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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06. 2023

"Night Train to Lisbon (2014)"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드라마 장르에서 뛰어난 연기력과 애정을 보여주는 아일랜드 출신의 명배우 Jeremy Irons 의 2014년 출연작Night Train to Lisbon (2014)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Mr. Irons 가 연기한 Raimund "Mundus" Gregorius 을 통해 그의 멋진 목소리로 들려주는 내레이션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그 외에도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의 "Caffè latte"같은 진한 맛과 향이 느껴지는 특유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 또는 연극 등에 출연하기 전 발성 및 발음연습을 꼭 한다는 이 배우는 특히 Shakespeare의 작품을 이에 사용한다고 하지요. 영화 전체가 그의 목소리와 더불어 - 작품의 주제가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잔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제목은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제목이겠지요. 스위스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야간기차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서유럽의 정돈된 자연풍경과 더불어 유럽 연합 내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 거부하기 어려운 wanderlust를 자극합니다.


한국에서도 열차를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았는데, 가수 김현철 씨의 "춘천 가는 기차"가 우선 떠오르고, 그다음에는 "호남선 남행열차"라는 예전 가요도 떠오릅니다. 특히 이 노래의 경우 경쾌한 음과는 상대적인 슬픈 가사가 기억에 남지요: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 2005년작 "외등"에서도 남녀가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멀리멀리 떠나지요. 기차여행은 탈출, 이별, 회피 등 다양하지만 일률적인 theme 만은 동일합니다 - 즉, 기존의 어느 장소, 상태, 관계 등에서 잠시 또는 영원히 끊어져 있겠다는 시도를 의미하지요.



이와 같이 기차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있습니다. 이를 주제로 멋진 영화를 - 특히 로맨스 영화를 - 만들지 못한다면 그 감독은 감독이 되지 않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 "Night Train to Lisbon (2014)"은 사실 제목과는 달리 기차의 존재감은 그저 작은 소품과 별 다름이 없을 뿐, 영화가 시작된 후 10여분이 지난 부분에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만 기차의 존재를 그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Jeremy Irons는 이 영화에서 베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Raimund로 나옵니다. 여러 언어 (ancient Greek, Latin and Hebrew)의 전문가이기도 하지요. 혼자 사는 것이 즐거운 듯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매우 익숙해 보이지만, 아마도 늦은 나이로 인해 혼자 사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체념의 삶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홀로 chess를 두고, 아마도 오래전에 사다 놓은 tea bag box 가 빈 것도 모른 채 사는 사람입니다. 어제 이미 마시고 끝낸 tea bag 하나를 쓰레기통에서 다시 집어서 차 한잔을 간신히 쥐어짜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나, 이런 일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는 듯 보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학교로 출근을 하던 어느 비가 오는 날, 그는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는 어느 한 젊은 여성을 간신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고마왔는지 이 정체 모를 여자는 그녀를 구하느라 길에 흩어진 Raimund의 서류들을 그와 같이 추스른 후 그를 따라나서고, 그녀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까 걱정이 되던 Raimund 또한 이에 잠시 안도합니다. Raimund 가 일하는 학교까지 따라간 그녀는 Raimund 가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어디론가로 코트를 두고 도망치지요.


붙잡기엔 이미 늦은 그녀, Raimund는 그녀가 두고 간 책 한 권 - 어느 포르투갈의 의사가 쓴 책 - 이 던져주는 수수께끼에 왠지 매료되어 버립니다. 책의 제목은 "Um ourives das palavras, " 즉, A Goldsmith of Words라는 의미로, Amadeu de Prado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고, 자세히 보니 자신이 자주 가는 오래된 책을 파는 책방에서 구입한 것을 확인하게 되지요. 책방까지 가서 이를 확인한 Raimund는 책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책의 갈피에서 우연히 떨어진 리스본행 기차표 한 장을 발견하고, 그 젊은 여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차역으로 달려갑니다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지요. 단, 그의 손에 들려진 수수께끼 같은 책 한 권과 이제는 주인이 없는 기차표 한 장이 던진 유혹에 이끌려 목적도 없이 기차에 올라탑니다.



