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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Mar 06. 2021

마지막 #10. 건강

- 과도하게 웰빙을 의식하는 삶이 과연 건강할까

“그분 다 좋은데 건강 염려증이 좀 있는 거 같아”


우울증으로 퇴사를 하고 거의 일 년 만에 사회 복귀를 하면서 잠시 다닌 스타트업에서 만난 대리가 한 말이다. 업계가 좁아서 이직을 하다 보면 과거 같은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마지막 회사의 팀원과 스타트업 기업에서 같이 일한 대리가 친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는데 그 대리가 한 말이었다.

당시에는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나와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라 속으로 많이 놀랬었다. 스타트업 다녔을 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퇴사 후 6개월간 한 거라고는 마음과 몸의 건강을 보살피다 복귀를 했으니 그렇게 보일만 했다.


“바나나가 우울증에 좋다더라. 매일 한 개씩 꼭 챙겨 먹어”

“햇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면 우울증에 효과가 좋데”

“팔다리가 건강하면 마음의 병도 이길 수 있어.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잖아”


가족과 주변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건강에 대한 것들이었다. 번아웃으로 퇴사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들의 말과 스스로 찾아본 건강수칙으로 매일을 채워나갔다. 숙면을 취하는 시간이라는 11시~2시 사이를 지키기 위해 밤 9시부터 잘 준비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야채와 건강한 단백질로 이뤄진 식단을 챙겨 먹었다. 주말이면 고열량의 특별식도 챙겨 먹었다. 조금씩 팔다리에 힘이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적으로 이는 갈등은 여전했다. 여전히 공허했다.

어쨌든 물리적으로 건강해진 몸은 일상을 회복시켜 주었다. 집안일을 하고 광화문이나 강남 같은 번화가 정도는 다녀올 체력이 되었을 때 감사하게도 옛 직장 동료가 한 스타트업을 소개해 주어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매일 통근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리가 말했던 건강 염려증은 여러 회사를 거치며 점점 강해졌다. 햇빛 받으며 산책할 시간에 지하철로 들어가는 건 괴로웠고, 집밥 대신 조미료가 가득한 회사 근처 점심을 먹는 일은 죄악 같았다. 퇴근길의 지하철은 미세먼지를 가득 내 몸에 넣는 일이었다. 회사원의 생활패턴 자체가 건강을 위협하는 것 같았다. 주말이면 약속을 자제하고 산책, 요리, 명상을 하며 과거 건강수칙을 지키는 데 급급했다. 직장생활을 할수록 우울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게 느껴졌기에 퇴사 때의 생활패턴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과도하게 웰빙을 의식하는 삶은 절대 건강한 삶이 아니었다. 생산적인 활동에 따르는 스트레스, 과로, 피로감과 같은 삶의 우여곡절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 그 우여곡절을 끝내고 상황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어떤 성과와 보상을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떤 건강수칙을 지켰을 때보다 더 큰 기운을 받는다. 일에서 실수가 날 때 아무리 명상을 해도 그 패배감은 사라지지 않고, 삶이 헛헛할 때 아무리 영양제를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물론 건강을 챙기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주중 계속 야근을 해도 주말 하루 푹 쉬면 개운해지던 체력이 이제는 다음 주 내내 이어진다. 모진 독감도 하루 흠씬 앓고 나면 씻은 듯 나았던 몸이 겨울 내내 달고 산다. 하루하루가 달라짐을 느낀다. 마음 역시 그런다. 삶에서 가장 복잡한 의사결정이 몰리는 시기이다. 자산, 커리어, 가족... 이 걸출한 이슈를 처리하면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음을 알아챌 때 그럼에도 그 상황을 견디어야 할 때 멘털은 너덜너덜 해 진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는 남의 일처럼 무신경하게 봤던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건강 프로그램을 이제는 내 몸 이곳저곳 만지며 진지하게 시청한다. 명상 앱도 깔아보고 문턱 높았던 신경정신과도 용기 내어 찾는다.

