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백두대간 13구간 (우두령-삼도봉)
위치 : 충북 영동군 상촌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날씨 : 비 온 뒤 쌀쌀
산행거리 : 14.5km (마루금 11.5km+구간 외 3km)
소요시간 : 선두(8시간 5분) 후미(9시간 40분)
참여인원 : 78명 (출발 74명, 완주 68명)
다음 산행 신청을 앞두고 딸이 고민에 빠졌다. 같은 반 친구 준서가 산에 가는 토요일에 태권도장에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솜사탕도 먹고, 피구도 한다고 했다. 저번 산행 때 시작부터 울고 못 가길래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딸은 어디를 가야 하나를 두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대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걷는 산행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아들은 선두대장인 아빠를 도우며 간다고 늘 아빠와 함께 맨 앞에서 가고 있다. 빠르지도 않으면서 앞에서 가고 싶은 초등 동생들을 때문에 답답하다. 자꾸 사이에 껴주는 아빠에게도 불만이 많다. 산행 후기에 한창 자라야 하는 성장기 청소년의 잠을 방해받고 있다고 썼다. 식당 메뉴가 버섯전골이었던 날 같은 테이블 친구들이 다 버섯은 먹지 않고 고기만 골라먹었는데 양이 너무 적어 배가 고팠다고 했다. 언제쯤 아들의 후기에 친구얘기와 풍경이 나올까 궁금해해 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안 가겠다는 말 없이 가고 있어 기특하다.
동아리를 소개에 "백두종주를 같이하는 아이들은 부모님과 사이가 좋고 사춘기도 심하지 않게 보낸다"라고 했다. 사춘기가 잘 지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주말에 누워 핸드폰 보는 시간에 아이들과 밖에서 모험하며 보내고 있다.
캄캄한 숲 속을 헤드렌턴을 켜고 들어선다. 렌턴이 비춰주는 동그란 불빛에 의지해 다음 발 놓을 자리를 찾는다. 발 밑만 쳐다보다 가다 보면 갑자기 새소리가 커졌다. 그러면 곧 날이 밝아졌다. 해가 뜨면 처음엔 세상이 밝아지고 그다음엔 따뜻해졌다.
내가 먹을 것을 내 등에 지고 가면서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쉰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깊이 숨어있어 잊고 있던 생존버튼을 생생해져 갔다. 욕심내서 짐이 무거워진 날엔 다리에 쥐가 났다. 내려갈 때 다 비워갈 만큼을 점점 알아간다.
등산로 입구에서 인원을 센다.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와!" 하는 탄성이 들렸다. 한 주 내내 사무실에 앉아 바빴을 어느 집 아빠의 설레임 가득한 소리다. 이제부터 하루종일 흙과 나무만 보며 걸을 것이다. 골머리 쓸 일도 없고, 복잡한 관계도 이곳엔 없다. 사방을 살피던 레이더를 접어 넣고 출발한다.
오직 걷고, 쉬고, 먹는 시간을 산다. 산행 대열이 주는 적당한 안정감 속에서 자유롭게 모험한다. 아픈 사람은 비상약 중에 골라 먹고 대부분은 쉬면 좋아진다. 긴 산행 끝에 날머리 도착하면 기뻐서 아픈 걸 잊는다.
초반에 잘 체하는 정현이는 이번 산행부터 아침으로 죽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현식이 엄마도 이제는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한다. 몸이 풀리고 나서 아침 먹는다. 이렇게 자기 몸을 알고 조절해가는 힘이 생겨가고 있다. 나는 얼마 큼의 물이 마셔야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걸어야 다리가 아픈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각자는 산을 가는 자기 속도가 있다.
비바람을 맞으며 갈 수도 있으니 일기예보에 민감해졌다. 기온, 바람세기, 강수량에 관심이 많다. 새벽에 바람막이를 출발했으면 해가 뜨면 벗어야 한다. 계절이 바뀌는지 모르고 내복을 입고 왔던 아빠가 벗을 때를 놓쳐 탈수가 왔었다.
2주마다 들머리에서 바람이 다르다. 계절이 바뀌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은 10km, 15km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 산을 보며 우리가 하루 산행한 거리를 가늠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집 둘째는 급기야 "이제부턴 15km 미만인 산만 가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엔 오랜 고민 끝에 산 대신 태권도장을 선택해 갔다.
날이 더워졌다고 식사장소를 계곡 옆으로 정했다. 밥을 먹고 다 같이 물놀이를 했다. 뜨거운 여름 산행 후에 차가운 계곡에서 놀아보며 계절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간다. 나는 백두대간 종주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