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은 왜 있을까?” 묻는 이를 위한 답
왜는 육하원칙의 다른 요소들과 비교하면 조금 불분명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너 이 공을 왜 바닥에 떨어뜨렸니?”라고 묻는다면 그 때의 왜는 의도, 정황, 사유, 배경 등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왜 파랗니?”라는 질문에서는, 누가 그림에서 하늘을 파란 색으로 칠한 이유를 묻는다든가 하는 게 아닌 이상, 어떤 원리로 하늘이 파란지를 묻는 의도로 왜를 썼을 것이다. “왜”보다는 “어떻게”에 더 가까운 경우다.
어떤 원리라든가 과학을 얘기할 때는 왜와 어떻게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하늘은 왜 파랄까?”라는 물음은 하늘이 파란 이유를 묻는 질문, 즉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공을 왜 떨어뜨렸니?”의 왜하고는 용법이 꽤 다르다. 신기하게도 우리말 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게 영어에서 우리말로 전달된 건 아닌 것 같고, 원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중력도 마찬가지. 중력이 왜 있냐고 물을 때 말하는 이가 중력이 있어야 되는 존재의 이유를 궁금해하거나 중력이라는 것이 생긴 배경에 깔린 의도나 목적 같은 걸 알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과학자에게 물어볼 일은 아니다. 중력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배경에 깔린 “의도” 같은 건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내용이 아니다. 아마 중력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우주가 아니었을 거다. 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중력”이라는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이유는 만유인력 때문이다.”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만,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지 설명하기 위해 뉴턴은 질량이 있는 물체끼리 서로 당기는 힘이 작용하는데 그 힘은 각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고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웠어. 근데 이게 웬만한 경우에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아주 잘 설명해 주지. 그래서 지금은 웬만한 경우에는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이 맞다고 인정받고 있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력이 있기 때문에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라는 표현보다는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현상은 중력이라는 개념으로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 더 과학적으로 적합하다.
과학은 “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엇”과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 "중력이 왜 있어?"보다는 "중력이 어떻게 작용해?"가 과학의 영역 안에 있는 질문이다. “왜”라는 물음은 철학, 신학이나 인문학의 영역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