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나무 Dec 01. 2023

백두대간 종주를 건너뛰다

- 백두대신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2주 만에 한 번씩 주욱 따라가기만 하면 백두대간 종주하겠네 싶었는데 못 갈 일이 생겼다. 둘째가 졸업한 어린이집에서 1박 2일 들살이에 초대해 줬다. 이사 와서 헤어진 친구와 그리운 선생님들이 생각난다는 둘째였다. 나도 친구처럼 지낸 부모들과 교사들이 보고 싶었다. 에잇, 한 번 빠지자! 백두대간 정규 산행 때 빠지면 따로 '보충산행'을 하면 된다고 했다. 보충산행을 기약하고 들살이를 하는 도봉산 아래 다락원으로 갔다. 들살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부모, 아이, 교사가 함께하는 1박 2일 행사다. 백두대간을 빠지고 가는 건데 그냥 가긴 아쉬웠다. 어린이집이 있는 곳부터 다락원까지 둘레길로 걸어갈 수 있었다. 우리 딸이 15km도 걸었는데! 이번 차수 백두에 갔으면 17.8km를 걷는 거였는데! 북한산 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 한 구간의 길이는 3.1km였다. 19구간 방학동길, 18구간 도봉옛길 , 17구간 다락원길을 걸으면 끝에 다락원이 위치해 있었다. 둘레길 세 구간 정도는 문제없지! 


새벽   반에 일어나 단체 관광버스 타러   한 번도 늦지 않았는데 가족끼리 가기 위한 준비는 한이 없었다혼자 집에 있겠다는 아들 먹을 것까지 챙기고 나서니 아침 9시가 넘었다. 용인에서 우이동까지 차로 달려 정의공주 묘 앞에 도착하니 오전 11 40분이었다. 둘레길이라 백두처럼 연속 오르막은 없을 터였다. 지도로 보면 높아야 등고선 한 칸에 불과했다. 마음 놓고 출발했는데 웬걸단체 산행에서 의젓했던 딸이 초입부터 주저앉는다함께 산행하던 언니들이후미대장님이 그리웠다목적지까지 얼마큼 남았다는 설명에 아이 답은 하나였다. “그럴 거면 업어주던지!” 남편이 아이를 업고 가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예상을 비껴가는 전개였다. 남편이 아이를 업고 내가 내 배낭 위로 남편 배낭을 포개어 매었다. 지나가던 커플이 ‘엄마 힘들겠다’하며 간다. 옷가지만 든 가방이라 무겁지 않았는데 커다란 배낭이 내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으니 무거워 보였나 보다. 오늘 산행은 아이가 체면 차릴 필요가 없는 산행이어선지 마음껏 투정 부리고 마음껏 주저앉았다. 그나마 오르막이 나오면 아빠 등에 업혔다가 평지가 나와 걸어가자 하면 순순히 따랐다. 평지에서 걷다 보면 대화가 시작됐다. 산길의 마법이다. 아빠가 오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자 귀가 쫑긋한다. 

“오빠가 어린이집 들어갈 때까지 동동이라 불렸어? 으하하하” 오빠 태명에 관한 건 빤히 알던 얘긴데도 깔깔 거리며 웃는다. 떠오르는 대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산길에선 놀 것이 서로 밖에 없다. 


한 시간쯤 가니 쌍둥이 전망대가 나왔다. 달팽이 계단이 가파른데도 딸은 올라도 되냐고 물었다. 철계단을 앞장서 올라간다. 저렇게 잘 가는 아이가 업혀서 둘레길을 가고 있다니. 길 옆에 바위에 걸터앉아서는 낙엽을 찢기 시작했다. 한참을 물어도 대꾸도 안 하며 집중하다 할 만큼 했는지 일어선다. 이런 아이가 단체 산행은 어떻게 따라갔지? 무수골까지 0.3km가 남았다는 표지가 보였다. 아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1 더하기 1은 귀요미” 

“2 더하기 2는 인해 귀요미”

“3 더하기 3은 인해 귀여워요”

귀엽기도 하지만 산수 잘하긴 틀렸구나 싶다.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1 더하기 1은 핑크오빠”

“2 더하기 2는 핑코 오빠”

“3 더하기 3은 나쁜 오빠”

“4 더하기 4는 나한테 화내는 오빠”

“5 더하기 5는 인수 못생긴 오빠”

갑자기 둘레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치던 대나무숲이 된다. 숲은 모든 것을 품었다. 


3학년 때 아들을 데리고 등산을 했던 것에 비해봐도 이제 1학년인 둘째가 등산을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 큰 아이가 둘째만 할 때를 떠올려 보면 오늘처럼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한참씩 멈췄었다. 첫 아이를 키울 때는 돌발상황을 고려해 시간을 충분히 두고 움직였는데 둘째는 첫째에 맞춰 가며 어서 가자고 밀고 가는 할 때가 많다. 둘째의 운명이다. 드디어 방학동길의 끝을 알리는 문이 나왔다. 끝은 곧 시작이라 문 안에 “도봉옛길”이라고 쓰여있다. 서울 숨은 시골, 무수골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정말 시골 같았는데 못 보던 글램핑장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3시간씩 예약하고 이용하는 고깃집이었다. 주말농장을 지나 내려가는 길도 변했다. 계곡 옆에 초록색 인도와 빨간 자전거 길이 이곳까지 와있다. 깨끗이 정비된 천변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 타일을 붙인 빌라 두 채가 분양 중에 있다. 마을 어귀에 인스타 감성의 카페도 생겼다. 예전의 정취는 사라지고 없었다. 

등산객이 알려준 국수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디까지 왔냐는 문자가 오고 전화도 왔다. 곧 모여 노는 공식일정을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앞으로 두 구간을 더 걸어야 하는데 곧 놀기 시작한다니 마음이 급해졌다. 18구간 도봉옛길 3.1km 와 17구간 다락원길 3.1km를 남겨두고 국숫집 앞으로 택시를 불렀다. 국숫집부터 다락원캠프까지 3.5km 도로를 택시로 달리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예전 기억대로 지름길로 가려는데 주차장 철문이 잠겨있다. 울타리가 부서진 사이를 찾아 남편이 먼저 통과해 틈새로 가방을 받고 아이를 통과시켰다. 나도 뒤를 이어 들어갔다. 숙소가 바로 앞에 보인다. 몇 걸음 안 가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우리 빨리 가서 걸어왔다고 알려주자!”  딸이 뛰기 시작한다. 이미 손을 마주 잡고 동그랗게 모여 놀기 시작한 사람들을 향해 뛰었다. 그리운 사람숲에 가서 안겼다. 

이전 04화 15km는 이제 걷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