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나무 Dec 29. 2023

나는야 뱃지대장

- 등산 기념 뱃지 제작기


백두대간 종주팀에서 나는 뱃지대장을 맡고 있다. 산행 기념 뱃지를 만들고 나눠주는 역할이다. 뱃지에는 오늘 걸은 거리와 날짜, 들머리와 날머리 이름이 나와있다. 뱃지에 담긴 정보가 점점 추가되어서 최근에는 구간숫자와 산이름도 넣고 있다. 산행 후, 뱃지를 받고 "오늘 다녀온 산이 태백산이에요?"라고 묻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단체 산행은 편한 것도 있지만 앞사람 따라간 기억밖에 안 남는 단점도 있다. 하산 후 받는 뱃지는 가방에 달리기도 하고 소중하게 잘 모아놓으며 사랑받고 있다.  


산행에 다녀온 다음 주에는 대장단 회의가 잡힌다. 다녀온 산행을 점검하고 다음 산행을 계획하는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다음 산행 구간을 정하는 일이다. 2년 치 산행날짜와 구간이 미리 예정되어 있긴 하다. 날짜를 바꿔야 하는 일은 학교행사 일정이 바뀌어 산행일자와 겹칠 때나 비 예보가 있을 때지만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코스를 바꿔야 하는 일은 종종 생겼다. 신청인원이 너무 줄면 쉬운 코스로 바꿔 다시 함께 가자고 독려할 필요가 있었다. 긴 산행이 이어져 참가자들의 피로가 쌓일 때도 코스를 바꿔 강약 조절이 필요했다. 그러니 뱃지는 산행회의 후에야 디자인이 들어가야 했다. 


뱃지프레스는 인터넷에서 십만 원 대부터 양했다. 우리 기수 종주가 끝나면 다음 기수로 물려줄 것이기에 괜찮은 것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뱃지 프레스와 함께 도안커터기도 구입했다. 32mm 뱃지에 맞는 부자재도 함께 주문했는데 100개 단위로 판매했다. 한 번 산행인원이 최소 50명에서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으니 1000개 단위로 주문하기로 했다.   


좌) 뱃지프레스                                  도안커터기                                         우)버튼뱃지 부자재  



대장단에서는 뱃지대장에 부담이 다 가지 않게 회의 때 회의하며 찍자고 했으나 회의가 지나야 디자인이 가능하니 찍는 건 내 몫으로 남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날 기계를 들고 가서 찍기도 했다. 기계가 꽤나 무겁긴 했으나 함께 찍으면 뚝딱 하고 끝났다. 뱃지를 찍어보고 싶어 하는 동생들을 모아서 찍기도 했는데 그러면 불량률이 꽤 높았다. step1칸에 뱃지 뚜껑을 놓고 그 위에 커터기로 자른 뱃지디자인 종이를 올리고 찍으면 뱃지프레스 위에 뚜껑이 끼어있다가 step2에서 뱃지 핀과 결합했다. 재료를 잘 놓고 프레스기계를 두 번 눌러주면 뱃지가 하나씩 완성되어 나왔다. 1박 2일 산행 때 찍는 뱃지가 가장 많았고 그 이후로는 산행인원이 줄어들면서 뱃지찍는 수도 줄어 점점 혼자 찍게 되게 되었다. 개수가 작아 같이 찍기는 좀 그런데, 하고 시작하면 한 없이 제작시간이 늘어지기도 한다. 


뱃지도 진화를 했다. 20차 산행까지는 A4지 종이에 부자재로 온 비닐을 씌워 뱃지를 만들었는데 요즘엔 PCV 캘지로 만든다. 종이에 비닐 씌워 만든 뱃지들은 안에 습기가 차면 검은 점이 생겼다. 백두 대원 중에 실사인쇄 기계가 있으신 분이 도와주셨다. 인쇄물을 받아와야 하는 과정이 하나 더 생기긴 했지만 뱃지의 퀄리티는 눈이 부시게 좋아졌다. 방수가 되어 달고 다녀도 변색이 없다. 이번 백두산행팀에서 송년회가 있었다. 뱃지가 가정마다 꽤 쌓여 보관할 수 있는 족자를 제작해 나눠주었다. 이번에도 백두대원, 백두대장들의 합심으로 무에서 유다. 


 

뱃지를 찍을 때마다 하얀 백지처럼 그려지지 않았던 2023년을 앞두고 있을 때가 떠오른다. 새로운 곳에 이사 와서 아이 둘이 다 중학교, 초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는데 집이 나가지도 않고, 그러니 살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내가 이곳에서 뱃지를 만들게 될 줄, 뱃지 족자를 제작하고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2023년 한 해가 백두대간길을 걸으며 지나고 있고 매 구간이 뱃지로 남겨졌다. 

이전 08화 도전! 1박 2일 산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