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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pr 15. 2022

소피 이야기, 빈티지 일러스트

1930, 40년대 전간기 戰間期 일러스트


프랑스 한정 <소피 이야기>는 집필된 시기만큼 오래 사랑받은 국민 동화다. 어린 시절 금성 전집에 수록된 짧은 축약분으로 처음 접했기에 그 유명세를 체감하지 못했다. 이 동화를 기억하는 이들도 서사보다는 다카하시 마코토의 해사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19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아동문학의 스테디셀러답게 연대별로 엄청난 수의 판본이 있다. 프랑스 출판사들이 전집 기획마다 우선순위 리스트에 올리는 고전이라고 한다. 매체별로도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애니메이션은 EBS에서도 방영한 적 있다고 한다.

다카하시 마코토의 일러스트는 이전에 쓴 글들로 대신한다.


#소피 이야기, 오늘의 과일 설탕절임 https://brunch.co.kr/@flatb201/20

#소피 이야기, 당나귀 https://brunch.co.kr/@flatb201/202

#소피 이야기, 소녀라는 문법 https://brunch.co.kr/@flatb201/298

#소피 이야기,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299

高橋真琴, 1970




193, 40년대 전간기 일러스트레이터

<소피 이야기>는 엄청난 판본 덕에 연대별로도 비교 범위가 무척 넓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의 경우 연도별로 거듭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세귀르 부인이 초판을 발표했을 당시는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세밀한 판화가 번성했다. 시각적 묘사는 사실주의가 주도했지만 내용에 있어서도 기존의 철학적 기조를 벗어난 독창적 상상들이 인기를 얻는다. 연대별 판본 중 1930년대 단행본이 흥미로운 이유는 현대적 그림책의 기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고급 출판물 유행이 사그라든 후 인쇄물은 실용성에 집중된다. 옵셋 인쇄의 발달과 대량생산은 일러스트 확산의 기반이 된다. 내용상으로도 고증에 연연한 사실주의 대신 작가의 해석과 다양성이 사랑받았다. 1930년대에 인쇄물은 여전히 매체를 주도했다. 사진이 독립적 분야로 정착 전 일러스트는 정보성과 실용성에 있어 유용한 대안이었다. 이런 방향성은 전후 낙관적 관망과 불안정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전 분야로 확산된다. 특히 보그, 하퍼스 바자를 위시한 패션지들은 샤넬, 생 로랑, 디올 같은 디자인 하우스 협업과 함께 르네 부쉐 René Robert Bouché, 에르테 Erte, 앙드레 마티 Andre Marty, 조르주 바비에 George Barbier, 피에르 모르그 Pierre Morgue 같은 전설적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쏟아낸다. 

스타일 면에서도 전후 자연스러움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스타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아르데코의 부상이 반영된 장식적 스타일이 혼재해 다양한 즐거움을 주었다. 또 여성 창작자들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걸고 직업인으로 존재를 다져나간 시기이다. 그야말로 장르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이런 장르 호황은 1940년대에 들며 문화 흐름을 주도한 바우하우스 운동, 2차 세계대전 이후 TV, 라디오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인적 자산 유출 등으로 사그라든다. 프로세스의 발달로 대량, 대중화되었음에도 장르의 스타일은 좀 더 자본 집중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사진의 발달과 정착이 흐름을 바꿨다. 기존의 삽화가, 상업광고 일러스트레이터들이 1930년대 이후 대거 출판 일러스트로 선회한 요인이기도 하다. 메가 스테디셀러임에도 프랑스에 한정된 <소피 이야기>의 연대별 판본은 이런 비교가 잘 드러난다.

#눈의 여왕, 전간기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https://brunch.co.kr/@flatb201/288




호레이스 까스텔리 Horace Castelli

원작자가 직접 일러스트를 의뢰한 호레이스 까스텔리는 프랑스의 인기 삽화가였다. 정교하고 섬세한 펜 드로잉은 낭만적 화풍의 석판화에 능했던 귀스타브 도레 Gustave Doré와 아킬 드베리아 Achille Devéria로부터 영향받았다. 도레의 낭만주의보다는 상징주의 쪽에 더 관심 둔 것으로 보이는 화풍은 약간 음침한 구석마저 있다. 세귀르 부인은 까스텔리의 섬세함을 좋아해 연작마다 일러스트를 의뢰했다. 가정 채벌 장면이나 본편의 가차 없음을 떠올려보면 원작자의 마음에 쏙 든 이유가 어쩐지 추측된다;;

물론 1930년대의 이미지가 아니지만 초판 창작자기에 언급해둔다.

Horace Castelli, 1858




마리 마들렌 프랑누아 Marie-Madeleine Franc-Nohain

커리어 초기 케이트 그리너웨이 Kate Greenaway로부터 영향받아 따스한 색감의 수채화 소품을 주로 작업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그라쎄 Editions Grasset의 단행본 의뢰가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 된다. 아직 고급 출판물의 열기가 남아있던 1914년 ‘하늘색과 분홍색 Bleu pour les garçons, Rose pour les filles’ 두 가지 버전으로 발행된 기획 전집 수록분 <Le Journal de Bébé>가 인기를 얻으며 아동문학 일러스트에 주력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간기에 발행된 Maison Alfred Mame 판본의 <소피 이야기>는 명료한 라인 드로잉을 바탕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구현한다. 본문 편집을 비롯한 북 디자인 자체가 너무 예뻐 수집가들에게 여전히 인기 높다.

