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2023년 9월 15일 생애 첫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제겐 쉽지 않았던 그 여정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게 42.195km 풀코스 마라톤은 아주 먼 이야기였습니다. 하프만 뛰어도 엄청 힘든데 풀코스를 어떻게 뛸 수 있을까. 2시간도 힘든데, 사람이 어떻게 4시간 넘게 뛸 수 있는가. 가 제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들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첫 하프를 뛰어 본 이후로 준비 없이 무모한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풀코스는 최소한의 준비라도 한 다음에 하려고 했습니다. 매일 10km씩 뛰는 내년 상반기부터 준비해서,
하반기에 풀코스 대회를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러닝 하는 지인들이 풀코스 대회를 같이 준비하자고 하면,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핑계를 대며 약속을 미뤘습니다.
성공 관련 단톡방에서 알게 된 한 분에 계신데, 러닝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가 풀코스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랑 기록도 비슷한 것 같은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나는 왜 나 스스로의 한계를 본인이 정해놓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번 행동하라는 글들을 쓰면서 정작 저는 너무 신중한 것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제 풀코스에 대한 의지 봉인을 살짝 풀었습니다. 무조건 내년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뛰겠다로 바꿨습니다.
2023년 9월 11일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날 러닝을 하는데 기분도 좋고 컨디션도 좋고 다 좋았습니다. 호흡과 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 번의 발자국에 들숨, 세 번의 발자국에 날숨. 아주 부드럽게 러닝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날 뛰면 부상도 적고 기록도 좋았습니다. 하프 이상 뛰어보자고 욕심을 조금 부렸습니다. 5킬로 정도 뛰었을 때 갑자기 이슈가 하나 생겼습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들고 갔던 물병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급격히 멘털이 떨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10.5km에서 멈췄습니다.
다음날 화요일에 한번 더 도전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월요일과는 달리 부드럽게 러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리하면 나중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아서 10.4km에서 멈췄습니다. 제게는 풀코스도 중요하지만, 3650일 동안 매일 뛰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언젠가 다시 뛸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고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편안한 속도로 정해놓은 거리를 뛰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아서일까.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지난 월요일처럼 호흡과 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다시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방심하거나 무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첫 10km까지는 힘들지 않게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의 10km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요령도 생겼고, 저만의 페이스도 생겼습니다.
15km 구간이 되자 3가지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정확히는 1,3번은 7.5 ~ 10km마다, 2번은 5km마다 반복적으로 찾아왔습니다.
1.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
2. 내가 과연 하프이상을 뛸 수 있을까라고 멘털이 흔들린다.
3. 갈증이 나고 머리가 조금 아프다.
화장실과 물은 동시에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멘털은 ‘내 생애 첫 풀코스 꼭 달성하자!’를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치자, 회복이 되고 집중력도 올라갔습니다.
하프가 되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힘들게 하프까지 뛰었는데, 그 힘든 하프가 한번 더 남았기 때문입니다. 2시간을 뛰었는데, 앞으로 2시간 이상을 더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멘털이 날아갔습니다. 멘털을 부여잡기 위해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내 생애 첫 풀코스를 꼭 달성하자! 내 안의 의욕과 의지를 더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자!’
신기하게도 그렇게 외치면 멘털도 잡히고 집중력도 올라갔습니다. 그동안 명상을 하며 한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한 덕분인 것 같았습니다.
25km가 되자 갈증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다리가 엄청 무겁고 쥐가 조금씩 났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 물이 부족해서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물을 많이 섭취했습니다. 갈증이 사라지고 머리 어지러운 것이 덜해졌습니다. 다리가 무거운 것도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뛰는 거리만큼이 제 생애 최장거리였습니다. 처음 뛰는 최장거리라 그런지 제 생애 최장거리다라는 뿌듯함보다, 이제 이쯤이면 그만해도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제 뇌와 몸이 이제는 그만하자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또다시 외쳤습니다.
