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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Aug 07. 2024

불볕더위에 태백산

- 백두대간 34구간 도래기재-화방재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법이다. 가장 긴 25km 구간을 가장 먼저 보충하게 되었다. 완주 중인 총무대장님도 개인 일정으로 빠진 코스라 남편분이 운전해주기로 했다. 이래서 누구랑 같이 빠지느냐가 중요하다.  

  운전하고 가서 10시간 넘게 산을 타고, 다시 운전하고 오는 건 무리다. 본 산행 때는 버스를 대절해 문제가 안되지만 보충산행 때는 운전대장을 구하는 게 큰 일이다. 그래서 보충대는 빠진 사람들끼리 팀을 꾸려 오가는 운전을 나눠하기도 한다. 운전을 맡아 준다는 이가 있으니 보충 날짜는 바로 잡혔다. 

  사람들이 모였다. 정성종 대장님은  32,33 구간(구간 외 없이 27km 정도)을 가야 하고, 우리(남편과 나, 총무대장님)는 34구간(구간 외 없이 25km 정도)을 가야 했다. 서로 갈라지는 지점인 도래기재를 들머리로 삼았다. 새벽 2시에 동천동을 출발한 카니발이 새벽 5시에 경상북도 봉화, 도리기재에 도착했다. 도래기재는 백두대간의 고개다.  

  도래기재가 들머리가 되는 바람에 우리는 34구간을 본산행과 반대 방향으로 타게 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사람들 뒤로 보이는 길로 정성종 대장님이 들어가고, 우리는 길은 건너 등산로 입구로 들어갔다. 10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보다 거리가 길지만 걸음이 빠른 정성종 대장님이 아마도 먼저 하산할 것이다. 


새벽 5시 반, 경상북도 봉화군 도래기재. 백두대간 고개이다. 


  보충산행은 답지를 들고 가는 시험이다. "마지막이 아무리 가도 끝이 안 나서 정말 지루했어", "길어서 간식을 계속 찾게 되니 충분히 가져가는 게 좋아"라는 조언을 들었다. 밴드에는 산에 다녀와 올린 어른들과 학생들의 후기도 있다. 특히 강선두대장님의 후기에는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걸린 시간도 나와있다. 읽다 보면 아는 길이 된 듯해서 마음에 안심이 생겼다. 

  우리가 가는 날 태백은 폭염주의보였다. 최저온도 23, 최고 33도에 습도는 87% 였다. 매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 33도라고 해도 별 감흥이 없다. 습도 90-95%에도 산에 갔는데 87%쯤이야. 우천산행에 개고생을 해본 후에 오직 관심은 비가 오는지 여부다. 다행히 비소식이 없다. 

  날씨요정이 함께 와 주었는지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이런 날을 등산하기 좋은 날이라 부른다. 한 여름의 숲은 울창하다 못해 길을 가렸다. 종아리 보호대를 하지 않았으면 온통 풀에 쓸렸으리라. 바람이 분다 해서 습도와 온도로 보호대 안에 땀띠가 나기 시작했다.  


날이 흐려 산행하기 좋았으나 여름 숲은 울창해 팔과 다리에 풀이 계속 쓸렸다. 


"거기 길은 좋아. 길어서 힘들었지."

흙길이 대부분이었으니 먼저 다녀온 사람들 말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본진과 거꾸로 타서 첫 번째 구룡산부터가 고비였다. 가도 가도 구룡산 정상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길은 꾸준히 오르막이었다. 살짝 오르막이라도 허벅지는 기가 막히게 느낀다. 피로가 쌓여갔다. 

  어렵게 도착한 구룡산에는 묘비만한 어두운 비석하나만 서 있다. 주변은 온통 풀이 삐죽삐죽하게 나있다. 백두대간이 보호지역으로는 지정되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곳이 많다. 파리떼가 달려들어 사진만 찍고 금방 지나갔다. 조금 더 가서 바람이 부는 그늘을 찾아 쉬어갔다. 

  머릿속과 배낭과 닿아 있는 등, 바지춤이 닿은 허리가 땀범벅이다. 머릿수건은 짜면 짤 수 있을 정도다. 유일한 탈출로라는 곰넘이재 간판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정성종 대장님이 저쪽에서 가열하게 이동하고 계실 터였다. 정성종대장님을 태우고 먼저 우리 쪽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곰넘이재 유혹을 뒤로하고 신성봉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본진과 반대방향으로 타서 도래기재 --> 화방재로 갔다.  


신성봉으로 향해가며 내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선두대장역할을 맡아 열심히 길을 찾아가며 앞서가고 있는 남편과 뒤에서 오는 총무대장님 사이에서 안 들키게 오만상을 찌푸리며 따라갔다. 날도 선선하고 좋은데, 길도 좋은데, 왜 이리 힘들까. 잔잔하게 끝없는 오르막이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쓰러진 나무를 보면 일단 긴장된다. 작년 겨울 산행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무거워진 쌓인 눈더미로 나무들이 쓰려있던 산을 해질 때까지 넘고 나서 생긴 몸의 반응이다. 그야말로 전우의 시체가 아니라 뒤집어져 쓰러진 나무들을 넘고 넘었었다. 저 앞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누워 있었다. 한숨을 쉬고는 나무틈 사이로 몸을 구겨 밀어 온몸을 부대껴가며 건넜다. 배낭이 끼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총무대장님이 미끄럼 타듯 살짝 넘어왔다. 나는 지침+1을 획득하고 총무대장님은 기분상콤+1을 획득했다. 작든 크든 트라우마는 시야를 좁게 해서 선택지를 스스로 줄게 만든다.  


