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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01. 2023

1박 2일 소백산 37km 산행

- 소백산을 첫날 24km, 둘째 날 13km 이틀간 걸어볼까?


구간 : 백두대간 31구간 (죽령-고치령)

위치 : 충북 단양시 대강면 - 경북 영주시 단산면 

날씨 : 최저 19도-최고 30도             

산행거리 : 24.8km, 구간 외 차량지원 

소요시간 : 선두(11시간 55분) 후미(15시간 20분) 

참여인원 : 71명 



구간 : 백두대간 32구간 (고치령-늦은 목이)

위치 : 경북 영주시 단산면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날씨 : 최저 12도-최고 15, 오후 4시부터 비 예보

산행거리 : 16.5(마루금 13.5km+구간 외 3.0km)

소요시간 : 선두(11시간 55분) 후미(15시간 20분) /  두(7시간 11분) 후미(7시간 36분)

참여인원 : 54명(출발 57명, 완주 54명)


  20km 산행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1박 2일이었다. 1일 차에 31구간  24.8km를 걷고, 2일 차에 32구간 13.5km를 걸어야 해서인지 신청인원이 40명도 안되었다. 결국 1일 차와 2일 차 산행신청을 따로 받기로 했다. 산행을 하지 않는 보급대 신청도 받았다. 

  보급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첫날 날머리 4km 구간 외를 차로 실어 사람들을 이동해 주는 일이다. 첫날 저녁식사, 둘째 날 산행 출발 후 숙소 정리까지 해야 했는데 평소 가족들을 산행 보내고 혼자 남아있던 아빠들이 많이 신청해 주었다. 

  보급팀이 꾸려진 덕에 딸을 데려갈 수 있었다. 긴 첫날 산행은 안 가고 딸은 둘째 날 산행만 신청했다. 첫날 7차 산행 91명, 둘째 날 8차 산행 89명으로 마감되었다. 

  소백산은 아들을 데리고 산행을 시작할 때 쉽고 완만한 산을 찾아갔던 곳이다. 어떤 산인지 알고 보니 완만한 곳은 산행 길이가 길고, 짧은 구간은 험하다는 뜻이겠구나. 일곱 번의 백두대간 산행만에 작은 비밀 하나를 찾아낸 기분이다. 

  아무리 쉬워도 내 두 발로 내 몸을 싣고 정상까지 가야 하는 산행은 힘들다. 다들 물을 많이 가져와서 초반이 더 힘들었다.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한 산행에서 얼마 안 가 "완만한 등산길이라더니 또 속았네 또 속았어."라는 한탄이 들렸다. 소백산의 완만함은 연화봉부터다. 완만함을 맛보려면 오르막 4km를 가야 했다. 

연하봉 이후 기대했던 소백산 길이 나왔다. /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비로봉.

  산행 5시간이 지나 아침 9시에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비로봉에 도착했다. 숲 속으로 걸어오다 하늘이 뻥 뚫린 길을 만났다. 잘 정비된 나무 계단을 오르니 사방이 확 트여있다. 사방에서 감탄이 나왔다. 우리가 소백산에 기대했던 바로 그 길을 앞에 두고 있다. 내 앞에 놓인 길이 하늘과 닿은 언덕까지 이어졌다.

"이 전까지 산행은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다시 오고 싶은 곳이네요"

  길이 정말 편했다. 멋진 산길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려고 사진 찍는 손들이 바빴다. 9km 왔으니 이제 15km만 더 가면 된다. 비로봉을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졌다. 평지길이 한참 이어지니 이야기 꽃이 피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구불구불 길가에 핀 풀들이 발목을 스쳐갔다. 

  국수봉에 도착했다. 14km를 걸어와 이제 10km가 남았다. 여기부터 이가 아프고 잠이 왔다. 내리막길과 간단한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하하 호호' 웃음과 대화가 길 위에 흘렀다.  

  5km를 남겨두고는 발바닥, 발목, 무릎, 허리, 엉덩이, 팔에 감각이 사라졌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무전기로 후미에 물이 부족하고 알려왔다. 남은 거리에 마셔야 할 물을 제하고 모으니 꽤 되었다. 날머리까지 4.2km 남은 구간에 물병을 모아두고 출발했다. 단체 산행은 이렇게 서로를 살려가며 하는구나.   