Marie-Madeleine Franc-Nohain, 1930
과일 설탕절임 에피소드, 소녀들도 소년들만큼 식욕이 왕성하다
당나귀 에피소드, 하찮은 아이디어도 어린이들에겐 종종 그럴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인형 장례식 에피소드, 밀랍인형은 당시 상류층에도 무척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앙드레 페쿠 André Pécoud

순수 미술과 그래픽 분야를 오가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디렉터로서 방대한 작업을 남겼다. 패션지에서 다져진 간결하고 날렵한 드로잉, 인상파 영향이 묻어나는 담백한 컬러로 낭만적인 낙천성을 구사했다.

앙드레 페쿠는 고증이나 스타일에 있어 온전히 1930년대를 선택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파리의 주요 패션지 및 쁘렝땅, 라파예트 같은 대형 클라이언트를 두고 상업 광고 이미지로 이미 인기 높았다. 아르데코의 공세 속에서도 자연스러움과 실용성을 중시한 ‘현실의 1930년대’ 스타일을 고수했다.

커리어 중반 페쿠는 아셰뜨 Hachette의 시그니처 전집 <Hachette Bibliothèque Rose> 기획, 제작 전반에 참여한다. 앤드류 랭 Andrew Lang의 고전 동화집처럼 컬러별로 분류 발행된 이 기획 전집을 전환점으로 페쿠는 방대한 분량의 아동 문학 일러스트에 주력한다. <소피 연작>, <마들렌 연작> 같은 프랑스 대표 창작동화와 클래식한 고전들을 고루 작업했다.

앙드레 페쿠의 <소피 이야기>도 자신의 세대인 1930년대 오브제로 구현했다. 소피는 크리놀린이 아닌 소박한 모슬린 미니드레스 차림으로 훨씬 활동적인 인상이다. 화풍은 미니멀하지만 1930년대의 특징적 고증이 세밀하다. 무엇보다 햇빛 가득한 프랑스 전원의 서정적 감각이 넘쳐난다.

#백조 왕자,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217

과일 설탕절임 에피소드
당나귀 에피소드
곱슬머리 에피소드, 까미유처럼 예쁜 곱슬머리가 가지고 싶어 물받이 밑에서 버티던 소피는 호되게 앓는다.
눈썹밀기 에피소드, 또렷한 인상을 만들려던 소피는 민둥 눈썹으로 6개월을 보내야 했다 / 소피의 심통 때문이긴 해도 폴은 종종 삐진다.
나무딸기 에피소드, 오래된 작품임이 느껴지는 게 19세기 어린이들은 외진 숲과 늑대를 흔하게 마주쳤다.
앙드레 페쿠의 코스튬은 모두 1930년대 스타일이다.




시몬 아벤 Simone d'Avène

디자이너이자 화가였지만 아동문학 일러스트로 선회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녀가 커리어를 시작할 당시 삽화와 같은 주요 출판 부문은 모두 남성 창작자가 점유하고 있었다. 시몬 아벤은 점진적인 조직을 만들어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녀가 일러스트를 그린 <소피 이야기>는 원작이 집필된 19세기 고증에 맞춘 이미지들이다. 치렁치렁한 크리놀린 스타일의 인물뿐 아니라 목가적 풍경과 활기찬 서민들을 재현한다. 컬러 페이지도 많지만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면 대비 판화 스타일의 2도 분판이 멋진 판본이다.

Simone d'Avène, 1938(좌) 1941(우) 판본
과일 설탕절임 / 당나귀 에피소드
인형 장례식 / 눈썹밀기 에피소드
종종 개처럼 싸우지만 폴은 소피를 위해 기꺼이 가시덩굴을 굴러준다. 자신도 고작 두 살 많은 어린이면서.
소피의 엄마는 늑대보다 무섭지;;;
시몬 아벤느는 19세기 서민과 목가적 풍경을 유쾌하게 묘사했다. 시원시원한 2도 분판으로 더 활기찬 느낌이다




펠릭스 조베 뒤발 Félix Jobbé-Duval

건축가, 화가 등 예술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성장해 당시 출판계 요직 중 하나였던 카투니스트로도 활동했다. 펠릭스 조베 뒤발은 커리어 초반에도 아동문학 일러스트를 작업했지만 주로 상업 광고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30년대 인쇄술과 단행본 시장이 확장하자 점차 출판 쪽 의뢰에 집중한다.

뒤발이 일러스트를 그린 <소피 이야기>는 삽화가 시절의 날렵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력이 넘쳐난다. 미형상으로도 사랑스러워 개정을 거듭하며 인기 높았다. 전통의 유럽 그래픽 노블 명가 카스테르만 Casterman 판본에 실린 일러스트는 화풍상 1940년대 발행판이 초판으로 추정된다. 호레이스 까스텔리 보다 약간 후대의 인물이지만 신고전주의에서 영향받았다.

Félix Jobbé-Duval, 연도별 Casterman 판본, 1958(좌), 1980(우)
과일 설탕절임 / 당나귀 에피소드
파리에서 온 밀랍 인형 / 뜨거운 석회가루 (소피야, 거길 왜 들어가니..) / 금붕어 가니쉬... 에피소드
검은색 병아리 / 곱슬머리 만들기 / 새끼 고양이 에피소드
삽화가 시절의 날렵함이 반영된 드로잉





@출처/ 

Les malheurs de Sophie, Comtesse de Sophie Ségur, 1858


@커버 이미지/

Les malheurs de Sophie (Canari, 1965, 일러스트 G. G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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