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백두대간 44구간 (구룡령 - 조침령)
위치 : 강원도 홍천군 내면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날씨 : 최저 11도-최고 21도, 비
산행거리 : 22.3km (마루금 21.3km+구간 외 1km)
소요시간 : 선두(10시간 24분) 후미(13시간 40분)
참여인원 : 55명
산행 출발 시간을 늦추면 충분히 잘 수 있어 좋다. 그런데 후미가 늦어져 야간산행이 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20km 넘는 산행의 집합 시간이 새벽 1시로 당겨졌다. 퇴근하고 와야 하는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새벽 5시에 들머리 구룡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20km 산행은 후반이 힘들길래 이번엔 선두에 붙어 갔다. 별이 빛나는 맑은 하늘이라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해서 나도 우비를 꺼낼까 말까 고민됐다. 우비를 입으면 습하고 덥다. 가벼운 몸으로 비가 더 오기 전에 많이 가기로 하고, 우비를 입지 않고 서둘러갔다.
20km는 정말 멀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온다. 백두에서는 거리가 깡패라고 한다. 아무리 코스가 쉬워도 거리가 길면 혼이 난다.
아이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어른들은 점점 말 수가 줄어들었다. 바람이 부니 추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추우면 우비 입고, 더 빨리 걸어 몸에 열을 낼 수 있다. 힘들어도 걸음을 재촉해 얼른 끝내는 수밖에 없다.
웅태가 힘들다고 누워 자고 있다. 간식을 다 먹었다고 해서 남은 간식을 다 털어 주었다. 가다 보니 저체온증이 걱정됐다. 저체온증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이들이 알까? 돌아가다 뒤에 오고 있는 어른들이 떠올랐다. 맨 마지막까지 버텨도 후미대장님들이 지키고 서서 기다릴 테니 오래 누워있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후미 대장님 중에 웅태 아빠도 있다.
마지막 5km를 남기고 비가 많이 왔다. 입을까 말까 고민했던 우비는 가방에 없었다. 계속 비가 안 와 전날 빼놓은 게 생각났다. 다행히 잠바가 방수가 되어 비에 젖은 생쥐꼴은 면 할 수 있었다.
산길이 거의 끝나가는 곳에 땅벌이 있다고 아빠 한 분이 지키고 서계셨다. 안내대로 조심하며 돌아갔다. 비가 와 느린 사람들이 더 느려졌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차가 3시간 넘게 벌어졌다.
언젠가 비 오는 날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 20km를 비 맞으며 걸어보니 내가 뭘 몰랐다. 버킷리스트를 이뤄간다는 건 품고 있던 환상을 하나씩 깨나 가는 과정이 아닐까. 환상이 깨진 자리에 다른 소원으로 채워 넣었다.
"산행 날, 비 안 오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