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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an 09. 2023

"5 to 7 (2014)"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그 사람, 사랑이었을까, 도피처였을까?


삶이 정체되거나 후퇴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과의 감정은 필요와 위안에서 오는 것일 뿐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처한 상황이 개선되거나 또는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리며 다시 도약하게 되면 지난 감정이 그저 가벼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은 이를 애써서 사랑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맨해튼 East 55th Street and 5th Avenue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24세의 무명의 작가 Brian, 그리고 33세의 French 여성 Arielle. 무려 9살이 많은 나이차이지만 이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먼 훗날, Guggenheim Museum 앞에서  또다시, 그렇게 우연하게 만나게 되지요. 단 오래전 그때와는 달리 서로의 가족을 동반하고 만나게 됩니다. 



Brian 이 오래전에 건네준 약속의 반지 - Arielle 이 그 반지를 끼고 있을 줄은 몰랐던 그였지요. Arielle 이 조심스레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오른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습니다. 그녀의 오른손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그 반지를 보며 Brian의 머릿속에는 참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지요. 조심스레 다시 장갑을 끼며 Arielle 은 참 아련한 눈빛을 그에게 보냅니다.



사랑이었다는 생각에 불륜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2014년작 "5 to 7"이라는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입니다. 다만 이 영화의 이야기가 만약 24세이며 미혼인 청년과 33세이며 독신주의자인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유지하고 지키고자 무던한 애를 쓰지만 이루어내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되고,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삶을 살아가며 결혼을 하게 된 후 어느 미술관 앞에서 우연한 재회를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면 정말이지 참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륜을 토대로 한 작품이지요. 배경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이야기가 애절하기 이를 데 없고, 동양문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서양사람들의 사랑방식이 이렇게도 깊고 순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참 잘 만들어진 영화였겠지만, 실제는 그저 어느 한 남녀의 타락의 끝자락을 회칠한 무덤처럼 그저 보기 좋고 느끼기 좋게 만든 영화입니다. 어찌 보면 불륜도 어쩌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보는 사람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위험한 영화입니다.


불륜이란 주제를 뺀다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 영화의 core 소재인 불륜을 제거고 본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 오만한 French 들의 open marriage라는 idea의 한 예가 드러나는 영화지만 (주중 오후 5시부터 오후 7시 사이에는 바람을 피워도 좋다는 동의를 하고 결혼한 Arielle과 그녀의 남편 Valery의 퇴폐적인 결혼문화) 이 부분을 애써 머릿속에서 삭제를 한 후 영화를 보면 이렇게 보드라운 사랑영화도 없더군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벌어지는 Brian의 작가로서의 작은 성공,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재회를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어떤 계기로 작가로 두각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나도 언젠가는 그 사람과 저렇게 우연이나마 만나게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지요. 모두가 마음 그 구석 조그만 방 안에 가지고 있는 소중한 사람 - 그 사람을 왠지 희망적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전반에 간간히 흘러나오는 Brian과 Arielle의 독백 (또는 대화) 이 상당히 좋습니다:


Brian: In New York, you're never more than 20 feet away from someone you know, or someone you're meant to know.


Arielle: A 5 to 7 relationship is a relationship outside of marriage.

Brian: Seriously, the french actually block out time for that?

Arielle: No.

Brian: 1 to 3 lunch, 3 to 5 conference call, 5 to 7 commit adultery.

Arielle: Look...

Brian: Do you set aside time to break other commandments? Do you covet at 9:30? Worship false idols from 10 to noon?


Brian: I had a long time to consider the value of memory, and the idea that just because something doesn't last forever doesn't mean its worth is diminished. Maybe it was just a rationalization - easier on the soul than mourning what might have been - the life unlived. I honestly don't know, but I chose to believe in memory. I chose to believe in her. I chose to believe that the bond was never broken and that we carried each other in our hearts. As a secret singularity. She made me a writer. She made me a man.


