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번 맡길 수가 없어 데리고 갔던 것 치고는 8살 딸의 백두대간 종주는 순항 중이다. 첫 산행 15.5km, 두 번째 15.6km을 무사히 마쳤다. 그동안 내가 아이의 한계를 단정 짓고 있던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20km 넘는 산행 뒤에 이번엔 11km 짧은 산행이길래 딸도 신청했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다 가는 산행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산행을 다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후기를 쓰면 중학교 매점에서 쓸 수 있는 오천 원 쿠폰을 주었다. 후기 쓰는 동생들이 많아지자 매점에 갈 수 없는 동생들을 위해 주말 학교 행사에서 매점을 열어주기도 했다. 어른들이 합심해서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한글 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둘째의 산행 후기는 내가 받아 적어 주고 있다. 자부심 일색이었던 둘째의 산행 후기가 변화가 느껴졌다.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는 걸 꼽았다.
어느덧 다음 산행이 찾아왔고 시작하면 어떻게 올라가겠지 하고 있었다. 일단 거리가 11km로 짧아서 걱정하지 않았다.
새벽에 내려 체조를 하는데 둘째가 뒤로 빠졌다. 그러더니 “나 결심했어. 오늘은 안 갈 거야”라고 선언한다. 딸이 좋아하는 언니가 와서 “오늘은 언니랑 가자”고 데려가니 좋아서 따라간다. 그럼 그렇지, 오늘은 이렇게 가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우리 딸은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울었다. 울음이 참 깊고 구슬펐다. 오르막이 지나가면 다음 오르막을 걱정했다. 사람들의 응원에도 변화가 없었다.
아이 때문에 한 걸음이 어려운 상황이 되니 전체 산행 시간을 고려해야 했다. 후미대장님께 아이와 둘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출발 후 한 시간은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전체 대열에 우리가 하산한다는 무전이 울려 퍼졌다.
둘이 내려가며 괜찮다고 딸을 다독이는데 내가 왈칵 눈물이 났다.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어려워할 게 예상되었는데 그에 비해 준비가 소홀했다고 여겨졌다. 어제 더 일찍 재울걸, 휴게소에서 미리 깨워 컨디션을 좀 올려놓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내려가며 식당에서 가면 나는 우동을 먹을 수 없는 거냐고 걱정했다. 아이 걱정이 귀여웠다. 아직 어리고 여렸다.
산을 다시 내려가며 내가 우는 게 이상했나 보다.
"엄마 진짜로 울어?"
"눈물이 나네. 딸을 잘 도와줘서 산을 넘어가게 하고 싶었는데 못 가게 되니 속상해. 너는 언니들이 먼저 가서 속상했어?"
"설아는 나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하고 기다려주지도 않아"
"빨리 갈 수 있게 된 사람은 기다리는 게 더 어려워."
"기다릴 수 있어! 엄마는 산을 다 통과하고 싶었어?"
딸에게 오빠 어렸을 때 둘이서 산에 다녔던 얘기를 들려줬다.
"오빠랑 산에 다닐 땐 엄마가 다 준비해야 해서 힘들었거든. 그런데 여긴 차도 예약해 주지. 숙소도 예약해 주지. 밥도 예약해 주지.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고 싶었지. 안 빠지고 계속 산에 가면 저절로 중간에 가고 선두로 가게 되는데......"
얘기해 보니 딸은 빨리 가고 싶은데 안돼서 속상했다. 계속하다 보면 다리에 힘이 붙을 텐데 아이는 마음을 닫아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기사님들이 버스 세차 중이었다. 아이와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대장님이 오늘 구간의 포즈로 올려준 사진대로 팔짱을 끼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포즈를 계속 취했다. 산에 함께 가고 싶기도 하고, 힘들어서 가기 싫기도 한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딸이 친구들과 통화하고 싶어 했는데 아직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아직 안 일어난 친구들도 있을 토요일 오전 8시에 우리는 한 번의 실패를 이미 겪고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날머리인 추풍령으로 이동해 밤에 운전한 기사님이 잔다고 해서 딸과 나는 추풍령 동네를 걸었다. 동네에 제비집이 많았다. 길을 걷는데 제비가 많이 날아다녔다. 골목 안에는 능소화가 가득 피어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도 아닌데 햇볕에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더웠다. 시원한 곳을 찾아 추풍령 간이역에 도착했다. 산을 타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벌써 중간지점을 통과했다고 했다. 12시 반이면 내려올 것 같다고 해서 버스로 돌아가 보급품을 챙겨놓기로 했다.
산행거리가 짧아 빨리 내려왔다. 선두대장인 남편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딸이 도착하는 어린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나눠주었다. 4학년 오빠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딸을 보고 "야, 너는 산은 안 타고 아이스크림은 먹는 거냐?”라고 콕 집는다. 우리 아들도 동생을 보자 마지 "너는 육만 오천 원 내고 버스 타고 우동먹으러 온 거야?” 했다. 중도하차 신세도 만만치 않다.
중간팀으로 도착한 언니들과 설아는 톡 쏘는 말 없이 반가워하고 금방 어울려 놀았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면서 딸은 자기를 앞서간 모두가 선두로 들어오는 건 아니라는 걸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속도로 결국 도착했고, 도착하고 나면 몇 번째로 들어온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2주 후에 또 산행이 있다. 이제는 딸을 맡길 곳도 찾고 격려도 해가며 산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산행 때 딸은 어떻게 성장할지, 나는 어떻게 아이의 성장을 도울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온다.
+ 위 구간은 1년 후에 보충산행으로 완주했습니다. 물론, 딸은 안 가고 저만 보충했습니다.
구간 : 백두대간 15구간 (궤방령-추풍령) 보충산행
위치 : 충북 영동군 매곡면 -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산행거리 : 11km
소요시간 : 5시간 10분 (본산행 때 선두 7시간, 후미 9시간 기록)
참여인원 :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