  배가 고파 남은 미니초코바와 청포도 사탕을 먹었더니 허기가 금방 가시고 든든해졌다. 욕구가 점점 단순해 갔다.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질 것 같아 내리막은 엉덩이로 밀고 내려왔다. 남은 에너지를 탈탈 털어 썼다. 드디어 도로가 보인다. 12시간 7분이 걸려 날머리에 도착했다. 


"오, 이거 감동이 있네요!"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와! 이거 너무 고맙다" 


  도착한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 순간 행복지수 최고다. 내가 하루 종일 걸어 얻은 지금의 이 행복은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보급대 지원차량의 트렁크에 껴 앉아 구간 외 4km 길을 내려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덜컹거릴 때마다 깔깔거렸다. 걷지 않아도 되는 구간 외 길에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바베큐가 차려진 마당으로 나왔더니 후미가 내려오고 있는  데 비가 오고 있다고 한다. 그냥 내려와도 힘든 길이라 걱정이 되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후미가 들어왔다. 후미대장님의 종산선언을 함께하며 무사귀환을 축하했다. 

  



  등산 2일 차 날이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차를 줄이기 위해 후미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딸과 나는 선두로 갔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라 잠이 덜 깬 딸이 쳐지기 시작했다. 길이 좁아 옆으로 피할 곳도 없어 밀려가다 옆으로 비켜서니 하룻밤 새에 등산이 늘었는지 '쓱', '쓱'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우리 뒤에 있던 중학생들이 추월해 가고 평소 선두라 맨 끝에서 출발한 했을 아빠와 오빠까지 지나갔다. 점점 울상이 되던 딸은 후미대장님과 만나자 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산에 와 힘든 정민이와 같이 갔다. 계속되는 오르막에서 딸을 스틱으로 끌어주다 등을 밀어주다 하니 체력이 쭉쭉 빠졌다. 앞서 간 언니들 이름 불러가며 간식 먹여가며 간신히 언덕 하나를 넘었다. 

  남은 길이 평탄하다 했는데 지도가 맞은 적이 없다. 고도표보다 오르막이 많았다. 어느덧 3시간 50분째 산행 중이다. 길이 쉬워지니 딸은 어제 후미로 온 비 맞고 흙투성이로 들어온 오빠들이 얘기를 했다. 

  "나 천천히 잘 가고 있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춤추다가 뛰다가 하면서. 그렇지?"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게 잘 갈 때 보면 우리 딸이 문제가 아니라 높은 산이 문제다. 

  오르막이 나오고 다시 칭얼거림이 시작됐다. 왜 또 오르막이냐고 했다. 마구령에서 점심보급을 하는데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곳이라 힘든 사람들은 여기서 하산하기로 했다. 

  우리 딸과 정민이는 마구령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마구령에 도착해 화색이 도는 걸 보니 더 산에 갈 힘이 있어 보이지만, 내가 더 몰고갈 자신이 없어 내려보냈다. 남은 우리는 마구령부터 6km, 5시간을 더 걸어 날머리까지 가기로 했다. 


  날머리에 도착했는데 구간 외가 3km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아스팔트 평지길이 아니라 가파른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는 얘기에 사람들이 누구에게 속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속았다는 탄식을 했다. 바닥난 체력으로 정신을 부여잡고 걷기 시작했다. 앞에서 이제 300m만 더 가면 보급이 있다고 했는데 그 300m가 얼마나 길던지.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다. 파란 보급테이블과 초록 아이스박스가 보일 때까지. 둘째 날 총거리는 마루금 13.5km, 구간 외 3km. 결국 이튿날도 16km를 걷고야 말았다.

  나는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 미국의 PCT 트레킹도 가보겠다고 했었다. 뭘 모르고 했던 말이었다. 이번 24km 산행을 하고 다음날 또 걷고 나니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게 어떤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백두대간 종주부터 끝내 놓고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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