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실습하는 4주 동안 H 교수님께서 나를 담당해 주셨다. H 교수님은 정신과 의사시고 도쿄 근처 S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이셨다. 세부전공은 정신종양학으로 암환자의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분야이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데다 외국 의대생인 내가 웰다잉과 정신종양학에 관심 있어서 실습을 하고 싶다고 불쑥 보낸 메일에 H 교수님은 흔쾌히 오라고 해주셨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실습은 주로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 조현병 같은 정신병적 장애, 약물 중독 같은 중독이 주요 주제이고, 정신과 내에서도 정신종양학은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마이너한 분야여서 그런지 같은 관심사를 가진 나를 무척 반가워해 주셨다.
교수님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크셨다. 지금 근무 중이신 병원에 20여 년 전 일본 최초로 사별 클리닉을 개설하셔서 지금까지 운영 중이시기도 하다. 몇 년째 사별 클리닉에서 교수님 진료를 받기 위해 신칸센을 수시간씩 타고 오시는 환자분들도 계셨다. 그 대학병원에 정신과 의사가 H 교수님 한 분뿐이라 정신종양학 분야 외에도 일반 정신과 외래와 입원 진료, 다른 과에서 온 의뢰 환자까지 다 맡아서 보시고, 진행 중인 연구는 내가 본 것만 해도 2-3개였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시고 늦게 퇴근하시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4주 동안 매일 하루종일 실습을 하면서 교수님이 지친 기색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실 때 활기가 느껴졌다. 그 활기는 방방 뛰거나 폭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온화하고 자연스러운 활기였다. 매일 말기 환자와 사별 가족을 만나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활기가 느껴질 수 있는 것일까? 말기 환자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의사로서 무슨 처치를 하든 길어야 몇 달 뒤면 돌아가실 것이고, 그동안은 점점 죽어간다. 진료를 하면서도 환자가 낫는 보람이 없으니 의사로서 소모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정이 들었다가도 환자들은 금방 떠나버리니 한 인간으로서도 상실과 슬픔의 연속일 것 같았다. 웰다잉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미래에 내가 의사로서 이 분야를 오랫동안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번 실습을 하면서 이 길을 앞으로 계속 갈 수 있을지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이어서 H 교수님의 밝음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디서 저렇게 에너지가 계속 나오는 것일까?
하루는 교수님께서 신문기자와 인터뷰가 너무 길어져서 저녁도 못 드신 채 밤 9시가 넘어서 일이 끝났다. 아침 7시에 출근하고 밤 9시가 넘어서 퇴근인 셈이었다. 인터뷰를 참관하던 나도 저녁이 늦어져 교수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빨리 퇴근하고 댁에 가고 싶으셨을 텐데 날 챙겨주시느라 귀가가 더 늦어지시는 것 같아서 고맙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 많은 것 같은데 교수님은 언제 쉬시냐고 여쭈었다. 운동이나 독서 같은 취미 이야기를 하시겠거니 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지금 이렇게 학생과 이야기하는 시간도 쉬는 거지요.’라고 하셨다. 늦은 시간까지 퇴근 못하는 것이 나 때문이라고 죄송해할까 봐 따뜻하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했고, 쉼과 여가를 거창하게 생각한 내 선입견도 알 수 있었다. 일처럼 보이는 것에서도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또한 쉼이라고 하시는 모습에서 교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단 것이 느껴졌다.
이어서 나는 교수님께 자꾸 죽는 환자를 보는 게 힘들진 않으시냐고 여쭈었다. 교수님께서는 궁금할 만 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힘들지 않다'라고 하셨다. 몸은 죽어가고 있을지 몰라도 환자의 정신은 더욱 성숙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환자분께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는 환자 스스로 회복하고 성숙해지려는 힘을 믿고 지지하고 기다린다고 하셨다. 인류애 가득한 그 말이 참 따뜻해서 뾰족했던 내 걱정이 녹아버렸다. '북풍과 태양' 이솝우화가 떠올랐다. 북풍과 태양이 나그네의 겉옷을 누가 더 빨리 벗기는지 내기하는데, 억지로 바람을 불어 옷을 벗기려던 북풍은 오히려 나그네가 옷을 여미게 만들었고, 뜨겁게 달군 태양은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었다. 교수님은 따뜻한 태양이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자를 감화시키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교수님의 따스한 지지를 환자도 느꼈을 것이다.
