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백두대간 41구간 (닭목령 -대관령)
위치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날씨 : 최저기온 -4, 최고기온 0, 눈
산행거리 : 13km
소요시간 : 선두(7시간 3분) 후미(9시간 15분)
참여인원 : 45명
12월 마지막 산행이 미뤄졌다. 바람 때문이다. 최저기온 -17에 바람 초속 5m/s로 예보되었다. 우리는 이제 바람도 읽는다. 바람 1m/s에 체감 온도가 2도씩 떨어지니 체감 -30가 될 수도 있었다. 준비를 못하고 갔던 초겨울 산행에서 바람맛을 제대로 봤어서 한 주 뒤로 연기하기로 했다. 매일 대관령의 날씨를 매일 확인했다. 산행 날, 날씨 예보가 점점 좋아지다 최저기온 -4에 바람이 없다고 했다. 일정을 미룬 보람이 있었다.
여름산행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겨울산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겨울 산행은 일단 짐이 무겁다. 눈에 젖으면 동상위험이 있어서 장갑, 양말 여분, 체온 유지를 위해 핫팩, 보온병, 눈길에 아이젠, 스패치, 부피가 큰 보온잠바까지 챙겼다. 짐이 무거우면 등산은 힘들 수밖에 없다.
들머리에서 준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눈과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싸매고 핫팩을 등, 배, 발가락, 손장갑에 넣었다. 장갑은 핫픽을 넣기 위해 두 겹으로 꼈다. 발 끝에 핫팩을 넣어야 눈 속을 걸을 때 발이 시리지 않았다. 거의 눈만 출발해서 더워지면 하나씩 벗을 수 있게 껴입었다.
밤새 내린 눈이 쌓인 길에서는 밟을 때마다 뽀도독, 두둑 소리가 났다. 가을엔 밟을 때마다 낙엽 '사그락' 소리에 옆 사람의 말이 안 들리기도 했는데 겨울 산행의 눈 밟는 소리도 컸다. 첫 번째 언덕에 올라와 경치를 보는데 눈 길이 닿는 곳이 전체가 하얗다. 기어이 못 찾고 장갑을 벗었다. 셔터를 몇 번 누르니 손이 금세 곱아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장갑을 꼈다.
아이들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발자국을 찍고 다녔다. 눈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나무를 흔들어 눈이 내리게도 했다. 사방이 놀거리 투성이다. 이래서 겨울 산행이 오래 걸리는구나!
13km는 겨울만 아니었으면 점심때 끝났을 거리다. 눈 길에는 이 거리가 얼마나 걸릴까. 하산 마지막 한 시간 전부터 눈 예보가 있었는데 중반부터 눈이 내렸다. 추운 줄 모르고 갔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추워졌다.
눈 밭에 눈을 맞으며 점심을 먹어야 했다. 차량용 비닐을 여럿이 잡고 펼쳐 머리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동그란 공기방울 안으로 열 명쯤 자리 잡았다. 비닐 끝을 엉덩이로 깔고 앉으니 안에 모인 공기가 따뜻해졌다.
눈과 바람을 막으니 컵라면을 익는다. 겨울에 컵라면은 물을 붓자마자 식어서 면 덩어리가 다 풀리기도 쉽지 않다. 비닐 안을 양보한 대장님들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속의 황장군처럼 눈을 맞으며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산길을 걸어가는 대원들 위로 논이 쌓여갔다. 눈 길 내리막을 만나자 미끄러워 느렸고, 미끄러질까 봐 느려졌다. 겨울 산이 느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겨울바지를 살 때 방수 기능에 대해 들은 게 생각났다. 여름에도 가파른 흙길을 내려갈 때처럼 앉아서 엉덩이로 내려갔다.
엉덩이로 내려가니 길이 미끄럼틀이 되었다. 스틱까지 접어 양쪽 옆을 지치자 썰매가 되었다. 뚱뚱한 배낭은 뒤로 누우면 브레이크가 되었고 낙차가 있는 곳을 떨어질 땐 배낭에 잡힌 몸이 붕 떠서 엉덩이가 보호됐다. 이제 내리막이 기다려졌다.
접이식 눈썰매를 챙겨 온 초등학생이 있었다. 겨울에 좀 놀아본 아이다. 눈썰매로 엉덩이 마찰을 줄이자 속도가 붙었다. 돌멩이에 엉덩이가 찍히는 것도 보호해 줬다. 아이젠 낀 발은 내리기만 하면 강력 브레이크가 되니 위험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추운데 산을 어떻게 가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바람만 잘 막으니 할만했다. 재밌게 가는 방법을 알게 되니 두 번밖에 안 남은 겨울산행이 아쉬워진다. 나도 다음엔 눈썰매를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