Brian: Some of the best writing in New York won't be found in books, or movies, or plays, but on the benches of Central Park. Read the benches, and you understand.



https://www.youtube.com/watch?v=9QfVQ5kKXdo



한계상황이 불러올 수 있는 묘한 착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후 이국땅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아마도 문화적으로 그리고 언어적으로 외로움을 극도로 느끼게 된 한 French 여성이,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처절히 실감하는 어느 젊고 순수한 감성을 가진 미국남성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모두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였지요. 이 여자와 이 남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인 French라는 언어 - 아마 이 남자가 French를 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이 French 여자가 이 미국남자에게 작가가 가져야 할 그 중요한 inspiration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이 두 사이의 관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듯합니다. 두 사람은 몰랐겠지만 서로가 필요했던 상황이 이 두 사람을 마치 '운명적인' 사랑인 듯 착각을 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순수하기만 한 청년작가를 앞에 두고 이미 삶에 식상이 난 30대 초반의 여성에게는 이 남자가 잠시니마 도피처가 되기에 충분했지요.


현실로의 귀환


이런 외도는 Arielle 이 현실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되게 됩니다. 진리가 단순하듯이 이유는 단순하지요 - 명예보다 소중한 (남편과의) 약속, 그리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Arielle 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갑니다. 사실 남편도 아내와의 동의 하에 (in an open marriage) 5 to 7의 외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이 약속의 의미는 제가 보기엔 무색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쩔 수 없겠지요.


This secret door that has opened in me. I have never felt so alive... as when I am in your arms. It is tempting, so tempting to forget about everything and just accept this gift. But I cannot. And not because I don't believe that you would be a marvelous stepfather to Marc and Elodie. And a wonderful father to the children we might have had together.


Not because of lifestyle or the difference in our ages or the opinions of others. When Valery and I married, we wrote our own vows. He has always kept his promise and I feel I must keep mine. But it's more than a matter of honor. One day, Brian, when you have children you'll understand that to leave them is to leave yourself. And to injure them,

unthinkable. I told you, I'm an old-fashioned girl.




흥행하지는 못한 영화입니다. 외도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라 그랬을까요? 이보다도 더한 추잡한 영화들로 점점 더 채워지는 Hollywood인데, 의아하게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생각의 마무리


결혼은 두 남녀의 진실한 사랑을 온전하게 합니다. 사실 두 사람만의 진실한 약속으로도 충분하지요. 그 사랑이 영원하다면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무의미합니다. 


그 외의 것들 - 결혼신고, 약혼식, 결혼식, 웨딩사진들, 하객들, 종교인의 주례 등 결혼 전후에 깔리는 모든 치장들 - 을 보면 마치 쓸데없는 보험만 열댓 개 가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혼전관계가 팽배하고, 결혼 전 동거는 흔하며, 결혼을 해도 초기 이혼율이 30% 가 넘고,  30대 그리고 40대가 넘어서는 배우자와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과반수며, 황혼이혼도 상당히 증가하고, 외도는 60% 이상의 남자들과 30% 이상의 여자들이 행하고 있으니, 결혼서약과 영원한 사랑타령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금이겠지요. 그 화려했던 결혼식 사진들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이 결혼보험이라는 말은 아주 예전부터 듣는 이야기지요. 거기에 이 기발한 French 들은 open marriage를 두고 꽤나 좋은 생각이라더군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프랑스계 CEO 도 자신도 그렇게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그들의 romance는 어느 정도의 타락성이 섞여야 맛이 있나 봅니다.


그래도 어디에서 누군가는...? 이란 생각으로 떠올리는 아주 작은 희망 하나 - 평생을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만 바라보며 산다는 일,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자가 이를 인지하건 아니 건간에 다른 사람을 보며 한눈을 잠시 파는 것도 결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홀로 사는 편이 진실하지 않은 결혼생활보다 더 떳떳할 수 있겠지요 - 최소한 제 자신에게는. 마지막으로 비교를 하자면 이 영화보다 2003년작 Lost in Translation에서 두 기혼자가 보여준 절제력이 아름다움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 비교가 안 될 정도로.




- January 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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