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서로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고 오래전에 죽은 딸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 그리고 16살의 매춘부 소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매우 잔잔하나 진한 cocoa와 같은 달콤 쌉쌀한 맛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드문 작품이네요. 초반에 잠깐 부담스러운 장면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중년의 남자가 16세의 소녀에게 손을 대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따스하게 마무리됩니다.
15살이었던 딸 Emily를 10년 전에 자동차 사고로 먼저 보낸 Riley 부부는 해가 갈수록 사이가 멀어져 갑니다. 남편인 Doug 은 건물 보수자재 관련 사업을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지만 딸의 사망 후 agoraphobia 증상이 생긴 아내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고 있지요. 사실 그 또한 딸이 떠난 후 아직까지 흔들리고 있지만 이를 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짐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외로운 Doug, 근처 pancake 식당 직원인 Vivian이라는 여인과 비밀리에 관계를 맺고 나름대로는 위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던 어느 날, Vivian의 사망 소식을 식당 주인에게 듣게 되는 Doug - 충격이 상당히 큽니다. 차고에서 홀로 흐느끼는 그를 아내인 Lois 가 살펴보지만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요. 딸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인지 Lois는 이마저도 알고 싶지 않은 듯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요. 서로에게 그다지 많은 기대나 관심이 약해진 사이입니다.
그러던 중 Doug 은 New Orleans로 출장을 가게 됩니다. 기분전환을 하기에도 좋은 기회라 출장준비를 서두르고, 이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왠지 더 멀어질 듯 하다는 느낌을 받지요. Agoraphobia 때문에 마중도 나가지 못하는 자신이 더 비참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Doug 이 탄 버스는 컨벤션이 열릴 New Orleans에 있는 호텔 앞에 도착합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무리에서 빠져나온 Doug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어떤 shady 한 바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미성년자 stripper 인 Mallory를 만나게 됩니다.
Mallory는 15세입니다. 돈이 매우 절실한 그녀는 Doug 에게도 지나칠 정도로 어떤 것 이상을 요구하지만 그는 그런 남자가 아니지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서 어느 식당으로 발길을 돌이고, 그곳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던 중, 그곳에 저녁을 먹으러 온 Mallory를 만나게 됩니다. 돈이 없어 보여서 저녁값을 대신 내주는 Doug - 자신을 경찰이라고 의심하는 Mallory에게 명함까지 보여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둘은 식당에서 나와서 밤거리를 걷습니다. 이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물어보지요. 늦은 밤이라 Mallory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Doug 은 그녀의 사는 곳이 너무나도 열악하고 제대로 된 구석이 없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랍니다. 며칠간의 출장이지만 Mallory의 삶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이 아이의 집에 같이 지내면서 하나하나 고쳐주려고 애를 씁니다.
침대 매트리스, 침대 시트 등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사들입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Doug을 Mallory는 강하게 거부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을 믿을 수도 없었던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본능적으로 나온 반응이지요. 같은 침대에서 잠을 같이 자도 어떠한 접촉도 없는 Doug을 보고 의아해하는 이 소녀 - 이튿날 아침에는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는 Mallory를 보고 Doug 은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지만 쓰디쓴 말도 그녀에게 하지요. 결국 Doug의 이런 진심을 느끼는 Mallory는 같이 빨래를 하러 간 빨래방 앞에 앉아서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고 기대보지만, Doug 은 웃으며 그녀의 팔을 빼서 그녀의 무릎에 올려놓고 바로 앉도록 잡아줍니다. 이때 보게 되는 이 두 사람의 미소가 참 애매하지요.
출장이 너무 긴 남편이 걱정되어 Lois는 남편이 있는 New Orleans로 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합니다. 딸이 떠난 후 가지게 된 병 때문에 집 바깥을 나가지 않은 지 수년 째지만 용기를 내어 남편의 차를 타고 길을 떠납니다. 이때 우연히 트렁크에서 발견한 어떤 선물 - Vivian 이란 이름이 적힌 가방을 보고 그간 조금은 의심해왔던 남편의 외도도 알게 되지요.
이렇게 엮이게 된 중년의 남자와 십 대 소녀,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 - 모두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며칠간 같은 시간 속에서 삶을 나누며 아픔을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영화들 중 드문 명작입니다. 따스해요. 비록 단기간에 잘 자라지 못한 소녀의 삶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Doug의 애씀과 Lois의 모정 같은 따스함이 Mallory 가 그녀의 삶을 결국 다른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첫 시도를 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줍니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New Orleans는 왠지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한 편으로는 평화롭고, 즐겁고, 재즈나 R&B 같은 류의 음악이 어디에선가 흐르는듯한 배경이지만, 이곳에 사는 많은 삶의 요소들은 그와는 반대의 삶을 사는 듯 어둡습니다. 명암 차이가 상당히 많이 느껴지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Roger Ebert 가 쓴 Gandolfini (Doug)에 대한 평론이 참 걸작입니다, "One of the buzz champs of Sundance 2010. Gandolfini demonstrates that although he may not be conventionally handsome, when he smiles his face bathes you in the urge to like him."
Kristen Stewart 에게는 Roger Friedman 이란 평론가가 이렇게 썼군요: "Kristen here is tougher even than her punk rocker in The Runaways." Gandolfini (Doug)에 대해서도 "We got to see James Gandolfini continue his whacking of Tony Soprano in a fine new drama called Welcome to the Rileys. Gandolfini and Melissa Leo turn in superb performances as a couple who've lost their 15-year-old daughter."
Doug의 아내 역할을 한 Melissa Leo의 연기가 James Gandolfini의 연기와 더불어 참 감동이었습니다. New Orleans의 변두리 길을 남편과 걸으며 나누는 대화, 대사도 좋았지만 남편에 대한 과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애정과 지지를 비언어적인 요소들 - 눈빛과 제스처, 그리고 전체적인 페이스를 통해 아주 잘 연기해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Doug 이 Mallory 로부터 전화를 받고 오랜 대화를 합니다. 전화를 끊기 전 Doug 은 Mallory 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지요:
"Goodbye, Allison."
아래는 영화의 trailer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dz7EbAZiw
James Gandolfini라는 배우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가 나왔던 영화들을 보면 그의 배역은 언제나 강하거나 독하거나 때로는 잔인한 캐릭터였지요. 일반적인 배역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이미지들을 그의 얼굴과 몸 그리고 풍기는 자세를 통해 모두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그런 그의 이미지 뒤로 아주 따스한 중년 남자의 무게감과 신뢰감, 그리고 안정감을 아주 풍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배우, 이런 사람들이 많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