 난다. 주로 겨울에 많이 올라온다. 주변에서 비상통에서 알레르기 약을 찾아주었다. 어느 아빠의 배낭에서 나온 패딩조끼도 전해졌다. 딸에게 입히니 무릎까지 덮였다. 여러 도움으로 한 고비 넘겼다.
초반에 쉬운 코스들을 배치한다더니 오르막이 오래 계속되었다. 여기를 어떻게 아이를 데려올 생각을 했나 후회가 되었다. 좁은 오르막을 앞두고 정체되어 있을 때 아침에 딸을 예뻐해 주었던 언니들을 만났다. 힘들다던 딸이 언니들에게로 냉큼 뛰어 올라갔다.
갈수록 사이가 벌어지면서 언니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딸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하기 시작했다. 점점 뒤 처지던 아이는 “엄마, 집에서 유튜브 보고 편하게 있고 싶어”라고 고백해 왔다. 점점 속도가 안 나는 우리를 보다 못한 아빠 한 분이 내 배낭을 받아 가면서 아이만 신경 쓰고 오라고 해주었다.
딸과 나는 대열의 맨 끝, 최후미 대원들이 되었다. 끝을 지키는 후미대장님들은 우리가 멈추면 저만큼 뒤에 멈춰 섰고 우리가 출발하면 다시 따라왔다. "엄마, 등 밀어", "엄마, 나 끌고 가" 하는 아이의 끝없는 요구에 지쳐가는데 중학생 언니들과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언니들 중 한 명이 둘째를 꼭 안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들었지?”하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서와 다른 것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딸의 투정은 언니들과 멀어지면 시작되고 언니들이 시야에 보이면 달려가며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시 언니들과 만난 김에 아이와 떨어져 가기로 했다. 내 가방을 가져간 아저씨한테 가서 배낭을 받아오겠다며 앞서갔다. 후미 대장님들도 엄마가 떨어져 가는 게 낫겠다 하기도 했고, 정오가 지나가면서 찬 기운이 가시기도 했다. 아이와 떨어져 걷기 시작하자 숲 속에 피어있는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한두 송이 드문 드문 보였다.
점심 먹는 곳에 먼저 와서 딸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딸은 선두로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던 아빠 무릎에 앉아 나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딸이 거의 다 먹었을 때 아빠가 오늘은 선두대장이라 먼저 가야 한다니까 딸이 선선히 아빠를 놓아준다. 가족끼리 간 산에서 못 가겠다, 업어 달라 매달리던 딸이 어느새 또 자라 있다.
나도 딸보다 먼저 일어나 출발했다. 여기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들인데 딸을 남겨두고 갈 생각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름과 얼굴은 다 몰라도 여기 온 모두가 아들 친구들의 엄마 아빠들이었다. 딸을 믿고, 이들을 믿고 되돌아갈 수도 없어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이후 길은 능선 따라 걷는 구간이 길어 첫 산행보다 훨씬 수월했다. 숲에서 촉촉이 젖은 나무 향기가 나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고비인 아막성에 도착했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 격렬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임을 알리는 팻말이 이후에 내리막이 심해졌다. 바위마다 이끼가 껴 있어 조심하는 걸음마다 힘이 들어간다. 수없이 넘어질 뻔하되 넘어지지 않고 산 길 끝에 도착하니 하이파이브로 맞이해 주는 사람들이 서 있다.
도착하는 대로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내가 탄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딸이 오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딸을 기다렸다. 마지막 버스가 먼저 온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도착했다. 빨간 잠바를 입은 딸이 내리자마자 나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엄마, 나 한 번도 안 업히고 내려왔어!”라고 속삭였다.
딸과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와 함께 내려와 주신 후미대장님들을 찾아갔다. "저 위에 가서 '야호' 부르면 엄마에게 들릴 거야"라고 하니 힘들다고 쉬다가도 힘내서 또 가더라며 잘 가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내가 아들과 다니며 늘 했던 어르고 달래며 산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감사했다. 딸이 설아와 마당을 뛰노는 모습을 보니 노심초사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데려오길 잘했다 싶었다.
버스에 타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에 집합했던 곳에 도착해 있다. 고된 산행이 그 어떤 수면제보다 효과가 좋다.
출발할 때 헤어졌다 만난 아들은 동생이 백두대간 구간을 완주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다. 동생을 데려간다고 했을 때 절대 못할 거라고 장담했던 오빠다. 어릴 때는 예뻐하더니 크면서는 성별이 달라 공통 관심도 없고 점차 소원해졌는데 그랬던 아들이 동생과 마주 앉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랑 갔어?”
“힘들진 않았어?”
“대단하다.”
두 번의 백두대간을 다녀와서 남매 사이에 대화의 다리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