‘내 생애 첫 풀코스를 꼭 달성하자! 내 안의 의욕과 의지를 더 끌어올리는 계기로 만들자!’
그렇게 외칠 때마다 다시 좋아졌습니다.
생애 첫 30km가 되었습니다. 온몸의 감각들이 번갈아가며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떨 땐 발가락, 어떨 땐 발바닥, 무릎, 허리 등등 모든 부위의 말초신경까지 느껴졌습니다. ㅈ[ 몸이 이렇게 예민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제 몸이 제 의지를 멈추게 하기 위해 몸의 고통을 잘 느끼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35km가 되었습니다.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습니다. 양발의 엄지발가락은 축축하게 젖어버린 양말로 인해 불어 튼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왼발 엄지발가락은 물집이 잡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7.195km만 달리면 생애 첫 폴코스이니까 말입니다. 제 뇌와 몸은 끊임없이 멈추게 만들 신호를 보냅니다. 이때부터가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을 바꿨습니다. ‘내 생애 첫 50km 코스를 꼭 달성하자! 이제 7바퀴만 더 뛰면 된다! 힘내자!’라고 말입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나름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뇌라는 녀석은 바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38km를 뛰어서 4.195km가 남았습니다. 갑자기 석촌호수 1.5바퀴를 뛰면 더 힘들 거라고 뇌가 신호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석촌호수 서호 3바퀴를 돌기로 했습니다. 이제 서호 3바퀴만 돌면 되는데,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년병장처럼 왜 이렇게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제 자리에서 뛰는 듯했습니다. 앞에 뛴 38km로 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50km 주문도 이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무아지경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호흡에 집중하거나 땅만 쳐다보는 것을 번갈아 가며 뛰었습니다. 어떻게든 생각을 안 하게끔, 제 몸의 통증을 못 느끼게끔 집중할 대상이 무엇이든 찾아서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매일 명상을 하며 집중하는 훈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스스로가 좀 대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서호 한 바퀴가 남았습니다. 조금씩 감정이 벅차올랐습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마라토너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9살까지 마라톤을 한 봉주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영조형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한 모든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200m가 남았습니다. 195m를 정확하게 지키고 싶었지만, 애플워치에서는 10m 단위까지만 표기해서 200m를 달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순간 올림픽 주 경기장 트랙을 도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일 때 큰소리를 치면서 들어가 볼까? 정말 고생했다고 소리 한번 쳐도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 주먹만 불끈 져보자.’
아니면 입을 막고 살짝 외쳐보자 등 수만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10m가 남았을 무렵에는 하프때와는 달리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짝 짜릿한 것은 있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을 홀로 완주했습니다. 티브이에서 보면 마라토너들이 레이스가 끝나면 비틀비틀하는 것처럼 저도 비틀거렸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한동안 비틀거렸습니다. 제가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입니다.
42.21km / 4시간 30분 0초 / 1km당 평균 6분 24초
제 최종 기록입니다. 이젠 제게 풀코스의 목표를 세울 기준점이 생겼습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앞으로 점점 나아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의 생생한 기억을 날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글이기 바랍니다.
풀코스 마라톤이 끝난 후 돌이켜보니 아래 5가지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1. 매일 명상을 하며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을 했던 것
2. 매일 러닝을 할 때 호흡과 내 몸에 집중하는 훈련을 했던 것
3. 멘털이 흔들릴 때마다 속으로 생애 첫 풀코스를 계속 외치며 내 목표를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
4. 30k가 지났을 무렵 정말 그만하고 싶을 만큼 멘털도 몸도 힘들 때, 다시 여기까지 오려면 42.195k를 뛰어야 하지만 지금 뛰면 12.195k만 뛰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 것
5. 끝까지 내 뇌와 몸이 그만하지고 보내는 신호에 꺾이지 않은 마음
4일 동안 온몸이 아파서 힘들었지만, 삶에 대한 제 의지와 의욕은 다시 충만해졌습니다.
첫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고 나서,
무엇인가를 극한까지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