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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Nov 24. 2023

15km는 이제 걷습니다

38구간 태백산 이기령 ~ 백복령 15.6km  

산행 공지가 떴다. 네 가족 모두 신청했다. 한 사람의 신청비는 어른 65,000원, 청소년과 어린이는 60,000이다. 4인 가족 신청 시 20,000 할인이 적용되어 총비용은 230,000이 든다. 사교육이 금지되어 있는 중학교라 사교육비가 안 드는 대신 산교육비가 많이 드는군! 토요일 새벽 두 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비용으로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차비와 식사포함이니 말이다.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잘 움직이질 않는다. 잠으로 피로를 푸는 남편과 주말에만 허용된 유튜브와 게임을 하느라 모니터에 붙어 지내는 아들 때문이다. 딸도 같이 주말엔 영상삼매경으로 보내곤 했다. 그런데 무려 야외를, 게다가 산을, 딸까지 데리고 가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하지만 현실의 몸에는 무리되는 일정이었나 보다. 허리가 아프더니 낫지가 않는다. 산행을 이틀 앞두고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이번주 산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내 마음이 온통 산에 가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이들 둘의 학교 적응을 돕고, 이사 짐과 내 자리를 찾아주다 보니 다시 산행 날이 되었다. 새벽 두 시 한국도자기 사거리에 도착하니 몇 번의 산행으로 나도 인사할 사람들이 생겨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계단을 오르는데 크게 심호흡이 쉬어졌다. 밀려오는 긴장감은 뭐지? 둘째는 낯익은 언니들을 마주할 때마다 "언니~"를 부르고 뛰어가서 포옹을 했다. 우리 딸이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나? 저번 산행에서 고생한 후로 밴드에 올라온 날씨예보를 주의 깊게 봤다. 새벽 들머리의 날씨, 정상 날씨, 바람 여부, 해가 종일 비추는지 꼼꼼히 살폈다. 산은 높아질수록 온도가 떨어지니 정상부 날씨를 따로 살펴야 했다. 혹시 몰라 넣어가던 것들을 다 빼니 등산짐이 많이 줄었다. 아들은 아예 작은 가방으로 바꿔주었다. 필요한 만큼의 물과 간식만 넣었다. 비상 보온커버, 물티슈를 손가락 두 개 크기 만한 것으로 챙겼다. 


총길이 15km 산행은 둘째가 완주한 길이다. 이번에도 잘할 수 있겠지. 언니들만 함께 갈 수 있다면 아무 문제없을 테지만 산에서는 누구를 기다려 줄 수 없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반에 많이 걸어놔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기운이 있을 때 많이 가야 한다. 힘들어도 초반부가 힘이 있는 상태다. 아침 먹기 전에, 점심 먹기 전에 많이 걸어놔야 한다. 후반부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딸은 초반에 언니들과 어울려 즐겁게 갔다. 점점 언니들이 치고 나가기 시작하니 나와 후미가 되었다. 후미엔 처음 온 엄마들이 점점 모였다. 나와 함께 짜증 내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가주기도 하고, 간식을 주기도 하며  여러 엄마들이 우리 딸을 함께 품어주며 갔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천천히 아이를 기다려주며 갔다. 그러나 긴 산행길이라 선두와 시간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막이 이어지자 딸이 발바닥이 아프다, 엄마 업어달라 하기 시작하자 눈짓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저번 산행이 끝나고 집에 와서 어떻게 엄마가 먼저 갈 수 있냐고 했던 딸이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가 멀리 가지 않고 저 앞에 요만큼만 먼저 가겠다고 했다. 오르막이 언제 끝나는지 보고 오겠다고 했다. 아이는 또 속아주었다. 한두 그룹 정도 앞서 갔다. 나중에 들으니 엄마부대가 애를 많이 쓴 것 같았다. 발이 뜨겁다면 신발을 벗겨 아이 발을 주물러 주고, 스틱으로 기차놀이를 해가며 언덕을 넘었다고 했다. 나는 조금 앞서 가면서 설아와 초등학교 3학년 수경이가 둘만 가고 있길래 이 아이들과 함께 산행했다. 이들의 부모는 또 다른 아이들을 챙기며 갔으리라. 


산행 후에 밴드에 산행후기와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후미에서 오는 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확인한다.  산행대장님과 수색대장님은 중간과 후미, 선두와 중간을 각각 오가며 아이들끼리 가고 있는 그룹을 파악하고 있었다. 식사하는 지점에선 자연스레 인원확인이 되었다. 아직 제 한 몸도 힘든 분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전체 산행을 조율하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산행을 처음 해본 사람들도 있다. 자기 발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오고 끌며 내려오던 사람들이 이번 하산 때는 두 발로 걸어서 들어왔다. 그 사이에 체력이 는 것이다. 산행이 끝나면 무릎치료하러 병원에 다녀온다는 얘기를 나눴다. 아들 모습은 이번에도 산행이 끝나고 식당에서야 봤다. 친구들과 초반보다 친해져 있다. 다른 반이어도 이름을 서로 알고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도 한 데 모여 있다. 


우리도 밴드에 후기를 올려보려고 딸의 소감을 받아 적었다. 아들은 후기를 쓰면 학교 매점 상품권을 받을 수 있어 빼먹지 않고 쓰고 있다. 주로 식당의 밥 양과 고기 양에 대한 내용이다. 딸은 이번 산행이 너무 힘들었다며 다시는 안 갈 거라고 소감을 말한다. 응? '너무'를 세 번이나 반복한다. 언니 오빠들은 다음에도 다 갈 거고 다리가 튼튼해진다고 해도 자기는 왜 쉬면 안 되냐고 돼 묻는다. 내리막길은 쌩쌩 대장님들 보다 빨리 내려왔는데 오르막길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이렇게 계속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되겠구나 안심하다가 뭔가 픽 하고 바람 빠지는 느낌이다. 둘째를 데려가며 준비가 부족했고, 다녀와 보상이 부족했고, 내가 뭘 어떻게 더 했으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감히 꿈도 꿔보지 못했던 백두대간 길을 두 번이나 딸과 함께 완주한 것이다. 그 사실에 점을 꾹 찍어 놓고 온 가족 완주를 축하하기로 했다.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예정에도 없던 딸이 완주했듯, 예정에도 없든 무슨 일이 생길지 미래는 모르는 것이지. 


백두대간 길을 가족과 함께 연결, 연결, 연결해 가고 있다. 그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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