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그날도 특별한 이슈 없는 하루였다.
아니 특별할 거 없을 것 같은 하루였다.
“오늘 저녁은 할머니 국수에서 포장해 와서 먹자!
지미가 iOS 개발자 데리고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제가 주문받을게요.”
그렇게 그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의 메뉴를 적었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가게로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포장주문하려고요.
메뉴는 이러저러합니다. 몇 분 뒤에 찾으러 가면 될까요?”
“20분 뒤에 오시면 됩니다.”
“네, 그럼 시간 맞춰서 가겠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들 말씀하신 대로 주문했고, 이따가 수령하면서 한번 더 체크하겠습니다.
20분 뒤에 오라고 하셔서 10분 뒤에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다녀오렴.”
그의 말투가 다소 어색했지만, 개인 취향이니 그러려니 했다.
음식을 수령하기 전에 주문한 메뉴가 맞는지 확인했다.
지난번 탐앤탐스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런 습관은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심하게 짜증이 났나 싶다.
저녁을 챙겨서 사무실로 출발하면서 메신저를 보냈다.
“주문하신 메뉴들 잘 나왔는지 확인했고 사무실로 갑니다.”
“그래, 조심히 오렴.”
“네, 알겠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자, 다녀왔습니…. 다…”
라고 말하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의 큰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너는 디자인을 왜 맨날 이 따위로 하냐.
디자인 팀장이라는 녀석이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할래.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냐. 아니 생각이라는 것은 하면서 사냐.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구는 있는 거냐.
그냥 하루살이처럼 오늘만 어떻게 버티며 넘기자고만 사는 거냐.”
그는 쉴 새 없이 디자인팀장을 몰아붙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인지 나는 사무실 구석의 식탁으로 걸어가서 음식 봉지를 올려놨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저녁식사 세팅을 했다.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기에 수월하게 세팅을 완료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녁식사 하세요.”
“야 인마, 너는 밥 X 먹으려고 사냐? 분위기 안 보이냐?”
순간 욱하며 뭔가가 올라왔다.
표정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며 뒤돌아서 사무실 건물 복도로 향했다.
10분 정도 걸으면서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어느 정도 화가 진정되고 나서야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그 혼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눈치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래서 다들 오라고 손짓하며 식탁으로 가려는데 그가 회심의 한방을 날렸다.
“너 한 번만 더 인상 쓰면 죽 X 버린다. 조심해라.”
거기서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아니 이 새 X가 미쳤나?”
“제가 뭘 잘못해서 욕먹고 미쳤냐는 소리를…”
라고 받아치려는데 안드로이드 개발팀장이 나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야, 가만히 있어봐!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야 참지.”
“아니, 저 새 X가 왜 저래.”
“적당히 하셔야죠. 제가 언제까지…”
“제가 지미형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안드로이드 개발팀장 손에 이끌려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형, 대표형이 그러는 거 한 두 번도 아닌데 왜 그랬어?”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너무 하잖아. 번번이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애들한테 막말하고.
지 기분 나쁠 때마다 저 난리를 피우잖아. 우리가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 이렇게 매번 당해야 해?”
“형 말이 맞긴 하는데, 그래도 형이 좀 참아.”
“아까도 나가서 한번 참고 왔는데, 또 저러니까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는다.”
“일단 형이 참고 들어가자, 응? 이따가 한잔하면서 풀자. 알았지?”
안드로이드 팀장이 여러 번 나를 풀어주려고 하는데 계속 화를 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갔다.
식탁은 다 치워져 있었고,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피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 일하는데 게임을 하는 꼬락서니를 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꾹 참고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봤다.
그는 또 한 번 카운트 펀치를 날렸다.
“너 그럴 거면 그냥 나가! 너 같은 놈 필요 없다.”
난 거기서 완전 눈이 돌아버렸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방을 쌌다.
아니 정확히는 회사에 있는 내 짐을 하나씩 싸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보더니 그는 깜짝 놀라 했다.
“너 뭐 하냐?”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서 나가려고요.”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니죠. 제정신이니까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나가려고 하는 거죠.”
“너는 지금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닌 거 같다.
나가서 혼자 생각 좀 하고 반성 좀 해라. 이 녀석아.”
“무슨 말하시는 거예요. 저는 지금 완전히 또렷한 상태라고요.”
그때 안드로이드 팀장이 나를 다시 한번 데리고 나갔다.
“형, 휴게실 가서 혼자 1시간만 있다가 와요.”
“아니, 그냥 나가련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형, 제가 부탁할게요. 다녀와요.”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반성해라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녁 다 차렸다고 저녁 먹으라고 말한 게 그렇게 잘못한 행동인가?
예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나를 대한 적은 없었다.
안드로이드 개발팀장이 말한 대로 혼자 휴게실에 갔다.
그리고 누워서 잤다.
진짜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미 님, 지미 님, 어디 계세요?”
부사장의 목소리였다.
나는 불 꺼진 휴게소 구석 소파에 누워있었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시간을 보니
1시간 30분이나 지난 것을 보고 이제는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부사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괜찮으세요?”
“뭐 그렇죠. 괜찮지는 않지만 괜찮은 척을 해야
우리 팀원들이 저녁도 먹고 일을 할 테니까요.
그래서 그냥 들어가서 미안하다고 하고 조용히 있으려고요.”
“쉽지 않으셨을 텐데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사장님께서 감사해하실 일도 죄송해하실 일도 아닙니다.”
“형님이 저러시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은 좀 심하신 거 같아요.
그래도 지미 님께서 한 번만 참아주시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팀원들이 편해질 테니까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시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피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 인마, 반성 좀 했냐?”
“네, 반성 많이 하고 왔습니다.”
내가 뭘 반성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냥 그가 말하는 대로 다시 말하며 잘못했다고 하면 되었다.
보조 의자를 들고 그의 옆으로 가서 1시간 넘게 그의 훈계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정신이 몽롱하고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겠지만,
휴게소에서 잠을 잔 덕분에 컨디션이 많이 회복이 되어서 괜찮았다.
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다행히 그의 훈계는 1시간 정도선에서 끝났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 짧게 끝내주다니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일이 하나 터졌다.