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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차 Oct 29. 2019

엄마는 왜 시를 써?

시를 쓰면, 외로울 시간이 없어

“물고기처럼 내가 파닥파닥 하는 느낌이야”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결국 돌아오게 만드는 것들. 잊을 만한데 더욱 선명해지고, 무시하려 해도 내쳐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다양한 것을 배워보지 못했다. 나 때만 해도 다들 그랬다. 여자 아이는 피아노 학원, 남자 아이는 태권도 학원 그 정도였다. 개중에 발레나 미술, 바이올린 정도를 배웠을 것이고, 좀 더 특이하게는 속독 학원, 검도 학원 다니는 애도 봤다.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게 전부였고, 4~5년 정도 꽤 오래 배웠지만 흥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제와 하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은 지 모르겠다. 찔러보는 것도 많고 수습도 못하면서 벌려놓는 일이 수두룩하다. 보상심리 같기도 하고, 그저 호기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이 넘도록 가슴 한켠에 움켜쥐고 있는 것은 글이다. 멀리 돌더라도, 결국은 나의 글이 이 구슬들을 꿰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도 방황하는 이유는 뭘까. 나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다른 것들은 어쩐지 지금 행하지 않으면 평생 놓칠 것 같은 조급함이 드는데, 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한 구석에 글을 품고 살았다. 그런데, 엄마도 그렇게 60년을 글을 품어 왔더라. 나와 동생을 낳고, 화장품 공장에 다니고, 구멍가게 주인이 되고, 만학도가 돼 학구열에 불 지피던 그 모든 동안에 말이다. 나는 글쓰기를 두고 ‘네가 떠나버리진 않을 테니 잠깐 한눈 좀 팔고 올게’라는 무심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하지만 어쩐지 엄마는 이랬을 것 같다.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갈게.’


친정 집에 있는 책꽂이에는 엄마의 노트들이 온기를 품고 있다. 신혼 때부터 시작해 우리를 낳고 기르며 틈틈이 써 내려간 엄마의 역사다. 체계적이지 못하고 정리를 못하는 엄마의 성격을 닮아, 엄마의 노트는 일기였다가 시집이었다가 가계부였다가 전화번호부였다가. 질서가 없지만, 모두 역사다. 어깨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받고도 엄마는 “내 생애 어떤 날보다 강렬한 순간이었다.”며 써지지 않는 팔로 삐뚤빼뚤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엄마는 생활처럼 글을 썼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엄마는 시를 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어깨 수술을 받아 오른팔을 쓸 수 없는 날들에도 왼손으로 글을 썼다.


방통대를 졸업할 무렵, 국문과 친구가 엄마에게 문예창작반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책도 많이 읽고 글쓰기도 좋아하니 같이 가보자면서. 무심코 따라간 그곳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엄마는 머리가 띠잉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단다. 2시간짜리 수업이었는데 '4시간은 했으면 좋겠다.' 싶었을 정도로. 그래도 사람들이 시 낭송하고 이러는 건 오글거려서 힘들었다고도 했다. 간질거리는 목소리가 싫고 어색했다고. 그럼에도, 엄마는 그저 수업받는 그 자체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좋아서, 한 번도 안 빠지고 매번 나갔다. <불면증>이라는 시를 첫 작품으로 만들어낸 엄마는 시화전도 하며 흥미를 키워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보겠다는 거다. 돈을 좀 벌어볼까 싶어서. 꽃 보고, 풀 보고, 비 보는 거 좋아하는 엄마는 1년 동안 세법 보고, 회계 보고, 민법 보고 하다가 정수리에 쥐가 날 뻔했고, 하기 싫은 거 어거지로 참아가며 끝내 시험까지 쳤고, 떨어졌다.


1년여 동안 시를 놓았던 엄마는 마치 공인중개사 시험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이번엔 친구도 없이 혼자서 시 창작반 수업을 찾아갔다. 별 수 없이 이게 또 너무 재밌는 거다. 엄마 말마따나 교수님께 "졸라" 깨지는 날일지라도 말이다. 엄마는 써 온 시를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차례가 오면 심장이 정수리까지 올라와 펄떡거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 압박감에 수업을 빠지는 사람도 많다던데, 아마도 엄마는 그 찰나에 희열을 느꼈으리라. “양현 씨, 작품 낭송하세요.”


시 창작반에 다시 돌아와 엄마는 밤을 지새며 작품을 써냈다. 교수님은 엄마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셨고, 도에서 열리는 문예 대회에 참석해 볼 것을 권했다. 그저 버스도 태워준대고, 가면 밥도 준대고, 마침 강릉이라니까 소풍 가듯이 갔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복숭아꽃>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탔다. 무대 뒤 깜깜한 대기실에서 수상을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엄마 인생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이었어." 그렇게 지금까지 약 3년 간 시를 쓰고 있는 엄마는, 최근 한 달간 <벚나무집 한 채>, <튀밥처럼 지구가 돈다> 등의 시를 써내며 나를 진심으로 놀라게 했다.


“엄마는 왜 시를 써?”


“시를 쓰면서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니까. 뭐 그렇다고 평소에 죽어 있다는 건 아닌데. 시를 쓰는 그 순간엔 내가 가장 반짝이고,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하는 것 같고. 내가 잘 놀 수 있는 바다에 있는 듯한 느낌. 거기서 눈물도 흘리고 기쁨도 찾고 사람도 만나고...... 나를 넓히는 시간들이 되니까. 그리고 시를 쓰면, 외로울 시간이 없어.


복숭아꽃   - 양 현 - 


햇볕 모자를 쓰고

복숭아꽃들이 가부좌한 채 앉아 있다


엄마의 손길은 해 넘어간 지 오래이고

금 간 항아리의 깊은 주름살들이

빗살무늬로 얼비친다


커다란 이남박에 행주 띄우고

항아리 몸 구석구석 

설움인 듯 닦으시던 엄마 모습


그 뜨겁던 여름날

엄마의 깊어진 한숨이

이 봄 복숭아꽃으로 피어 

나를 흔들어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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