몸을 꾸겨 넣느라 애쓰는 나와 미끄럼타듯 넘는 총무대장님. 다행히 쓰러진 나무는 여기 한 곳 뿐이었다. 


  깃대기봉 도착했다. 가볍게 탁탁 걸으면서 허벅지와 엉덩이로 걷어야 하는 것을 놓쳐서일까? 가장 안 좋은 자세인 줄 알면서도 스틱에 기대어 "아이고"하는 자세가 되었다. 초반의 작은 차이가 점점 큰 차이로 벌어졌다. 깃대기봉에 도착해서 여전히 쌩쌩한 총무대장님과 기력을 다 한 내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앞장서가는 남편은 쳐지는 나를 재촉했다. 입이 삐죽삐죽거렸지만 발은 계속 움직여야 했다. 끝까지 가야 끝난다. 산행 본진의 초등학생들도 아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힘들다고 멈춰있으면 산행이 길어질 뿐이다.   

  무릎도 아파왔다. 냉각젤을 바르고 파스를 뿌리니 효과가 좋았다. 쉴 때마다 무릎 보호대를 벗어 열기를 빼주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파리와 초반부터 따라오고 있어 보이는 벌 때문에 해충기피제도 쉴 때마다 다시 뿌렸다. 


  다행인 건 20km 넘어가도 가도 끝이 안 나 힘들다고들 했던 지점이 반대로 타는 우리에게는 태백산이라는 것이다. 태백산은 삼 년 전에 인수와 둘이 왔던 곳이다. 유한사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천제단까지 올라왔었다. 아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만 오르면 익숙한 곳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남은 힘을 쥐어짰다. 


  2021년 겨울, 인수와 둘이 올랐던 태백산은 초입부터 얼어있어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고 가야 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가서 정상에서 컵라면을 먹었는데 찬 바람에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 다 익지 않아 질깃한 면을 먹으면서도 우리도 라면정도는 준비해 가게 되었다고 좋아했었다. 변하지 않는 장소에 추억을 남겨놓는 건 이래서 좋다. 아들과 다녔던 산에는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정상석처럼 그 시절의 아들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다. 눈을 밟고 올라왔던 태백산 정상이 오늘은 그늘 한 점 없는 불볕더위다. 얼른 사진을 찍고 천제단이 만들어준 그늘을 찾아가서 쉬었다.   



  천제단 옆에 앉아 태백산을 내려다봤다. 유일사 주차장부터 올라오면 두 시간이면 왔던 곳이다. 도래기재에서 출발해 열 시간이 걸려 온 길을 떠올리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봐져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한 달에 두 번,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수풀을 헤치고 벌과 뱀에 대처해야 하는 모험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다. 

  길을 잘못 들어 유일사로 내려왔다. 절 마당에서 손수건을 빨고 세수를 하는 진상 등산객들에게 스님께서 방금 삶았다며 옥수수를 주셨다. 행색을 보더니 대간길 타냐고 물으시고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알려주셨다. 아들과 왔던 길은 등산길이고 화방재로 향하는 대간 길은 아예 방향이 달랐다. 

  공사 중인 급경사 계단을 보며 저길 다시 어떻게 올라가냐며 남편이 한숨을 쉰다. 그도 지쳐있다. 나는 끝이 없게 느껴지는 게 힘들지 계단은 겁나지 않는다. 오히려 급경사 계단은 빠른 시간에 고도를 획득해서 좋다. 400미터 고도를 2km 걸러 걸어가면 되는 길, 나는 그런 잔잔하게 긴 오르막이 힘들다.  

  날머리에서 기다리던 체조대장님이 시원한 맥주와 음료가 들어있는 아이스박스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솟는 힘은 어디에 숨어있던 걸까. 아래 벤치에는 정성종 대장님이 보였다. 정성종 대장님이 탔던 구간이 해가 더 쨍쨍했는지 탈수가 와서 혼났다고 했다. 물을 아무리 먹어도, 포도당을 먹어도 나아지지가 않았다며 오전 9시에 한 코스가 끝났을 때 내려왔어야 했다며 힘들어했다. 지리산 종주 내내 쳐지는 사람 배낭을 가져가서 종주 내내 가방을 두 개씩 매고 다니던 분이다. 태백산 더위는 산신령계에 있던 정성종 대장님을 인간계로 끌어내렸다. 

  백두대간을 3번째 종주 중인 정성종 대장님 추천식당으로 가서  제육볶음과 두부전골에 쟁반메밀을 먹었다. 다녀오고 나서 보니 1년 중 가장 더운 8월 초였다. 일 년 중 에어컨 사용량이 집중되는 시기다. 다 같이 동시에 미치기가 쉽지 않은데 보충산행에 대해 어느 하나 너무 덥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은 보충산행 중에 정성종 대장님과 겹치는 두 개 구간을 하루에 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하루에 35km 산행은 아무래도 무리겠다고 하나씩 타기로 했다. 한 여름 무더위를 치열하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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