 

4년 전 우울증 이후 나에게 건강은 일종의 두려움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바닥을 쳐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증 회복하려고 했던 삶의 패턴 - 건강한 식사, 규칙적인 운동, 정기적인 명상 -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행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당시의 나는 다시 우울증이 심해질까 불안했다. 건강을 잃어본 자는 그것에 대해 초연하기 쉽지 않다. 각고의 노력으로 회복되어도 다시 무너질 게 두려워 회복했을 때의 건강 수칙을 지키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대리가 말한 건강 염려증이 맞았다. 이런 두려움에 일상 회복은 더디었다. 감사하게도 스타트업 이후 여러 취업의 기회가 있었지만 건강에 무리가 될 것 같은 곳을 피했고, 그렇게 입사한 곳은 정시퇴근이 지켜지고 업무 스트레스가 적은 한 제조 기업이었다. 나름 업계의 입지를 쌓은 기업이어서 내 경력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워라밸을 지키겠노라 선택한 회사는 나의 성향과 예상보다 훨씬 달랐다. 기업 문화는 보수적이었고 업무도 매우 제한적으로 주어졌다. 리서처로서의 전문성은 접어두길 바랬고, 힘들게 이어온 경력은 후퇴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회사에 있는 게 갑갑해졌고, 제대로 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 길어진 퇴근 시간을 방에 누워 보냈다. 건강을 지킨다는 이유로, 조금 더 정확하게 건강을 잃을 게 두려운 마음으로 선택한 길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10개월 만에 퇴사를 했고 급한 마음에 입사한 마지막 회사까지 내 경력은 갈필을 잡지 못하고 있다.

건강이 삶의 기본 요소는 맞다. 그렇다고 ‘건강한 삶’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건 조금 맥이 빠진다. 삶이란 ‘사는 것’의 명사형인데 ‘산다’의 기본 전제를 목적으로 승격시킨 느낌이다. 워라밸이 지켜지고, 평판도 있고, 월급도 낮지 않았던 제조사를 퇴사하면서 내 우울증의 실체가 보였다. 명상과 운동을 하고, 정신과 의사의 권고에 따라 살아 있음에 감사하려고 하고 만트라를 외우는 노력도 했다. 이런 노력이 큰 도움이 된 것은 맞다. 하지만 본질적인 회복은 되지 못했다.

그간의 모든 노력에서 놓친 것은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바라는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려는 용기였다. 삶의 가치를 외치면서도 내 안의 가치, 그것의 구체적인 형상을 찾는 데에는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내내 갈필을 잡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렵다. 마치 차도 위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다. 세상의 속도와 비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적 불안이라는 더 큰 고통을 감당을 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한 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소비했다. 번아웃에서 회복한 지 4년 만에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고 극한상태까지 갔다. 다시 받아먹은 신경과 약, 커피와 술로 버티면서 건강이 얼마나 가벼운지 알게 되었다.

건강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나 다운 삶을 살아가는 게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명함과 연봉, 부모와 가족을 제외한 나를 액면 그대로 마주할 용기, 그러한 나를 기꺼이 감싸줄 애정, 그러한 나를 세상에 증명할 노력을 마흔인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건강할 때나 건강하지 못할 때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렇기에 자기와의 대화는 더욱 필요하다. 책을 좋아한다면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혹은 시력을 읽게 되어도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면 목이 아프고 성대 결절이 되어도 흥얼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가사를 적으며 노래를 곁에 두어야 한다. 그게 '삶을 살아가는 '이고 삶에 대한 예의이다.

‘웰빙 라이프’는 20년이 넘도록 회자되고 있다. 트렌드에 따라 '웰빙'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건강한 삶 자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오래 회자된 만큼 웰빙 라이프 레시피들이 넘쳐나고 모두 생활에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킨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은근슬쩍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 어떻게 살 것인가.

- 건강이 허락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 건강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에 집중한다면 ‘건강’이 나빠져도 혹은 삶이 고되어도 자신만의 보상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건강’은 자만할 영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영역도 아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 같지만 인간의 몸과 영혼은 복잡하기에 자신에 충실한 사람은 나름의 자정작용으로 삶을 계속 밀고 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복합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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