기차에 올라탄 Raimund는 그 책을 읽으며 Amadeu de Prado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친척과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알게 된 것은 그는 포르투갈이 António de Oliveira Salazar라는 극우파 정치가이며 차후 대통령이 된 인물의 독재통치하에 있었던 시절 - the Salazar Dictatorship (1928–1974) - 당시 의사였으며, 독재정권 치하에 살면서 삶의 어느 시점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글로 써낸 것이 책이 된 것이지요. 평생에 있어 그의 사랑이었던 Maria João Ávila라는 여인, 독재정부에 충성했지만 결국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선택한 그의 아버지, "리스본의 도살자"라는 별칭을 가진 리스본의 악질 경창청장 멘데즈를 의사로서 구해주고 결국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된 일,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레지스탕스에 비밀리에 가입하여 게 된 일과 이후에 이어진 반정부 저항운동들 - 하지만 결국 그는 aneurysm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지만 그의 누이인 Adriana 가 그의 일기와 노트를 조합하여 책으로 그의 삶을 다시 탄생시키게 된 것이지요.



Amadeu라는 사람의 생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다시 따라가다 우연히 알게 된 안과의사 Mariana Eça를 통해서도 Amadeu의 오래전 레지스탕스 시절 동지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Mariana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했지요. 이후 Jorge O'Kelly라는 Amadeu의 친구까지 찾게 되고, 기억력이 뛰어난 여인 Estefânia Espinhosa까지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Amadeu 가 사랑했던 여인으로, Jorge의 친구였기도 했기에 레지스탕스 시절 이들의 삼각관계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파악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Raimund 가 다시 베른으로 돌아가기 위해 리스본의 기차역에서 Mariana의 배웅을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지만 사실 그가 다시 그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지는 영화는 보는 사람들의 상상에 맡겨지게 됩니다. 그 끝은 마무리되지 않은 채 영화는 마무리되니까요. 스위스행 기차표를 끊고 떠나려는 Raimund의 마음에는 Amadeu와 그의 동지들이 경험한 삶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합니다. 자신의 삶은 한정된 선 안에서 일정하게 움직이는 시계처럼 변함이 없고 따라서 안전하고 안정적이나, Amadeu와 그의 친구들이 살았던 삶에 비하면 빈 컵이나 다름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Amadeu의 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속에 가득하게 채워졌던 것이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Mariana와 나누는 대화 속에 그의 마음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Raimund (Jeremy Irons): 제가 탈 칸이군요. 그래도 아직 5분 정도 남았습니다. 내가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아마데우, 에스테파냐, 그리고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의 삶이 활력과 강렬함으로 가득했던 것을 생각하면...

Mariana: 너무나 강렬했기에 결국은 그들을 파괴했잖아요.

Raimund (Jeremy Irons):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삶을 살았잖습니까? 반면 제 인생은... 최근 며칠을 제외하고는...

Mariana: 그럼에도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가시려는군요.


- Train whistles -


Mariana: 그냥 여기 머무시는 건 어떨까요?

Raimund (Jeremy Irons):... 네?

Mariana: 여기 그냥 계시는 건 어떠세요?






이 영화는 Amadeu와 그의 친구들이 the Salazar Dictatorship 당시 행했던 저항운동과 그들의 관계, 또는 등시 시대적 배경에 조명을 맞춘 후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능하다면) 정의를 나름대로 내리기보다는, Raimund 가 Amadeu의 삶을 뒤따라가보는 과정에서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과 Raimund 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미를 한  두 조각이나마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Amadeu 가 글로 남긴 그의 생각들이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새롭기도 하며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지요.


또한 이 영화 속에는 또 다른 한 두 편의 독립 영화들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듯합니다. Amadeu와 그의 친구들과 같이 열정으로 가득했던 삶이 있겠고, Raimund 이 자신의 삶을 보면서 지나치게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평범한 삶이 있겠으며, marina의 작은아버지처럼 풍파 같았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기력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으로 그 남달랐던 과거를 애써 묻어두는 삶이 있기도 합니다. 책방 주인처럼 - 의도하지 않았지만 - 그의 책방에 꽂혀 있던 어느 책 한 권이 여러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도 하며, 우연한 기회에 Raimund에게 안경을 다시 맞춰주면서 어쩌면 사랑일 수 있는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삶의 충실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 삶에 충실한 사람들의 삶의 눈길이 서로 교차되고 만나게 되어 세상이 그나마 지금의 상태로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이 영하는 Jeremy Irons의 "The rich latte of Jeremy Irons’s speaking voice"를 통해, 그리고 그의 연기를 통해 느끼게 해 주었지요.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매력과 여유, 그리고 섬세함과 절제된 용기가 무엇일지 잘 전달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보면 아주 어울릴 영화라고 하더군요. 영화 속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현재의 Lisbon 은 참 아름답습니다.



- February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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