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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5. 2021

애국 소비를 하고 싶지만..

다름은 틀림이나 삐딱함이 아니다.

오래전 대학원에 막 입학하여 실험실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도교수님이 외부 프로젝트 연구비로 매킨토시 컴퓨터가 연구실에 설치되었다. 거의 초기 모델인 Apple II Plus 인 것으로 기억되는 타자기 형태의 모델로 내 생애 처음 만난 컴퓨터이었다.  직전에 안식년으로 미국 대학을 1년간 방문하였던 지도교수님(얼마 전 안타깝게 돌아가셨다)은 컴퓨터의 위력을 느끼셨던지 무리한 투자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 신문물을 경험케 해 주셨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그 당시 연구비가 200만 원 정도였는데 그 컴퓨터의 구입에 100만 원 이상을 사용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선배 L과 함께 이 컴퓨터로 할 수 일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테이프 레코더로 입력되는 단순한 슈팅게임을 발견하였다. 신세계를 만난 우리는 그 첨단게임에 며칠 동안 몰입하였지만 더 이상 추가 게임을 구할 수 없었던 터라 새로운 활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 교수님은 그런 예상을 하셨을 것이다.  이후 베이식 언어를 이용한 간단한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온 밤을 새워 입문서를 학습한 이후 수 십 년 동안 애플컴퓨터에 빠지게 되었다.  


 애플컴퓨터는 곧이어 경쟁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 기반 컴퓨터와는 무언가 달랐다.  당시에는 외관도 차별적이었지만 구동하는 방식과 직관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 때문에 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당시 라이선스에 대해 개념과 가치가 부족했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애플컴퓨터가 대중화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개방성을 강조하던 마이크로소프트 기반 PC의 무차별적인 복제품에 밀려 대중적인 컴퓨터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  더욱이 하드웨어뿐 아니라 사용되는 각종 스프트웨어마다 일일이 가격을 지불하는 정책 때문에 추가 비용이라는 생각을 가진 구매자들은 더욱 마이크로소프트 호환기종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인근 대학 교수들의 연구실에 얼마간의  애플컴퓨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연구용 IT장비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약간은 불편했지만 애플컴퓨터를 설치하여 제한적이나마 직장 내에서 활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모든 가정통신은 아이비엠 피시로 일원화되었고, 각종 공공기관의 공식적인 접근을 위한 애플컴퓨터용 통신 프로토콜은 여전히 제공되지 않았다.  효율과 속도에 익숙한 우리 사회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다른 대안을 원하는 소수의 존재는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이른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향하는 공리주의가 꽃피던 시기였다.  복잡함이 심화되는 선진사회가 된 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편리만을 고려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선택지와 대응방법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는데 그때는 이런 면에서 보면 개발도상국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이후 회사에서 업무용 이동 IT기기를 제공받기 시작할 때  어느 순간 선택지로 애플 기기가 포함되었다.    이미 세계적인 국산 휴대폰 브랜드가 있기에 대부분이 선택하는 기종은 정해졌지만 추정컨데 구색 맞추기용?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내에서 사용되는 몇몇 필수 앱조차 애플용은 빠지거나 불충분한 상태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 연령대는 거의 관심 갖지 않는 불편한 기기를 선택하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모순을 감수하였다.    장기간 내게 IT 관련 업무 지원하고 있는 담당 직원의 전언에 따르면, 전사에서 그리고 지방근무자 중 내가 거의 유일한 선택자라고 귀띔해 주었다.  덩달아 그는 늘 나로 인해 어쩌다 한 번 정도 지원해야 하는 부가 업무를 해야 했다.  그도 자신의 IT기기는 국산 브랜드이고 대부분 그가 지원하는 업무는 반복적이고 유사업무일 때 효율이 높아지는 학습곡선(learning curve)을 전형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그도 나의 별난 취향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보람이 있다고 내 미안한 마음에 잠깐의 위로를 전한다. 아마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수사일 것이라 추정하지만 어쨌든 짧지 않은 세월을 그와 유쾌한 문제 풀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난 왜 합리적이지 않은 다른 선택에 집착하고 있을까?  아마도 20대 초반에 만났던 구호가 나를 자극했던 것 같다.  당시 애플이 내건 슬로건은, ‘Think Different!’였다.  그 문장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숨어있던 생각을 자극했을 것이라 막연한 추정을 해 본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다름’이 ‘틀림’으로 혹은 ‘삐딱함’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수직적이고 규율이 강한 산업에 속해 살아온 지난 수 십 년간, 조금이라도 집단성에서 벗어날 때마다 받는 불편한 질문과 암묵적인 의미를 담은 눈길을 경험하곤 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나이와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내 영향력 내에서는 회식 시간에 강제로 술을 권하는 것이나, 몸에 좋다고 강권하는 주말 산행 등 그런 일상적 관행을 저지하려 하였다.

   아마도 여러 가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겠지만  그동안 익숙했던 선진국, 기성화 된 틀을 벗어나서 다르게 생각하고 그 행동한 결과에 따른 책임감이 불편하다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자주 ‘무난함’과 ‘적당함’으로 여러 영역에서 나 만의 선택과는 다른 다수의 타인에 동조해 온 것 같다.

  스티브 잡스가 주장했다는 다음  문장은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내게 오랫동안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인생이 저기 있고 당신은 단지 그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삶은 결코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당신 주변의 모든 것은 당신보다 별로 똑똑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오늘도 국산 사용으로 외화낭비를 줄이는 애국 소비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전히 가성비 낮은 선택을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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