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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22. 2023

도전! 1박 2일 산행

- 소백산 31구간 24km, 32 구간 13km 걷기   

드디어 24km를 산행하는 날이다. 24km 산행 다음 날도 이틀 차 산행이 있다. 다행히 이틀차는 13km 밖에(?) 안된다. 2년 안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려면 1박 2일 산행을 3회 정도 해야 하는데 그 첫 번째다. 초보 단체 산행에 1박 2일 산행까지 치르려니 산행모집과 지원팀이 동시에 꾸려졌다. 지원팀은 가족들을 산에 보내고 주말을 즐기시던 아버지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해 주셨다. 지원팀의 업무는 산행에 못 간 동생 돌봄, 저녁식사와 뒤풀이 준비, 다음날 새벽산행 후 숙소 체크인 등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날 하산길 차량 지원이었다. 첫날 날머리에서 버스가 있는 곳까지 구간 외 길이 무려 4km였다. 4대의 차량이 투입되어 하산 셔틀을 해주었다. 정말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한 절실한 지원이었다.  


1박 2일 산행을 앞두고 회의가 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었다. 출발 버스 탑승인원, 둘째 날 산행 버스인원, 귀가 버스 인원이 다 달랐다. 지원차량으로 하산이 다 가능할지도 가늠해야 했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진다고 판단해 결국 동네 이장님 트럭을 추가로 배치하기로 했다. 경우의 수가 많았다. 첫날 산행하려 버스로 출발하지만 귀가차량은 가족의 차로 올 수도 있었다. 전원이 귀가할 때까지 인원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이 모든 걸 한 장의 엑셀시트로 정리해서 준 안전 대장님이 있어 대장단이 전체 그림을 같이 그리며 진행할 수 있었다. 난세에 영웅으로 나타난 듯 안전대장님 뒤로 후광이 비쳐 보였다. 


다행히 이번 등산지가 소백산이다. 아들과 산행을 시작할 때 쉽고 완만한 산을 찾아갔던 그 산이다. 그러고 보니 산행길이가 긴 곳은 완만하고, 길이가 짧으면 험하다는 뜻이겠구나. 어차피 하루 산행으로 잡아야 하는 구간을 '그 길이'로 끊은 것은 다 이유가 있겠구나. 7번의 산행만에 길이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짧다고 만만하게 볼 것도, 길다고 걱정할 것도 없겠구나. 새벽 들머리에 도착했다. 곤히 자고 있는 둘째는 버스에 둔 채 내렸다. 지원조에서 숙소에 데리고 있기로 해서다.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부터 혀를 쭉 빼며 걷고 있는 학생이 있어 물어보니 물을 8병이나 가져와 너무 무겁다고 한다. 나도 긴 산행에 졸아서 물을 많이 챙겼다. 간식도 걱정만큼이나 늘어 결국 내 가방도 무거워졌다. 


"이 전까지 산행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비로봉의 멋진 풍경을 마주하면서 남은 거리 걱정만 있다. 후반부에 힘은 빠질 테고 도대체 언제까지 갈지 까마득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고 선두와 후미는 봉우리에서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각자 체력안배를 하느라 다들 진지하다. 그래도 쉬운 산에 평지길이 한참 이어지면 이야기가 저절로 솟아난다. 구불구불 길가에 핀 풀들이 발목을 스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후미에 벌써 물이 부족한 사람이 나왔다는 무전이 들린다. 선두가 이정표를 두면서 여유분들의 물을 모아 쌓아 두고 출발했다. 단체 산행은 이렇게 서로를 살려가며 하는구나. 반을 지나고서는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가도 시간도 얼마 안 지났고 거리도 생각만큼 안 줄어든다. 그래도 또 가고, 또 가다가 누가 "물이 부족해요"라는 말에 "지금부터 한 시간 반은 참아도 돼!"라는 대답이 들린다. 얼마 안 남은 지점까지 왔다. 몸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는다. 졸린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체력이 바닥나간다. 남은 간식을 털어 서로에게 권했다. 너무 졸려서 카페인 알약을 한 알 얻어먹었다.  


마지막은 급경사다. 조심하라는 경고가 앞쪽에서 계속 들린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가가 완만해지면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 내려갔다. 넘어질 것 같으면 엉덩이로 밀고 내려왔다. 남은 에너지를 탈탈 털어 썼다. 드디어 도로가 보인다. 아스팔트 길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12시간 7분이 걸려 날머리에 도착했다. "오, 이거 감동이 있네요!"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와! 이거 너무 고맙다" 길의 끝에 도착한 사람들의 외마디 탄성이다. 이 순간 행복지수 모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가득 차오른다. 지금의 이 행복은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지원차량의 트렁크에 껴 앉아 구간 외 길을 내려왔다. 엄마들 셋이 쪼르륵 앉았는데 덜컹거릴 때마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트럭 타고 내려온 사람은 그게 또 재밌었다고 트럭만 타러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숙소에 오니 지원조가 방마다 물을 넣어 놓았다. 씻고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나오니 저녁 먹을 준비를 다 마쳐놓으셨다. 푸짐하게 먹을 만큼 음식을 가져다 먹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장작을 어찌나 높이 쌓았는지 마시멜로우를 가져다 대면 다 타버렸다. 아이들은 까만 마시멜로우를 보고 좋다고 까르르 넘어간다. 


다음날 산행은 첫날 산행 여파로 못 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둘째 날 산행은 선두와 후미의 도착 시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후미그룹을 먼저 출발시켰다. 산행 속도가 느린 둘째와 함께 가는 나는 최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산행팀 전부에게 차례로 추월당했다. 그리고 실력은 후미지만 선두 욕심이 있는 둘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전날 24km를 완주한 사람들은 몸도 풀려있는 데다가 오늘 걸을 13km를 빨리 끝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착착착" 발소리를 내며 우리 곁을 "쓱쓱쓱" 지나쳐갔다. 둘째는 결국 산행 의지가 꺾일 때로 꺾여 눈물을 뚝뚝 흘리다 마구령에서 하산했다. 둘째와 함께 하산할 그룹이 있어 아이를 맡기고 나는 나머지 구간을 완주했다. 마구령 도로까지 차량이 와주었는데 차에 타는 둘째 얼굴에 환한 미소가 뜬다. 숙소로 돌아가면 같이 놀 오늘 산행을 안 하고 쉬고 있는 언니 오빠들이 있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 하고 있고, 미국 3대 종주코스인 PCT 트레킹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번 24km 산행을 하고 내가 꿈꾼 것의 현실이 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루에 24km를 걷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순례길이나 트래킹은 이렇게 걷는 날들이 계속된다는 거겠구나' 끝으로 갈수록 감각이 없어지는데 "이거 진짜 힘든 거구나!" 알아버렸다. 절대, 결코, 아이 데리고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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