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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15. 2023

울고 넘는 추풍령

- 둘째의 산태기

둘째가 하산하자마자 하는 건 자기의 산행 성공을 모두에게 알리라는 것이다. 담임선생님, 발레선생님, 학교 친구 엄마들, 친구들, 어린이집 선생님들까지 떠올리곤 다 연락해 달라고 했다. 그럼 그럼, 산에 다녀와 자랑하는 맛이 최고지! 나도 입이 떡 벌어질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진과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백두대간 종주는 순항 중이었다.


산행을 다녀오면 종주팀 밴드에 아이들의 후기를 남겼다. 한글이 서툰 둘째는 입말을 받아 적어 올렸다. 산행기를 쓰고 지나서 보면 아이들의 성장기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권한 일이다. 첫째의 산행 후기에는 음식에 대한 평이 주로 있다. 힘들었다 쉬웠다가 다 인 산행기에 언제 친구가 들어올까, 아이눈에 언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까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의 산행후기를 적는데 변화가 느껴졌다.

.

“이번 산행은 어땠어?”

“너무 힘들었어. 그래가지고 울었어 “

“왜 힘들었어? 그런데 어떻게 끝까지 왔어? “

“그냥. 지나 언니 엄마가 끌어줬어. 막 기차하면서”


지나 엄마는 첫 산행에서 자기 두 다리를 두 손으로 하나씩 옮기며 내려왔었던 분이다.  아무리 체력이 올라왔다 하더라도 아이를 스틱으로 기차놀이하며 끌고 오르막을 오를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내가 끝까지

돌보지 못할 아이를 산에 계속 데려가는 게 맞는지

고민됐다.


“어디가 젤 기억에 남아? “

“너무 힘든 기억이 남아.”

“내려가는 길은 엄청 쌩쌩 빠르게 갔는데. 너무 힘든 기억이 남는다고. 쌩쌩. 엄청 대장님보다도 더 빨리 갔단 말이야.”


“또 뭐가 기억에 남아? 꽃본거?”

고개를 도리질한다.

“너무너무너무 힘들었어. “


아이는 온통 힘들다고만 했다. 다음 산행 신청이 망설여졌다. 어느덧 다음 산행이 찾아오고 가면 또 올라가겠지 싶어 일단 신청했다. 올해 이사 온 터라 편하게 하룻밤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내려 체조를 하는데 둘째가 뒤로 빠진다.


“나 결심했어. 오늘은 안 갈 거야” 살짝 체조하는 쪽으로 밀어도 보는데 다시 제자리다.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가 오더니 “오늘은 언니랑 가자”라며 손을 덥석 잡으니 화색이 돌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렇지. 갈 거면서 이 녀석.


그 이후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우리 둘째는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울었다. 힘들기 전에 미리 힘들어해서 기운을 뺐다. 사람들의 응원에도 변화가 없었다. 초반에 후미가 되었다. 아이 때문에 한 걸음이 어려운 상황. 전체 산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발 후 한 시간은 버스가 낙오자가 생길까 봐 대기해 준다. 후미대장님께 아이와 돌아 내려가겠다고 얘기하고 하산했다. 전체 대열에 아이와 엄마가 하산한다는 무전이 울려 퍼진다.

내려오는데 이번엔 아이가 아니라 내가 눈물이 났다. 내 준비가 소홀했다고 여겨졌다. 조금 더 잘 챙겼으면 갈 수 있었을 거라 여겨졌다. 속상했다.


“엄마, 울어?”

“응”


내려와 얘기하니 아이는 뒤쳐지는 게 싫다고 했다. 왜 설아는 잘 가는데 나는 못 가냐고. 왜 언니들은 다 빨리다는데 나는 못 가냐고 했다. 나이, 다리힘, 계속하다 보면 등등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아이에게 가서 닿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가는 것만도 신통해서 더 바랄 것이 없었는데 이 얇은 다리를 하고 15km를 해낸 8살 아이가 왜 자기는 선두에서 가지 못하는지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째의 산태기가 찾아왔다. 등을 떠밀어서 산을 넘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둘째 맡길 곳을 전전해야 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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