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로 '관계'를 깨는 지혜
건강에 좋다는 논란이 많은 속설을 믿고 익힌 달걀 하나씩을 매일 섭취하고 있다. 달걀은 오래된 식용 역사만큼이나 관련된 요리도 다양하여 쉽게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흰자와 노른자는 같은 껍질 안에 있지만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담겨있다. 생명의 근원이 흰자에 있어서 노른자는 부화할 때 성장과정 중 영양분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많은 계란 요리 중에서 흰자만으로 만들어지는 머랭 쿠키(meringue)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노른자가 포함되면 지방성분 때문에 풍부한 거품을 만들 수 없게 하는 방해물질이 된다. 머랭 요리는 이 거품 생성이 핵심 요소이므로 요리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저어서 공기를 흰자 사이에 포함시키는 과정을 지속시켜야 한다. 사용하는 용기도 오랜 경험을 통해 구리로 만든 거친 면을 가진 그릇을 사용해야 한다는 팁도 포함된다. 내 전문성?을 통해 해석해 보면, 거친면에서 작은 거품을 생성하는 원인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오직 달걀의 흰자와 최적화된 그릇, 그리고 오랫동안 휘저어주는 노력의 결과물임을 이 요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언젠가 감명 깊게 본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 부인의 비밀정원'을 통해 마들랜 쿠키를 알게 되었는데, 이 역시 계란 요리여서 머랭과 연관 지어져 내게는 굳이 건강상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제과점 진열대에 놓인 것을 보면 습관적으로 집어 들곤 하였다.
달걀은 전 세계적으로 모든 문화권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에 따라 흰자만, 혹은 노른자만의 요리도 있고 많은 경우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하는 계란찜, 계란말이 같은 요리도 존재한다. 여러 개의 달걀을 하나의 용기에 깨어 함께 넣고 보면 뚜렷이 구별되는 노른자와 함께 흰자들은 섞이지 않지만, 투명해 보이는 특성 때문에 어느 달걀에서 나온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물론 흰자 사이에도 미묘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차이를 구분하려만 가능하긴 하지만 대략 섞인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통해 각 개인의 상호 관계를 비유하여 설명하는 철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각 개인이 달걀이라면 한 그릇에 담긴 여러 개의 껍질이 깨어진 흰자와 노른자의 펼쳐진 모습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정의해 나갈지를 그는 설면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집단 혹은 사회의 각 관계 속에서 ‘함께 함’과 ‘자신만의 특성, 가치’를 어느 선까지 주장하고 허용해야 하는지 혼란한 경우가 많다. 노른자는 각개인이 가져야 만하는 자신만의 특성으로 표현되는 존엄성, 가치, 혹은 자기다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릇이라고 하는 저 마다 다른 형태의 공동체 속에서 노른자 사이의 명백히 경계로 구별되는, 타인에게 함부로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지켜야 할 가치로 생각된다. 반면에 흰자는 타인과 공동체 속에서 서로 융합하여 자신의 가치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위해 경계를 허물고 동시에 노른자로 대표되는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보존하려는 모습을 은유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다양한 공적, 사적 모임과 관계 속에서 스스럼없이 상대와 융화하는 사회성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자신만이 보유하고 구별된 자기성을 지켜나가는 두 가지 가치를 요구받는다.
오랜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특히 동료와 상사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럽던 시기가 있었다. 무조건적인 동료의식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나답지 않은 집단의 선택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갈 때의 무력감이 생각난다. 반면에 나의 개인적인 선호만을 강조하여 주변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거나, 그래서 타인의 가치를 의도 없지만 폄하했었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려 하는 내 자녀나, 혹은 유사한 젊은 세대에게 공동체에서 자신의 노른자와 흰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제안하고 싶었다. 또 다른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도 비유를 확장해 본다. 노른자만 모아논 혹은 흰자만을 따로 모아논 경우는 앞서 머랭 요리와 같이 명백히 특별한 목적을 위한 제한된 상황만을 위한다. 절대적으로 자신은 버리고 융합만을 요구하는 상황, 혹은 연대 없이 명확한 각자의 특성을 필요로 하는 상황 등을 연상할 수 있다. 요리라면 머랭에서와 같이 노른자 없는 흰자만을 활용하는 경우나, 오로지 노른자만 모아 볶아서 제조한 난유(卵油)를 떠올린다. 집단적인 협력을 강조하는 스포츠 경기나, 오로지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연대회가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이고 흔한 경우는 온통 다 섞어서 휘저은 계란물은 용도는 가장 다양하고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별 상태와 각각을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평균화되어버린 이 요리는 집단화되고 획일화된 시스템으로 묶여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개인을 은유한다.
세상은 타인과의 연대와 협력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지만 동시에 예전보다 더 많이 집단속의 개인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나만의 흰자로 타인과 하나 되는 연대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오롯이 나만의 노른자 지키기가 충분히 가능한 이 연로(年老)함이 좋다. 따로 또 같이 해야 할 많은 인생 앞에 인간의 작은 지혜로 달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