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나무 Aug 07. 2024

숲 속 눈썰매장


구간 : 백두대간 35B구간 (두문동재-화방재)

위치 : 강원도 태백시 혈동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날씨 : 최저 -10도-최고 0도, 맑음

산행거리 : 11.6km 

소요시간 : 선두(7시간 22분) 후미(9시간 50분)

참여인원 : 43명


  산행공지가 올라오는 게시판에 눈 쌓인 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사진과 영상을 많이 올렸다. 그걸 보고 서연이가 오랜만에 산에 왔다. 혼자 산에 오고 있던 엄마에게 겨울 산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서연이는 배낭에 빨간 엉덩이 썰매를 달고 왔다. 엉덩이 썰매는 방석만 한 크기로 앞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썰매는 맨 앞에 가는 사람이 길을 내고 내려가느라 느리고, 뒤에 타고 가는 사람들이 빠르고 재밌다. 서연이와 중간 그룹으로 가면서 엄마 한 명이 길을 내주었다. 맨질해진 길을 후미를 지키며 오는 아빠들이 밟아 흩트려주었다. 뒤에 올 사람들이 걸을 때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엉덩이 썰매는 다른 용도로도 쓰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으면 엉덩이 썰매로 눈을 퍼서 눈 내리는 효과를 냈다. 눈을 맞은 사람들이 다시 눈을 뿌리면서 눈싸움으로 번졌다. 사방에 쌓인 눈이 잘 다져져 있어서 떼어내기만 하면 눈뭉치로 바로 던질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자기 머리만 한 눈덩이를 떼내서 던졌다.    

  나무 아래서 서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지를 흔들어 폭설을 내려주었다. 폭신한 눈 밭에는 얼굴을 꾹 눌러 도장을 찍었다. 사방이 놀 거리였다. 넓은 눈밭이 나와 이번엔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따라 하던 서연가 "아, 행복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버스에서 내려 3시간을 걸어 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와 만났다. 도로 건너에 눈 꽃으로 유명한 함백산정상이었다. 정상 근처에까지 차로 올 수가 있는 곳이라 도로를 건너 오르막을 가는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백두에서 보기 드문 관경이었다. 

  중무장을 하고 이른 아침부터 걷고 눈 밭에 뒹굴다 온 우리와 달리 땀 한 방울 나지 않아 보이는 뽀송한 모습의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곳을 이렇게 다르게 올 수 도 있다. 

  나는 대간길을 걸어 함백산을 만나는 게 좋았다. 관광객들이 함백산 정산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갔지만 우리는 함백산을 넘어 은대봉을 향해 출발했는데 진짜 눈 꽃은 이때부터였다.

  평소에 사진을 찍지 않는 아빠들까지 카메라를 꺼내게 하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까지 늘어진 나뭇가지마다 눈이 쌓여 겨울왕국을 연상케 했다. 아빠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숲 길이 끝나고 뱀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소방도로를 내려가야 했다. 이 길 끝이 날머리였다. 아스팔트 길은 썰매가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경사가 되지 않았다. 아이젠을 낀 채 걸어 내려가기엔 평지라 발바닥에 불편하고 빼고 가기엔 위험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의 가드레일이 뚫린 곳을 이용해 산길로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이렇게 가면 꼬불꼬불 가야 하는 길을 일자로 내려갈 수 있었다. 경사가 심해 보여 긴장됐다. 시작과 너무 빨라 배낭을 멘 채 누워서 내려왔는데 배낭이 브레이크가 되어주었다. 그동안 겨울산에서 탔던 눈썰매 난이도 중 과히 "최상급 코스"라 할 만했다. 

  숲 속 눈썰매장으로 내려왔더니 마지막 하산길이 금방이었다.  아침부터 걸었고, 길이가 짧았는데도 내려오니 겨울해가 벌써 지고 있었다. 얼얼해진 엉덩이를 털며 버스로 향해갔다. 

  겨울이 가는 게 아쉬웠다.   


이전 12화 겨울산행, 목숨 걸고 탔더니 죽도록 재밌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