곰곰이 교수님 이야기를 곱씹다가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교수님께서는 환자의 내적 성장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치료 목표로 보시는데, 그렇다면 의식 없는 환자들처럼 대화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환자를 대할 때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 목표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이런 경우에는 내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니 의사로서 더 해줄 것이 없고, 보호자도 힘들어한다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중단해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질문은 더 나아가 안락사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는 데까지 이르렀다. 교수님께서 정신종양학에서는 환자뿐만 아니라 사별을 겪는 가족도 중요한 치료 대상이라고 하셨다. 환자의 내적 성장이 힘들더라도 환자 가족들의 내적 성장도 중요한 치료 목표라고 하셨다. 그리고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족으로서 지금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시간이 애도반응을 건강하게 겪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힘겨워도 그 과정이 없다면 환자 사망 후 후회가 많이 남아서 애도 과정이 더 길어지고 힘들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하셨다. 또한 일본은 가족관계가 끈끈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문화가 강해서 안락사를 허용하면 그러한 문화에 떠밀려 안락사를 선택하게 될 사람이 많을 것이 우려된다고도 하셨다.
H 교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내적 성장 가능성을 따스하게 지지해 준다는 걸 느낀 또 다른 일화가 있다. H 교수님을 따라 완화의료 병동을 참관한 적이 있다. 본과 3학년이었던 나는 완화의료병동 참관은 처음이었는데 마침 그날은 환자분들이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회진을 하느라 다인실에 들어갔다. 환자분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오른쪽에 있던 환자분은 의식은 있지만 움직이지 못해서 침상에 기대어 앉은 자세였고 입으로 삼키지 못해서 콧줄을 통해 액체만 위장으로 주입하느라 씹지도 맛을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던 환자분은 밥냄새를 풍기며 일반인처럼 밥을 드시고 계셨다. 이전에 병원 실습을 돌면서 심심찮게 봤던 광경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 모습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 멀쩡하게 걷고 말하는 스스로가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죄송하다는 마음은 어찌 보면 사실 걷고 말할 수 있는 내가 그분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죄송스러웠다. 환자분들 상태가 유난히 좋지 않았던 그날, 회진을 돌면서 환자분들을 보고 든 첫 생각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도 저렇게 죽는 건가’여서 스스로가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회진이 끝난 후 어땠냐고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다. 회진 때 환자분께 느낀 죄송스러움을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학생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정상적이고 좋은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 의사가 되어 환자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생기면 그때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학생일 때 그리고 의사가 되었을 때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고 쓴 에세이가 있다며 그 글을 복사해 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본과 3학년 학생일 때 소아 환자의 죽음을 보고 소아과를 포기하셨다. 교수님께서 의사가 되어 첫 사망선고를 내렸을 때 여름이라 여전히 따뜻했던 환자분의 피부와 온화하게 잠든 것만 같던 표정 때문에 환자분이 정말 사망한 것인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30분 뒤에 다시 가서 확인했다고 하셨다. 다들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먼저 이 길을 가본 분께서 경험을 바탕으로 ‘괜찮아’라고 해주셔서 든든했고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교수님은 예상치 못한 따스함으로 내 울퉁불퉁한 불안을 품어주셨다. 나중에 교내 인문학 과정에서 Empathy(공감)라는 개념을 배웠다. Empathy는 환자에게 과하게 감정적 몰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성을 갖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상태이다. 그에 비해 Sympathy는 환자를 자신보다 못한 처지로 보고 가엾게 여기는 상태이다. 교내 정신과 실습 첫날이 떠올랐다. 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사람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정신과에서 역설적이게도 사람과의 거리를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Empathy를 의미한 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완화의료 병동에서 느낀 죄송스러움은 거리 조절을 잘하지 못한 초보 의사의 Sympathy에 가까웠던 것 같다.
완화의료 병동 첫 참관이었던 데다 환자분께 죄송스러웠다는 내 말이 걱정되셨는지 그다음 날 교수님은 내게 괜찮은지 물어봐주셨다. 그리고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신종양학자로서 교수님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 보여주셨다. 『The Courage to Care』라는 제목으로 캐럴 리트너(Carol Rittner)와 손드라 마이어스(Sondra Myers)가 쓴 책인데 국내에는 번역서가 없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 중인 유럽에서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비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혼란스럽던 시기에 낯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어 유대인들을 숨기고 음식을 주며 비밀을 지켰다. 그 개개인의 용감한 행동이 생명을 구하고 덕분에 역사가 바뀌었다. 또 다른 책도 추천해 주셔서 읽어보았는데, 한국에서는 『나이트』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있고 저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다. 15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글쓴이는 인간다움이 사라져 혼란스러웠던 시간, 인간과 신에 대해 사무치도록 실망했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망까지도 끌어안고 저자는 인간과 신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이 두 책의 핵심은 'Courage to suffer(고통을 감내할 용기), Courage to care(돌볼 용기), Courage to live on(살아갈 용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사랑이구나. 예비의사로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컸던 내게 필요한 것은 기꺼이 환자와 연루되겠다는 책임감과 용기이고, 그 용기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을 교수님께서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의사가 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환자의 삶에서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꺼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준비가 되었는가.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끝까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잃지 않는다면 기꺼이 환자를 책임지겠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