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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Mar 16. 2024

뿌리째 뽑힌 나무가 쓰려져 있었다

- 백두대간 12구간 (덕산재-삼도봉)

위치 : 경북 김천시 대덕면 ~ 부항면

일시 : 2024년 3월 9일 토요일

집합시간 : 새벽 2시

산행인원 : 53명 (완주 50명, 중도하산 3명)

산행거리 : 16.1km (마루금 13.1km, 구간 외 3km)

날씨예보 : 아침 최저 –5도, 낮 최고 4도, 정상 최저 –9도, 구름 없이 맑은 날씨

산행시간 : 선두 10:54      후미 13:04

세부 진행 시간 

      덕산재(들머리) :06:26

      부항령(식사) :10:05

      백수리산 : 12:12

      박석산 : 15:03

      삼도봉: 17:29

      산삼약수터: 18:30 

      해인산장(산행종료) : 19:30     



   아홉 살 인해는 백두대간을 가슴에 품고 산다. 총 스물다섯 번의 산행 중 백두를 완주한 횟수는 손에 꼽히지만 산행버스는 열 번 이상 탔을 거다. 중도하차, 입구하차도 여러 번이지만 인해는 자신을 백두대간에 다니는 어린이로 여긴다. 

  갑자기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적이 있다. 8층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겠냐고 물으니 “백두도 가는데 이걸 못 가겠어요?”라며 씩씩하게 잎장서 올라 놀랐었다.  

  겨울 산은 힘들어 데리고 가지 않았는데 다음번엔 꼭 데려가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추위를 이유로 말리곤 했다. 


  3월이 되었으니 인해도 산행 신청을 했다.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매서운 아침 바람에 인해는 울먹이며 입구하산을 하고 말았다. 힘들긴 해도 좋아하는 언니들과 어울려 가는 걸 기대했을 텐데 날이 추우니 각자 장비 챙기고 꽁꽁 여미고 출발하기 바빴다. 

  등산은 자기 속도를 찾고 나서 만났다 헤어졌다 하며 가야 한다는 걸 인해가 이해하긴 아직 어렵다. 뒷모습만 보며 따라가기에 산행길은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새벽바람은 의욕을 꺾기 충분했다.  

  남편과 아이가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며 뒤에서 가다가 무전기를 통해 아이와 아빠가 하산하기로 했다는 말에 맥이 풀린다. 작은 크기의 등산복, 신발, 겨울장비들을 준비하느라 드린 수고가 생각나 화가 났다. 나도 그만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백두대간 완주를 위해 오늘 구간을 보충산행 오겠다 할 때 운전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 혼자라도 오늘 구간을 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4km 정도 간 곳에 600미터의 짧은 탈출로가 있었다. 무릎이 아픈 어른 한 명과 열 살 어린이 한 명이 내려가기로 했다. 초반 낙오자를 대비해 출발지에서 대기하던 버스가 약속대로 탈출로에 와 있었다. 남편은 하산한 어른에게 인해를 부탁하고 탈출로를 올라와 대열에 합류했다.   


  아침 6시 반쯤 출발한 산행이 3시간째 이어졌다. 부항령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벌써 먹어?” 했다가 백수리산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보고는 “뭐라도 먹고 오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컵라면과 아침에 받은 주먹밥을 먹었다. 

  눈은 아직 녹지 않은 날씨지만 겨울장갑이 더워졌다. 속장갑만 끼고 가다 나중에는 장갑을 벗고 갔다. 아직 꽃 하나 눈에 띄지 않지만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오늘 등산로에는 유독 부러진 나뭇가지가 많았다. 태풍이 지나갔나 싶게 하얀 눈 위에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높이 달렸던 가지들이 찢어진 곳마다 속살을 드려냈다.  

  두 시간이 걸려 12시에 백수리산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탁 틔여 있었다. 눈이 닿는 곳 끝까지 산이 굽이굽이 펼쳐졌다. 멋진 풍경을 보며 이런 맛에 산에 올라오지 싶었다. 

  박석산 가는 길엔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막을 정도로 큰 가지가 부러져 있었고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도 지나야 했다.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달려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그걸 보고서야 숲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많이 온 눈이 쌓여 녹다 얼다를 반복해 얼음덩어리가 된 것이었다. 한 가지에 저렇게 큰 얼음덩이가 달렸다면 나무가 뿌리째 뽑힐 수 있었겠다. 

  쓰러진 나무들를 지날 때마다 탈출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쓰러진 나무통이 길을 막은 경우는 그나마 나았다. 배낭이 걸리긴 해도 나무 아래로 기어가거나 다리가 긴 어른은 넘어갈 수 있었다.  

  나무가 뒤집어져 나뭇가지들이 세로로 길을 막은 경우도 괜찮았다. 커튼 열 듯 등산 스틱으로 벌리며 갔다. 나뭇가지에 볼을 맞긴 했지만 ‘쓱’ 지나갈 수 있었다.  

  제일 어려운 건 옆으로 누워 상단의 나뭇가지가 길을 가린 경우였다. 그야말로 정글 숲을 헤치듯 가야 했다. 뽑힌 지 얼마 안 된 가지는 힘이 셌다. 발로 밟았다 떼면 바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두에서 밟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맨 앞에선 어떻게 갔을까 싶었다. 이렇게 가다 보니 박석산에서 삼도봉 가는 길이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마지막 내리막길을 남겨 두었을 때다. 많이 가파르다는 안내는 이미 들은 터였다. 눈이 없었으면 쉬웠을 계단에 눈이 쌓인 채 얼어 있었다. 아이젠을 꽉꽉 눌러가며 내려왔다. 

  그러나 가파른 내리막에 자리 잡았던 나무들은 그야말로 수난이었다. 쓰러진 나무들로 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앞서 가던 사람이 길 가에 걸터앉아 있길래 힘들어서 쉬는 줄 알았다. 가까이 가니 나무가 넘어진 틈을 지나려면 그 자세로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다고 하다가 뿌리째 뒤집어져 있는 나무가 보였다. 저 나무들 보다는 내 처지가 나았다. 쓰러진 나무들 속에서 길을 찾아가며 아스팔트 길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3 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예약된 식당이 있다. 버스도 진작에 와 있을 것이다. 

  마음은 뛰어가고 싶은데 내리막에서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점점 심해졌다. 뒤로 걸으면 좀 나았다. 눈이 있는 곳은 앞으로 걷고 녹은 곳은 뒤로 걸으며 내려왔다. 


  예상보다 하산이 늦어졌다. 7시가 넘고 있었다. 산에서 해는 빨리 떨어졌다. 헤드랜턴을 켜야 했다. 어느새 머리 위로 별들이 나타났다. 하늘 가득 별들이 어찌나 예쁘게 반짝이던지 별을 보는 동안은 무릎 통증이 잊혔다.

  눈이 쌓여 못 올라온다던 산장트럭이 왔다. 후미 일곱 명을 태우고 내려가며 아직 걷고 있던 사람들을 태웠다. 운전석 뒷자리와 트럭 짐칸이 배낭과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트럭 뒷좌석에 구겨져 앉아 가며 나뭇가지에 따귀를 맞은 사람, 어깨를 잡혔던 사람, 내리막에서 다리가 풀려 넘어지고 또 넘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움을 함께 헤치고 왔다는 흥분에 트럭에 탄 사람들의 눈동자가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이전 11화 겨울산은 바람이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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