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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Mar 02. 2021

#9. 책임과 도리 사이

- 늙어가는 부모에게 미혼인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2017년. 5월 6일.

내가 느낀다.

샤워 후 빨랫감을 들고 나올 에너지, 글을 쓰기 전 만년필에 잉크를 채울 에너지, 다 먹은 컵을 씻을 에너지, 휴대폰 배터리가 5% 미만으로 떨어지기 전에 충전기를 꽂을 에너지. 방바닥에 흩어진 휴지조각을 휴지통에 모아 넣을 에너지조차 없었다는 걸.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가 관심 있어할 만한 주제를 꺼낼 에너지가 없었다는 걸 인정한다.

샤워 후 나오면서 속옷을 세탁기에 넣거나, 좋아하던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닌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삶에 대한 애착과 에너지가 줄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두려움이 한껏 밀려온다.


4년 전. 유급휴직을 받고 쉬었지만 결국 우울증이 회복되지 않아 4월에 퇴사를 했다. 퇴사 직전 상태는 일상적 생활이 어려운 정도였지만 퇴사 후 조금씩 기운을 차려갔다. 30대 후반이었으니 경력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샤워를 하거나 집안을 정돈할 에너지를 애써 만들어야 했다.

그 후 한 달 뒤 엄마는 암수술을 받았다. 가벼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가셨는데 대장 표면에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다행히 경계성 암으로 분류되는 종양이어서 수술은 가능했다. 하지만 암은 암인지라 수년간 항암제를 복용하는 치료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평생을 아프며 지냈다. 예민하고 고집이 센 성격이다 보니 스트레스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분이었다. 수년 전 암 수술도 하시기도 했고, 겨울 내내 감기를 앓을 몸이 약했다. 퇴원 후 엄마는 순탄치 않았던 인생도 억울한 데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만큼은 아니지만 항암제의 부작용도 어마했다.

우리 다섯 자매는 요일을 맡아 부모님 집에 가 엄마의 수발을 들었다. 요리와 청소를 하고 엄마 한탄과 속풀이를 들어주는 게 할 일이었다. 나는 정신적 요양이 필요했지만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이 우선이었다. 언니들의 배려로 매 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두세 번 엄마를 보러 갔다.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꽉 차 있던 나는 엄마의 짜증과 한탄을 듣고 오면 거의 만신창이 상태가 되었다. 당시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나름 방패를 만들고자 엄마에게 가기 전날 상담을 받곤 했었다. 그럼에도 집에 오면 끊었던 술을 벌컥벌컥 마실 정도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몸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나도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구를 돌봐야 한다는 것, 내 상태를 봐줄 여유도 없이 부모는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힘이 빠졌다.


나는 경계의 삶을 살고자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에 두려움에 가까운 장벽이 있었다. 이에 택한 방식은 내 몸 하나 간수하고 누구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동시에 피해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모의 늙음이라는 변수가 나타났다. 도움이 없어도 되었던 부모님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예의상’ 드리던 용돈이 이제는 없으면 안 될 절대적인 부분이 되었다. 단출하게 만들어 온 내 삶에 갑자기 묵직한 책임이 생긴 것 같았다.


이 감정은 책임일까. 아니면 유교적 도리일까.  


책임 –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의무 –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 곧 맡은 직분,

       – 도덕적으로 강제력이 있는 규범에 근거하여 인간의 의지나 행위에 부과되는 구속.

도리 –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


‘도덕적 강제력’, ‘마땅히 행하는 바른길’ 부분이 애매하다. ‘도덕적 강제력’이란 개인의 영역인가 사회의 영역인가. ‘마땅히 행하는 바른길’이란 개인의 잣대인가, 사회적 잣대인가.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이는 ‘책임’의 의미도 내 생각과 결이 다르다. 나에게 책임은 내가 한 일에 대한 책임만을 의미했다. 가장으로서, 아내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에는 ‘내 결정’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즉 내가 결정한 결혼, 내가 선택한 출산이니 책임이 있다는 식 말이다. 하지만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면 안되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자식으로서의 끝도 없는 책임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은 언니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입장임에도 성의껏 엄마를 돌봤다. 나보다 더 복잡하고 바쁜 삶이었을 것이다. 자식 교육이나 시댁과의 소통은 간헐적이라 해도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하루만 게을리해도 바로 쌓이는 일이었다. 그런 언니들이 매주 꼬박꼬박 반찬과 음식을 해서 친정에 갔다. 엄마의 하소연을 실컷 듣고 집으로 가서 다시 저녁밥을 안치고 집안 청소를 했다. 내게 없는 책임감이 그들에게 있을 리가 없다.


“네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야. 억지로 하는 건 너나 엄마 모두에게 도움이 안 돼.

다음 주에는 엄마에게 가지 말어. 언니가 한번 더 갈게”


엄마를 보고 돌아올 때 철없이 푸념을 늘어놓는 나에게 언니가 항상 하는 말이었다.


애매하게 끊긴 경력을 감수하며 확보한 시간은 우울증 치료보다 엄마의 병시중에 쓰이고 있었다. 내 몸을 건사하는 일과 엄마를 돌보는 일이 제로섬 게임처럼 보였고 그나마 책임감이라도 동원하지 않으면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녀오면 이 상황을 숙제처럼 여긴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모의 늙음을 마주하며 오는 상실감 그리고 내 삶에 대한 불안이 실타래처럼 얽혀 나를 괴롭혔다.


‘부모를 보살피는 데 기운을 다 쓰고 나면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을까.


싱글은 지지기반이 없이 오롯이 자신 혼자이다. 나를 대신해 버텨주는 영역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내 삶에 잠시 소홀하면 그 대가는 오롯이 내가 치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위한 희생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특히 그것이 부모라면 더욱 곤란하다. 나의 돌봄이 필요해질만큼 늙어버린 부모님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이 상황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감당하면서 생긴 내 삶의 공백은 또 어찌할 것인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떤 때는 한없이 희생하리라 다짐하다가도 어떨 대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행히 지금 엄마는 완쾌를 하셨다. 그러나 그 사이 5년이 흘렀고 그만큼 노화도 빨리 진행되어 엄마는 어느덧 늙어버린 당신의 상황을 한스러워하신다. 재활의 위험도 있기에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정기적인 방문을 하고 있다. 책임 없는 삶을 삶고자 싱글을 자처했지만 나는 절대 혼자가 될 수 없었다. 주변과 얽히고설킨 도의적 감정은 이미 책임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내 삶에 충실한 것은 중요하다. 평생 싱글로 살 수 있다는 게 감지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하는 다짐일 것이다. 하지만 싱글의 삶에도 타인을 위한 물리적 희생을 요구할 때가 있다. 심지어 그 시점이 예상치 못할 시기일 때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내가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희생이란 적정선이랄 게 없이 진심과 다짐으로 하는 것이어서 그 수준과 범위 앞에서 매일 고민할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내 삶에 충실하겠노라’ 말할 수 없는 건 혼자 살고 있지만 정말 내가 혼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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