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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Feb 05. 2024

기다릴테니, 다시 돌아와다오


구간 : 백두대간 6구간 (복성이재 - 중재)

위치 : 전북 장수군 번암면 

날씨 : 최저 11도-최고 20도

산행거리 : 13.5km (마루금 12.5km+구간 외 1km)

소요시간 : 선두(6시간 2분) 후미(7시간 33분)

참여인원 : 64명


  단체로 산에 가다 보면 돌아가며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이 생긴다. 어젯밤까지 멀쩡했어도 새벽에 산을 오르다 보니 체하기도 하고, 발목을 다치기도 한다. 조금씩 아프던 무릎이 오늘은 못 걸을 만큼 아프기도 한다. 

  산행 후 두 시간은 버스가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에 심하면 다시 돌아 내려가면 된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쉬었다 다시 가면 좋아진다. 

  긴 거리의 산행이 무리인 경우엔 중간에 짧은 하산로를 찾아 내려가기도 한다. 산행거리가 짧아지지만 알아서 버스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 무릎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신청 전에 중탈로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더 못 가겠다고 할 땐 상황이 좀 복잡해진다. 엄마나 아빠 중에 한 명이 아이와 같이 내려가야 하는데 백두대간 들머리나 날머리는 편의점도 하나 없는 산길이라 아이와 내려가서 할 게 없다. 게다가 기사님이 주무셔야 하기 때문에 버스에서 돌아다니지 않게 하다 보면 산 타는 게 낫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못 가겠으면 가겠다고 미리 말을 하면 좋으련만 산행 전날은 소리 뻥뻥 쳤다가 등산로 초입에서 잠이 깨서, 오르막이 계속돼서, 어둠이 무서워서 못 가겠다며 엉엉 울 땐 정말 난감하다. 그래서 딸의 다리 힘을 붙이려고 수영 횟수도 늘리고 줄넘기도 새로 시작했는데 수영과 줄넘기만 늘고 등산이 느는 기미는 아직 없다.  

  그리고 우리 딸은 백두 종주는 기대가 전혀 없었기에 이미 초과달성이었다. 그래서 딸이 이제 백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냥 둘 수 있었다. 우리가 백두 가려고 사냐, 잘 살려고 백두도 가는 거지!  

  남편과 이번 산행이 역대급으로 쉽다고 얘기하던 중이었다. 언제 듣고 있었는지 딸이 갑자기 "나도 갈래. 꼭 신청해 줘!"라고 했다. 그동안 생각해 둔 게 있어서 아빠가 선두대장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같이 가기로 했다. 동갑내기 설아처럼 배낭 없이 가게 하기로 했다. 

  신청은 했지만 이번에도 초반부터 내려가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새벽에 체조를 하는데 딸이 같이 해서 갈 마음이 정말 있어 보였다. 다행히 초반 오르막이 평지 길이라 잘 갔다. 계속 오르막이 심하지 않았다. 아빠가 맡아 데리고 가고 있었지만 걷는 동안 딸에게 이 길이 어떨까에 관심이 쏠렸다. 날이 금방 밝아왔다. 여러 상황이 다 좋아서 딸은 투정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 

  우리 딸만 잘 걸은 게 아니라 참석했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모두 에너지가 조금씩 남는 산행이었다. 마지막에 신발이 젖을 만한 개울도 나왔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남은 힘으로 후미들 건네줄 준비를 해 놓았다. 남자아이들은 가장 빠른 길로 업어주겠다고 하고, 걸어가겠다면 버스에서 슬리퍼를 갔다 주었다. 

  어느새 우리 딸은 마음속에 백두대간길을 품고 살고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을 때, "백두도 가는데 이걸 못 가겠어!"라며 씩씩하게 올랐다. 백두는 잘 못 타도, 자기 반 친구들 중에 산을 가장 잘 탄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울면서 내려간 시간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딸의 산에 대한 감각도 점점 구체적이 되어간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지명을 술술 외우고 고도를 알진 못하지만 15km 산행이 자기에게 힘들다는 걸 안다. 이번 산행은 몇 km인지 묻고 고도표 보고 오르막 정도를 확인한다.  

  되돌아 내려가고, 중도탈출을 해도 간다고 할 땐 계속 데려갔더니 산행팀에 딸아이의 자리도 있다. 딸신청하면 후미 엄마들이 느린 사람이 온다며 안심했다. 후미대장님들은 큰 손님이 이번에 오신다며 딸을 맞을 준비를 했다.  

  아이가 가다가 못 가겠다고 주저앉을 때마다 여기가 아이를 데려올 곳이 아니었나 후회했었는데 내가 먼저 "너 그럴 거면 이제 그만 산에 가자"라고 하지 않기를 잘했다. 

  어른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줄 테니, 계속 산에 오지 않을래?  


날머리의 개울 /                                     아침체조 /                               아빠가 쉐르파 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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