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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차 Nov 17. 2019

벚나무집 한 채

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벚나무집 한 채    - 양 현 -


금 간 오후가 지나간다

나를 닮은 실루엣 하나

초록 속으로 사라지고

꼬리만 남은 일요일

산책로가 햇볕을 따라간다

울컥 토하는 한숨의 깊이

깊은 수렁이다

유리창 밖으로 사라진 너는

긴 과녁을 향해 날아가고

부지런한 초저녁 달

벚나무집 한 채를 흔들고 있다

내가 흔들린다


엄마가 시 한 편을 내밀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예원이가 집에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데, 택시 타고 터미널로 가는 뒷모습을 보고 울컥해서 썼어. 집에는 아빠가 있어서 혼자 화장실에서 울먹거리면서 썼다니까. 교수님도 한 번에 '오케이'를 해주셨지 뭐야."

시는 정말로 좋았는데, 엄마의 말은 묘하게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참내, 내 뒷모습 보고는 이런 시가 안 나오는 거야?"


으레 첫째들이 둘째들에게 그렇듯, 나도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시샘했다. 엄마, 아빠의 관심이 내게서 떠나버린 것 같아서, 나는 이제 양보를 할 때만 칭찬받는 것 같아서, 동생은 특별하고 나는 평범한 것 같아서. 물론 개인차는 있겠으나 내 경험상, 아이들이 동생에 대해 느끼는 질투의 강도는 심할 경우 펄펄 끓는 용광로 같다. 오죽하면 세간에는 '남편이 낯선 여자의 손을 붙들고 집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 심정'에 그 마음을 빗댔을까. 나도 그러한 첫째들 중 한 명이었고, 생각보다 그러한 마음은 살아오는 내내 오랫동안 크게도 작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어릴 때는 동생을 때리기도 했고 괴롭히기도 했다. 엄마,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앞에서는 동생을 껴안고 뽀뽀하다가도 둘만 있으면 쥐어박았다. 의젓해야 칭찬받던 나는 혼자 힘으로 내 앞가림하는 법을 훈련하고 있었는데, 다 커서도 손쉽게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동생이 얄밉고 부러웠다. 이를테면 대낮인데도 아빠가 차로 데리러 오게 하거나,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을 엄마와 쇼핑가는 등의 일이다. 이렇게나 지극히 사소한 것들을, 내가 말한들 부모가 안 들어줬을 리도 만무한데 그게 나는 질투만 났다. 이것에 대해 어릴 땐 울고 불고 짜증도 냈는데, 나의 태도는 머리가 크면서 조금씩 변했다. 그냥 '내가 알아서 살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쿨한 척 센 척이었다. 나는 웬만해선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도 의지하지도, 그렇다고 도움이나 피해를 주지도 않는 삶을 한동안 살았었다.


그럼 나는 마치 '밀당의 승자'가 되듯, 부모의 관심이 되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뻔히 예상되듯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한창 둘째를 키우던 직장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사람은 누구나 '약자'한테 마음이 기울게 돼 있어."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와 동생의 관계도 참 요상하다. 나름의 의젓함을 여전히 장착 중인 나와 달리 동생은 즉흥적이고 기분파다. 엄마와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런지 둘이 만나면 꽤나 투닥거린다. 툭하면 싸우고 툭하면 화해한다. 심지어 엄마는 동생의 고등학교 수험 시절 내내 그 성질머리에 지칠 대로 지쳐 '서울로 대학만 가봐라. 다시는 같이 살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유치하지만 그럼 동생보다 내게 마음이 기울 법도 한데, 그렇게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매냥 그리워한다. 지금도 무슨 세 살, 여섯 살 먹은 어린애처럼 염려하고 보살핀다. 참내.


나도 지금은 꽤나 덤덤해졌다. 어쩔 수 없이 첫째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있듯, 부모가 첫째와 둘째에게 주는 사랑에도 '어쩔 수 없는 차이'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둘째의 입장도 그렇고. 이 나이를 먹고 속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나름의 자리에서 잘 선택하고 양보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서운하다. 엄마의 이런 멋진 시가 내가 아닌 동생의 뒷모습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엄마, 왜 나를 보고는 이런 시 안 써줘, 응?"

"너는, 평온하잖아."


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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